이번호 보기


통일, 끝없는 자비 실천의 길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성전 1999년 07월 209호
오십 년 만에 열린 뱃길을 따라 찾아가는 금강산은 감동이었다. 누군들 쉽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분단 조국에서 금강산을 찾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분단의 슬픔을 안고도 금강산을 두 팔 벌려 안을 수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만물상을 찾아 돌고 돌아가는 그 길에서 나의 두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념이 무엇이기에, 체제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토록 그리운 땅을 이제서야 찾아올 수 있었단 말인가. 고향 땅 그리며 하루하루 귀향의 날 손꼽으며 사시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 이미 이 땅에 없는데, 나만이 찾아온 죄책감에 나는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밟아 볼 수 없던 북녘 땅. 그리움이 마침내 한이 되고 마는 그 아픈 이산의 시간 위에서 우리는 총칼을 들고 서로를 적이라 규정하며 모질게도 통일의 꿈을 짓밟아 왔다.
분단오십 년, 통일을 말하는 사람은 많이 있었어도 진정 통일을 위해 가슴을 비우고 민족의 숙원을 풀려는 위정자는 없었다. 통일을 꿈꾸는 우리 손으로 뽑은 위정자들이 민족의 의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체제 유지에만 혈안이 된 아픈 정치사 속에서 우리 통일의 꿈은 끝내 분단의 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신계사 터에서 오십 년 만에 감격적인 법회를 봉행하면서, 시간의 짧음에. 이천만 불자 전부가 아닌 오백여명의 불자만이 법회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부처님께 목놓아 발원했다.
우리 민족이 어서 하나가 되어 모두가 웃으며 부처님 우러러 민족의 번영을 발원하는 법회를 봉행하게 해달라고.
통일, 그것은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 남녘의 사람들이 무주상 보시를 실천하는 자비의 발원자가 될 때, 비로소 통일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작은 분쟁에, 작은 손실에 집착하면 분단의 고苦속을 끊임없이 윤회할 것이다.
서해의 교전을 두고 우리는 강경한 논조로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본다. 하지만 햇볕이 아니면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언가. 그들이 말하는 강풍은 공멸의 어리석음을 범할 뿐이다. 봄은 햇볕과 함께 오고 겨울은 강풍과 함께 오듯이 우리 민족의 봄을 여는 것도 무주상 보시의 마음 가득한 햇볕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야만 한다. 봄이 와도 봄이 봄 같지 않은 것은 강풍이 햇볕을 날려 버리기 때문이다. 봄이 정말 봄다우려면 이제 분단을 굳힌 강풍은 사라져야만 한다.
오십 년이 넘도록 우리는 서로를 적이라 규정하며 살아 왔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분단의 고착화뿐이다. 그것은 시행착오 치고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이제는 바꾸어서 오십 년을 살아 보자. 반드시 통일의 꿈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