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을 숲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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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만우(시인)
1992년 11월 129호
나는 노을 숲으로 사라진다
南北東西無定著
生涯只在一杖節
舌頭細嚼烟霞味
直入千峰更萬峰
남, 북, 동, 서 정한 곳 없이
생애는 오직 지팡이 하나
혀끝으로 가만히 연하를 맛보며
천봉, 만봉으로 바로 들어가네
서산 휴정
봄과 여름 내내 초목을 살찌우던 햇살과 바람이 이제 잎새를 떨구어 숲을 비워 가고 있다. 뒤돌아 보면 시시 때때로 그림자 바뀌는 숲길. 낙엽이 그 길을 묻어 버리면 눈길 따라 길을 열고 노을 지는 숲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런 때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쌓으면서 이 한때를 보낸다. 일곡을 거두고 두툼한 옷을 준비하고 땔감을 준비한다. 평상의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부지런히 움직여 많은 것들을 비축함에 있다. 다 가을 추위에 견디는 법은 겨우살이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많이 모으는 데 있다. 산은 비워 냄으로써 겨울을 준비한다. 가지 끝에 잎새 하나라도 거부하며 온전히 적나라한 모습으로 추위를 견딘다. 엄동에도 솔잎은 얼지 않는다.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사는 생명체들은 뿌리만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법을 안다. 죽지 않을 만큼의 움직임을 통해서 겨울을 나는 것이다. 가장 작은 몸짓으로 가장 큰 고통을 이겨 내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생존 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것은 에너지의 과다한 사용이다. 대량 생산과 소비를 통한 에너지의 폭력화는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무력화한다. 이미 수많은 보고서를 통해서 이런 상황을 고발해 왔지만 궁극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종말론에 입각한 일단의 사이비 종교가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는 근거를 이 시대 자체가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첨단의 설비를 갖춘 초대형 건물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사고를 획일화하고 집단화하는 언어의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는 법담이 오갈 수 없고 맨 얼굴의 다감함이 와 닿을 수 없다.
인간이 올바르게 사고하는데 길잡이가 되어야 할 종교조차 이 시대의 문제를 미봉책의 술수로 호도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종교가 아닌 기계의 얼굴을 한 종교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군불이 따스하게 지펴진 방안에서 호롱불을 아래 정좌해서 책을 뒤지며 마음 자리를 찾는 모습들이 절집에서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숲은 옛 모습 그대로 오늘에 서 있지만 그 품격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있다. 인내할 줄 알고 정진할 줄 알며 이 적당한 때에 정定에 들 줄 안다. 또한 화려하게 변신할 줄도 안다. 본디 인간의 삶은 이러한 자연의 움직임과 함께 있었다. 태양과 달과 바람 등 자연의 조건들에 맞추어 살아 왔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였고 스승이었으며 삶의 토대였다. 이러한 인식에 정초한 사회, 땅과 하늘과 사람이 동등하게 관계되는 땅이 정토일 것이다. 그것은 내적으로 수렴된 절제와 상호 조화의 펼침이고 행로의 곡직曲直을 존중하여 직直으로써 곡曲을 재려 하지 않고 곡曲으로써 직直을 휘게 하지 않는 배려가 있는 세상이다.
지팡이를 울리며 안개와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구도자의 행처가 풍엽楓葉처럼 정처 없을지라도 하늘과 땅의 숨결을 거스르지 않고 흐를 수 있다면 나도 천봉千峰 숲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비워 냄으로써 겨울을 이기는 숲처럼 마음을 비우고 편안해지고 싶다. 허나 마음을 비웠다는 사람들끼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서 그 비움 때문에 더욱 추운 겨울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