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자비복지원 진철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호계삼소 - 장채향
1992년 11월 129호
가을이 가고 있다. 골골이 지류를 따라 소리치며 달리는 바람은 붉어 차라리 핏빛인 단풍잎을 뒤흔들고, 연이어 겹쳐서 중중무진한 태백의 산자락은 늦가을의 석양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텅 비어 끝없이 파란 하늘, 맑고 맑아 밑바닥을 온통 쪽빛으로 드러낸 계곡, 그곳에 남으로 오는 철새들은 군무를 이루고, 긴 시간의 여행에 돌아온 은어 떼 먼 길을 가도 좋다. 그런 하늘, 그런 물가로 우리를 그냥 그대로 열반의 그윽함으로 일으켜 세우는 도량,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오대산을 가을 꼬리를 밟으며 넘었다. 다시 가을과 잘 어울리는 도시 강릉으로.
“얘들아! 사진 찍자. 어디 누구를 안아 줄까” 회색 승복 펄럭이며 두 팔을 벌리는 스님의 손짓에 누구에게 뒤질새라 달려드는 아이들. 그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분주함과 같이 사는 진철스님. “찰깍 찰깍” 렌즈 속으로 빨려드는 개구장이, 얌전이, 뻔돌이, 울보... 들의 해바라기 같은 얼굴들. 그 사십여 모습이 모여 이름지어진 ‘강릉 자비복지원’은 한낮의 소란스러움만 없다면 여느 여염집과 다를 것이 없다. 스님을 처음 뵌 것은 벌써 수년 전이지만, 새롭게 변화된 환경인 이곳에서의 인상은 상상을 훨씬 비껴 간다. 한때 마곡사와 낙산사 주지를 역임하고 총무원에서 한국 불교의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 정열을 쏟기도 했던 시절을 고스란히 벗어 둔 채 이제 복지원의 책임자로 전혀 새로운 조건과 환경 속에서 불교의 한 자리를 메꾸어 가고 있다. 창창하던 이십대에 오대산 한암스님께서 “포교는 어릴 적부터 해야 한다”는 말씀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지침적 교훈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추억하는 스님과 대화의 첫머리를 풀었다.
“난 사십 명의 부처님 속에서 살아갑니다. 애들은 산 부처이고, 선지식입니다. 이들에게 불공을 드리고 시봉을 하는 것이 내겐 수행이고 실천입니다.”
이렇듯 전혀 새로운 수행의 길을 개척하게 된 동기는 스님 자신이 일찍이 처음 출가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과 배움이 축적되고 농축된 결과에 기인한 것이리라 싶다. 버려진 아이들과 사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살아가시는 스님의 불교관은 어떤 것일까. 이런 말씀을 새겨듣는 것이 먼저 필요하지 싶다.
“지금이야말로 사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원형불교, 그러니까 경전도 원형의 의미를 다시 살려서 기존의 잘못 해석되고 변형된 의미를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리란 우리의 현실 세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밝히는 것이며, 진여법계에 돌아가 올바른 삶을 살도록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삶, 그것은 실천을 의미합니다. 요즈음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너나할 것 없이 도를 말하고, 선이나 경전도 자기 수준의 안목으로 말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설異說과 이론異論이 발생합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저절로 해결의 실마리가 오는데,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아는 윤리적 실천의 주체이니 절에서의 배움이 그것에 끝나지 않고 중생을 향한 실천이 반드시 있어서 수행과 실천이 하나의 의미로 승화되어야지 배움에 의한 이론만 강하면 두터운 망겁만 쌓일 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우려다.
“도인은 이사理事에 모두 밝아 막힘이 없어야지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는 행은 절름발이입니다. 수행은 실천을 병행함으로써 영원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실천 불교, 역대 조사의 행장에도 분명히 나타나듯이 좌선불교에서 탈피하여 실천에 의해 생사의 그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스님. 사사불공 처처불행의 행선行禪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은 대기대용의 대승적 삶을 살으라는 당부이리라. 한참 얘기가 무르익어 가는 도중, 배시시 문이 열리고 어정어정 걸어온 한 아이에게 사과 한 입을 물리며 다시 말씀을 이어 가는 스님의 모습은 자상한 아빠 스님에 다름 아니다.
10.27 법난을 당하시고, 서빙고의 찬마루 바닥에서 이 땅의 참담한 문제와 불교의 현재를 경험하면서 스님은 나름대로 생사관을 정립하게 되었단다. 그러한 각성은 꾸밈이 없는 아이들과 같이 동거동락하면서 살아가게 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마곡사 안에 있는 고등공민학교에서 친구와 함께 주변의 화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식들을 모아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스님께서 사회에 눈을 떠가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자비 영아원과 직접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1년 양양의 낙산사에서 주지로 있을 때부터이다.
“이 지방의 여러 군데에 있는 복지 시설을 방문할 때가 많았는데 특히 영아원을 가서 보면 그곳 아이들의 얼굴 표정에서 부모의 정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을 느꼈지요. 이들에게 명절 때 가끔씩 방문하여 도움을 주는 것보다 직접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83년부터 강원도의 시립 복지 시설을 일반복지 단체나 종교복지 단체로 이관시킨다는 방침이 세워져 불교 사회복지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동안 꾸준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고, 낙산사의 지역적인 영향력이 있어서 영아원을 쉽게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고등공민학교 시절에 경험했던 절대 빈곤한 사람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인식과, 당시 폐교되면서 남겨진 땅과 건물이 재원이 되어 혈육과 함께 자라지 못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키울 현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제 자비영아원이 자비복지원으로 복지 법인이 되었고, 복지원의 봉사 써클만 해도 서른 개가 넘으니 그 속에서 세상사 인심이 박하지만은 않음을 느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저마다 다른 종교 단체의 회원들이지만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법문도 하고 비교종교학도 강의하는데, 눈빛이 살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스님은 신바람이 난다. 요즈음 세태가 자기 자식도 키우기가 힘들고 벅찬데, 버려진 아이들을 주어다 키우는 일은 봉사와 헌신의 의무만으로 해내기엔 벅찬 일일 것이고, 이 일이 수행의 한길이지 않으면 아니될 듯 싶다. 그렇기에 스님 말씀 가운데 수행과 실천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당부가 많은 듯 싶다. 과거에는 전쟁과 가난, 질병 들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쉽게 만나서 결혼하고 부부의 결합력이 약한 사람들이 헤어지면서 버린 아이들, 성개방의 풍조에 따라 책임없는 미혼모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이란다.
“최근에 남의 집 화장실에 버려진 아이가 발견되어 병원에서 치료 받은 뒤에 우리 집에 와 있다가 어느 가정으로 입양되어 갔고, 야외에서 발견된 한 아이는 탯줄을 가위로 끊지 못하고 돌로 찧어서 끊어진 채 있어서 우리집에 데려와 목숨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생명을 구하는 것이 보람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이 결코 유쾌할 수 없습니다.”
스님은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서 이러한 사회 현상이 생기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 부처님께서 출가 수행하신 것이 허공과 같은 도를 위해서나 복을 짓기 위해서도 아닌데, 오늘의 스님네들은 도만을 얘기하고 신도를 향해서는 복을 지을 것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현실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서 방편설을 베푸신 뜻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신앙이란 어느 것이든 인간의 문제를 잘 해결하여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에 불교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것을 비껴갈 수는 없다고 하신다.
“부처님께선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오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성의 평등성으로 정치를, 도덕질하지 말라는 균형잡힌 바른 분배로 경제를, 간음하지 말라는 윤리 의식으로 도덕적인 사회를, 거짓말하지 말라는 올바른 믿음으로 교육을, 술을 마시지 말라는 건전한 가치로 정신을 일깨우는 실천을 한다면 사회 문제가 이렇게 정신없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오고가는 모든 관계를 나누어 주고 진실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의 기본 뜻일 겁니다.”
정중동靜中動 속에서 올바른 수행이 가능하다고 보는 스님은 복지원의 삶 자체가 수행의 연속이다. 아이들에게 끈끈한 정으로 집착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고, 종교인으로 상을 세우지도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강요된 종교로 편협된 신앙관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려서는 전인 교육에 집중하고 종교 선택은 판단 능력이 생기면 자유 의지에 따라서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초파일은 등을 달고, 크리스마스 때는 트리도 만들고, 캐롤송을 들려주기도 하며 정서적으로 균형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다만 먹물옷 입은 스님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불교를 느끼게 하고 일년에 한 번 전문적인 불교 수련대회를 치르도록 한다. 이러한 스님의 실천행이 이제는 교계 안팎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특강을 요청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각종 언론지에도 오르내린다. 이러한 사회 참여를 통해서 스님은 세 속의 인심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피부로 느끼게 된다고 한다. 또한 이런 일이 스님의 삶에 힘드신지, 가수는 노래 한 곡으로 몇 년 동안을 되풀이 불러도 환호를 받는데, 난 한두 번 설법하고 나면 메아리가 없는 것을 보면 가슴을 울리는 호소력이 없는 것 같아 한낱 가수만도 못하다고 하며 지긋이 웃으신다. 복지원을 운영하려면 원력만큼이나 인적․재정적 지원이 많이 필요하지 싶어서 넌즈시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니 스님은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가 아니라고 하신다.
“재정이야 우리의 노력에 의해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을 기르는 보육사 선생님들의 헌신적이고 고결한 노력이 있어서 이 부분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아원에 대한 편견이 가장 힘들게 합니다. 고아원 아이라면 자기 자식과 친구 삼는 것도 꺼릴 만큼 의식 수준이 편협하고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인식을 서둘러 전환해야 합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인격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더 사랑하라는 말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야 왜 모르겠습니까마는 지금 고학력을 갖고 있고 경제력이 있어도 사람 됨됨이가 저급한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역사에서 사회복지 사업에 힘을 기울이던 때가 많았음을 지적하면서, 불교가 법당 안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의 현장에 고루 퍼져 나가 자연스럽게 불교화시켜 줄 때 인간 구원과 불국정토를 만드는 길임을 강조하신다. 불교 가치 체계의 위대한 점이 불교 그 단어 자체에 대행해 탙불교를 내세우듯이 지금의 수행 태도인 염불 기도 법문만이 아닌 다양화된 실천 논리로 진리의 씨앗을 뿌려 나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느새 밖은 어둠이 내리고 하늘 가득 검은 구름이 몰려와 금방 한바탕 비라도 뿌릴 기세이다. 좁은 복지원엔 빈방이 없어 숙소를 구하러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 아이들의 방에선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그들의 앳된 꿈을 키우는 도란도란하는 목소리가 일행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어느 복지원의 아이들보다 깔끔한 옷차림과 티없이 밝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스님의 정성과 열의가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 느끼게 하여 자연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 저 애들에게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다시 어느 절 하나 맡으시면 어떨까요?”
기자의 질문이 당치도 않다는 듯이 스님은 말씀하신다.
“이젠 졸업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승려의 생활이 흐트러짐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실 절이 아니라 놓기 쉬운 수행의 지극함을 더욱 죄고 있습니다.”
어느덧 스님의 세수는 인생의 중반기를 훨씬 지나 있고 수하에 상좌도 여러 사람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듯 중년을 지나 빛을 발하는 것일진대, 버려진 아이들을 하나하나 모아 기르며 저마다 가진 별들을 찾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는가 싶다. 왠지 불안하고 힘겹고 멀게만 보이는 오늘의 세태에 스님과 같은 사람의 모습이 우리를 신명나게 하고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리라.
“아!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자가용으로 모시지 못해 미안합니다. 차들이 너무 많아 이 생에는 특별난 일이 아니면 자가용을 가지지 않을 작정입니다.”
스님의 말씀이 방금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가을 비의 찬 기운처럼 가슴 깊이 선연한 충격으로 가라앉는다. 이제는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복지원의 불빛이 어떤 구원의 모습과도 같이 빛나고 있고, 아쉬운 발길을 재촉하는 우리 마음은 아직 스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