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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다람살라에서 본 티벳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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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의연 1992년 11월 129호
지난 봄에 불교 성지 순례차 인도에 갔었다. 성지 순례를 하기에는 기후가 마땅치 않았고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처음 주어진 기회이기에 조금 욕심을 내다보니 결국 무리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꼭 한 번은 해보고 싶던 인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나는 그 동안 잘못 이해하고 있던 티벳 불교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인도는 부처님의 나라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인도는 종교의 나라이며, 이 나라 사람들은 가난해도 궁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미화하기도 한다. 나 역시 한때는 존재의 갈등을 해갈하는 정신적, 사상적 수원지를 인도에서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하면서 인도에 대해서 느낀 것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인도는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종교나 정신 문화는 인간에게 이익이되고 인간 해방을 지향할 때만 가치가 있다. 인도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와 사상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힌두교를 믿는다. 그런데 이 힌두교는 지금도 카스트제도를 유지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또한 크리쉬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는 계급적 임무와 차별을 강조하는 숙명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인도는 문맹률이 칠십 퍼센트나 되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가난한 나라임이 분명해 보였다. 만일 인도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 요가나 인도 명상쯤일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다가 지쳤을 때 찾아간 곳이 흰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는 다람살라였다. 델리에서 다람살라까지는 버스로 열다섯 시간이 넘게 걸린다. 다람살라에는 한국 스님 세 분과 한국 사람 여섯이 티벳어로 불교를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열흘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그곳에서 티벳어를 배우던 석산스님의 안내로 티벳 사람들의 삶과 불교를 조금이나마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람살라에는 인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다운다람살라와 티벳인들의 난민촌인 어퍼다람살라가 있다. 어퍼다람살라는 망명한 티벳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인도 정부에서 배려한 난민촌 가운데 하나로 아주 작은 산정 도시이다. 그곳에는 오십만 명가량 이나 되는 해외 망명 티벳인들의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망명 정부가 있으며, 티벳 사원과 불교 학교 들이 있다. 다람살라는 인도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이제는 달라이 라마로 인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려고 날마다 몰려들어 하루에도 이 삼백 명이 단체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다.
달라이 라마 저택 앞에는 불교 변증학교(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가 있는데 교과과정은 불교논리학(因明)과 반야부 경전, 중관과 유식, 구사론 들이 있으며, 교과 과정을 다 마치려면 십오 년 가량 걸린다고 한다. 공부가 끝나면 최종 시험을 치루어 통과하면 박사 학위라고 할 수 있는 ‘게쉬’ 학위가 주어지며 특히 불교 교리나 경전 공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불교 논리학을 배우고, 우리나라 강원의 논강과 비슷한 ‘쬐바(對論)’를 한다.
스님들이 불교 논리학을 배움으로써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불교학을 공부할 수 있으며, 존재와 세계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불교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불교에 대해서도 불교적인 논리나 관점으로 이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님들은 날마다 반별로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대중들이 모여서 ‘쬐바’ 라고 하는 대론(논리적인 토론)을 한다. 대론에서는 학인들 가운데 몇 명이 대답자로 대중들 맨앞에 나앉고 또 서너 명이 대중 가운데 서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대답자는 그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해야 하며 또 자리를 서로 바꾸어 가면서 질문자가 대답자가 되고 반대로 대답자가 질문자가 된다. 만일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대중들이 대답자를 향해 야유를 하거나 놀리기도 한다. 이처럼 불교 논리학을 배우고 또한 날마다 대론을 하기 때문에 불교 교리를 개인적인 독단이나 천재성에 기초하여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며 대중 모두는 불교에 대한 이해를 함께 한다. 교단을 구성하는 스님들이 일정한 과정을 밟고 이해를 함께하기 때문에 그 조직은 매우 건실하고, 누구나 어디서든 똑같은 교리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티벳 불교의 승가 교육은 일정한 승가 교육이 없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우리네 스님들은 저마다 불타관이나 불교관이 다르기 때문에, 교단의 응집력도 약하고, 수행은 물론 설법도 서로 다르다. 그러다 보니 불자들의 신행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대중이 참석하는 대론장의 맨뒤에 석산스님과 함께 자리했다. 비록 티벳어를 모르지만, 스님들이 손뼉을 치면서 열심히 대론하는 것을 구경만 해도 재미있었고, 체격이나 생김새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너무 비슷해서인지 아니면 같은 스님이기 때문인지 전혀 낯설지 않고 정감이 갓다.
티벳사람들이 믿는 환생설을 믿지 않지만 다정다감한 그들이 참 좋았다. 그들은 전생에 고승이었음이 확인된 환생자를 매우 떠받드는데, 나는 그것에는 생각이 다르다. 전생에 고승이었다는 분이 다시 태어난 뒤에 또 다시 우리와 똑같이 수행을 해야 한다면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티벳 불교를 라마교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명명이다. 그냥 티벳 불교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교입선이라 해서 아예 교학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하며 성급하게 선방에 가는 경향이 있지만, 티벳 스님들은 현교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나서 밀교 수행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티벳 불교에 대해서, 특히 현교의 교과목이나 그들의 공부 방법에 대해서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인도여행에서는 티벳 불교를 만났으므로 내게는 값진 여행이 되었다.
티벳 불교는 고국을 떠나왔지만 전세계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아마도 인류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