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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바꾸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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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적축 - 원철 1998년 03월 193호
지리적 요건이 언어 감각을 결정한다.
하동땅 화계장터는 섬진강을 낀 영남과 호남의 경계점인지라 양쪽 사투리가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또 으레 다 알아듣는 곳이다. 모르긴 해도 압록강변의 신의주 사람들은 중국말 몇 마디쯤 수월찮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 특수성은 경전 번역 과정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맨 처음경전을 한문으로 바꾼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서역 출신의 스님들이었기 때문이다. 서역 땅은 인도와 중국의 중간에 자리하여 양대문명의 교차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무역 통로로써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은 일찍부터 언어 감각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이 갖추어져 자연스럽게 인도말과 중국말을 동시에 익힐수 있었다.

인도와 불교의 존재가 중국에 알려지다.
천축天竺 곧 인도의 존재가 중국에 처음 알려진 것은 한漢나라 때 장건張騫이라는 사신에 의해서다. 그때에 중국은 서역과의 교류를 위하여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하였다. 서역을 다녀온 그는 조정에 대월지국 동남쪽으로 수천 리 되는 곳에 천축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처음으로 전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하여 이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풍속은 대월지국과 비슷하며, 지대가 낮고 습기가 많으며 고온이다. 그리고 그 땅은 큰 바다에 인접해 있으며, 코끼리를 타고 전쟁을 한다. 또 그 사람들은 불도佛道를 닦으며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을 관습으로 한다.ꡓ
그 뒤로부터 중국 사람들도 천축이라는 나라가 있으며 그나라에 불교라는 종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서역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가 이동하게 되고 더불어 불교도 전해지게 되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불법을 구하려고 사람을 보내기도 하였다.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감몽구법설感夢求法說ꡑ 은 그러한 분위기를 잘 전해 주고 있다. ꡒ후한의 명제가 꿈속에서 신인神人이 몸에 빛을 내며 날아서 궁전 앞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다음 날 여러 신하들에게 이 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해박한 신하가 천축의 부처님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임금은 열두 명의 신하를 대월지국에 파견하여 경전과 불상을가지고 왔다“는 줄거리가 그것이다.

서역인에 의해 한문이 경전으로 번역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불교가 차츰차츰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전 번역의 요구가 나오게 된다. 양梁나라때 승우僧祐가 편찬한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대정장55 No. 2145)이라는 책은 경전 번역의 연기緣起, 목록, 서문, 발문跋文, 번역한 사람의 전기傳記 등을 수록하고 있다. 역경사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이 책은 경론의 목록집으로는 최고의 권위서이기도 하다.
그 내용 가운데 초창기 경전 번역자들의 이름아 열거되어 있다. 축마등, 안세고, 축불삭, 지루가참, 지요, 엄불조, 안현, 강맹상 등 여덟 명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름 앞에 쓰여진 성씨姓氏인 축竺, 안安, 지支, 강康 등은 출신 지방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축竺은 인도, 안安은 안식국安息國, 지支는 대월지大月支, 강康은 강거국康居國을 가리킨다. 천축을 제외한 대부분에 파미르 고원 서쪽의 서역 지방에 있는 작은 나라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결국 처음에 불경을 한역한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서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머리가 뒤바뀌는 가피를 입다
지리적인 이유로 서역 사람보다 인도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중국어에 다소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393-468)스님의 이야기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중인도 바라문 종족 출신인 그는 「아비담잡심론阿毘曇雜心論」을 읽고 불교에 귀의하여 삼장三藏에 통달하고 대승을 배워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교화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유송劉宋 435년 해로海路로 중국 광주廣州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미 그때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터인지라 문제文帝가 사람을 보내어 건강健康 땅으로 맞아들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사단은 그 다음이었다. 왕이 화엄경을 강론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화엄경의 내용이야 이미 대승에 통달한지라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언어 장벽이었다.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법을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릴 순간이었다. 고민 고민하는데 번쩍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 기도를 하자.ꡓ
아침저녁으로 예불참회 기도를 하면서 가피력加被力을 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사람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간의 사정을 모두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ꡐ걱정하지 말라ꡑ 하고는 단칼에 스님의 머리를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새 머리를 다시 목 위에 얹어 주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너무 놀라서 화들짝 잠을 깨니 꿈이었다. 몽중 가피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구나발타라스님은 중국말에 능통하게 되었고 또한 그 화엄 법회 역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처럼 초창기 역경승들은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심으로 이겨내면서 불교의 세계화에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었던 것이다.


영어 또는 다른 외국어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한번 해 볼 일이다. “나도 머리를 바꾸어 주십시오” 라고 발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