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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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2년 11월 129호
잎새들의 새 떼가 수천, 수만으로 만추의 계곡에 죽은 영혼이 되어 드러눕고, 찢긴 창호지 창문 사이로 찬바람 스잔한 법당. 황촛불이 시린 눈물로 흘러내리던 꼭두새벽의 예불은 왜 그리도 황망하던가.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창패를 맡은 스님이 또랑따랑한 목소리로 선창을 하면 대중스님네의 한 소절 뒤 후렴으로 새벽 예불은 시작되는데, 그 사이사이에 부전스님이 이 경쇠를 쳐서 예불을 인도하게 된다. 몸을 구부리고 찬 마룻바닥에 이마를 대는 그 순간에도 졸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파고들고 그 사이로 쨍쨍하는 맑은 놋쇠 두들기는 소리가 아스라히 들리고는 했다.
새벽 법당에서 함께 어우러져 들리는 목탁소리, 요령소리 그리고 이 투명한 경쇠 소리는 우리 수행자들의 정신을 늘 새롭게 하는 법구들이다.
경쇠는 놋쇠를 녹여 모양을 주발과 같이 만든 뒤에 그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달아 만드는데, 노루나 고라니 같은 짐승의 뿔이나 송진액이 강한 소나무 뿌리로 쳐서 소리를 내는, 불전 의식에 쓰는 기구이다. 또 법회를 진행할 때에도 법당의 노전 스님이 이 경쇠를 쳐서 운집한 대중들을 앉거나 서도록 인도하기도 한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이 경쇠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총림의 법도가 엄격한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불가의 옛 풍물이 되어 버렸다. 왜 이리도 쉽사리 세월의 뒤안길로 숨어들고 마는 것일까.
어느 해 찬비 내라던 늦가을, 송광사의 부도전에서 한 노스님이 독경을 하면서 쨍쨍 울려대던 그 경쇠 소리는, 지금은 어떤 시간의 굽이에서 아스라한 꿈의 물안개로 젖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