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 장경의 보존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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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남일
1998년 03월 193호
ꡐ항상 하는 것이 없다‘ 라는 것은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의 요체이다. 그래서 생, 노, 병, 사와 인과因果를 강조하신 것이다. 그렇다. 무릇 생명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항상 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사라지거나 죽거나 퇴락해 가기 마련이다. 여기 지금 내가 소임을 맡고 있는 고려팔만대장경과 이 경들을 보존하고 있는 장경각도 이러한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팔만대장경을 보관해 온 고려대장경 판전이 지금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때를 맞아 지금 판전의 상황과 그 상태를 점검, 정리해 보려고 한다.
여기서 판전版殿이라고 하는 것의 공식적인 용어는 ꡐ판고版庫ꡑ 이다. 경판을 보관하는 보고寶庫라는 뜻인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성스러운 법보法寶가 모셔진 전각願開이라는 의미에서 판전이라 부른다.
이 판전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단지 1488년에 왕과 왕비의 원력으로 중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각 160평의 크기로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초과학적인 설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판전의 보수나 수리에 대한 자세한 문헌이 없어 그 정확한 자료는 알 수 없고, 1960년대 초에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건물이라는 것은 어떤 용도이든지 그 곳에 보관되거나 사용되는 것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피폐해지고 풍우에 의해 노쇠해지기 마련인 것이라 적당한 시기가 오면 보수 및 수리를 해 주어야 한다. 언제인가 지붕을 천막으로 덮어 비를 막던 장경 판전의 초췌한 모습을 기억하리라. 지금이야 그러한 안타까운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그 때에만 해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과 국가재정의 궁핍으로 여러 지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위에서 말했듯이 장경 판전의 역사는 510년쯤 된 전통 한옥식 목조건물이다.
우리 전통 한옥의 자재들을 살펴보면 흙, 회, 나무, 기와, 돌이 전부이다. 이 가운데서도 에너지의 흐름과 생성을 통해 생명의 생과 멸을 되풀이하는 것은 나무 재질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장경 판전의 가장 큰 문제는 목재 부분이다. 이 나무 재질은 수분과 통풍, 그리고 벌레나 균의 침투에 의해서 판전 자체의 유지가 판가름나는데, 지금 장경보존부가 의뢰 연구한 결과, 특별한 해충이나 균의 침투로 말미암아 손상된 경우는 없고, 다만 풍우의 침투로 부식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이 기와와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간단히 말해서 지붕부분의 부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판전의 기와에 대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 보자.
첫째, 지금의 장경 판전은 기와의 규격이 일정하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간단하게는 상,중, 하의 규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관계자의 이야기로는 당시(1960년대) 보수공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국가적인 상황이나 사찰측 상황에 따라 기와를 제조하였는데, 처음에는 해인사 스님들이 직접 가마를 만들어 흙을 다지고 구웠다. 그러나 그 규격이나 강도, 밀도 등의 문제와 건축비에 따른 기와 규격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기와전문업체에 통일된 규격을 맞추게 하였으며, 일부는 건물의 고풍미를 내기 위하여 기존에 올려져있던 기와를 다시 썼다. 그래서 기와의 규격이 일정치 않을 것이다ꡑ 라고 한다. 이렇듯이 기와가 서로 이가 잘 맞지 않다 보니 우기시에 빗물이 스며드는 것은 자명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 위의 말처럼 기와 제작의 전문 지식이 없던 스님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기와가 흡수율과 강도 등에서 문제가 없었겠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 때 기와 제작에 참여했던 스님의 말을 들어 보면 ꡐ그 때 내가 사미로 강원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온 대중이 마장이라는 곳에 가마를 만들어 놓고 발로 흙을 밟아서 대충 형태를 만들어 그냥 불로 구운 것이라서 과학적이거나 전문적인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ꡑ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방수율과 흡수율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수율이 떨어지고 흡수율이 높아지면 자연히 그 아래 있는 보토에 수분이 스며들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래있는 연목이나 상량목 등의 부식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에 보수를 마․친 서사간전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충분히 노출된 바 있다.
둘째, 지금 수다라전을 보면 빗물이 새어 들어와 연목까지 부식되어 가고 있음이 육안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재 진행 계획중인 장경 판전 보수 공사의 주범이다. 연목이 부식되어 간다는 것은 엄청난 문제이다. 육백 개쯤 되는 연목 위에 몇 십 톤의 흙과 몇 백 톤의 기와가 올려지는데 아무리 그 무게 하중의 분산을 유도한다고 해도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스며든 빗물은 물방울이 되어 경판위에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연목의 경사를 타고 내려와 그 밖의 추녀나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셋째, 기둥 부분의 문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장경각 내 네 건물의 기둥은 모두 일백팔 개이다. 그 가운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기둥이 예순 네개이고, 판가 중앙에 있어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기둥이 마흔네개이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기둥의 대부분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수다라전 서쪽 맨 뒤쪽기둥이 약간 비틀어지며 갈라지고 있는 것이 한 개 있다. 이것은 곧 건물 하중 분배가 깨어지고 한쪽으로 기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대책이 시급하다. 또 서사간전의 앞쪽 중앙 기둥 윗 부분이 완전히 부식되어 스폰지처럼 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교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곧, 건물과 경판의 하중을 이중으로 받고 있으며, 햇빛이 들지 않아 균이나 충의 침식이 쉬운 판가 중앙의 마흔네 개 기둥이다. 본 보존부가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판가 중앙의 기둥에는 나무좀의 침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번식이 중단되고 좀벌레의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좀벌레가 침투한 것이 확인되었다면 이것은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할 부분이다. 지금 이 마혼네 개의 기둥은 경판과 가장 밀접한 곳에 있다. 경판의 숲 속 중에 서 있는 이 기둥에 좀벌레가 침투한 적이 있다면 경판에까지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조사 결과 그러한 기둥주변의 경판에서 아직 좀벌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습기가 많은 법보전의 중앙기둥들에만 보이는 이 현상에 대한대책이 시급하다.
넷째, 화재나 방범에 대한 방지, 경보 시스템의 도입이 또한 시급한 실정이다. 아직까지는 한번도 화재나 인위적인 도난이 일어나지 않은 성역이긴 하나 지금까지 안전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안전하리라는 그런 막연한 믿음에 의존할 수는 없다. 갖가지 성보가 도난 당하고 이교도에 의한 사찰 훼손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요즘, 첨단경비 시스템의 도입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일 것이다.
지금 해인사에서는 98년에 수다라전과 법보전 두 판전의 지붕을 교체할 계획이다. 이것은 고려팔만대장경의 보존을 위한 중대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이 보수 공사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 여염집에서도 지붕에 물이 새고 서까래가 썩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고쳐야 하는 일이거늘 어째 이 성스럽고 보배로운 우리의 문화유산이 비 맞고 연목이 부식되어 위험에 처하는 것을 그냥 볼수 있겠는가?
장경 판전의 지붕공사는 단순한 지붕 공사가 아니다. 우리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줄 우리의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인정신으로 임해야 할 중요한 문화사업이다. 관할 관청에서는 단순히 정부예산 집행의 차원에서 안일하게 행하여서도 결코 안 될 일이며, 책임 없는 문화재 관계 당국의 안일한 의식이나 탁상 공론식의 협조는 오히려 사찰측의 책임 있는 노력에 장애가 될 것이므로 이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찰은 부단한 연구와 꼼꼼한 일 처리로 한치라도 흐트러짐 없는 원만한 불사가 될 수 있도록 참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