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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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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경구 - 영덕 1998년 03월 193호
쇼팽의 왈츠10을 듣던 날, 잿빛 하늘가 스산한 바람이 지나고 있었다. 피아노 선율을 따라 의식 속에서 둥글게 무리 지어 일어나던 고운 빛 무리, 무수한 빛깔들… 강가에서 물을 바라보며 긴 머리를 날리는 환영과 젖힌 목 뒤로 푸르게 다가오는 하늘, 눈부신 햇살, 원무, 자유롭다. 문득문득 내 속에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채운이와 니나붓슈만의 서로 다른 얼굴을 만날 때, 때로 얼마나 절망했던가 어쩌면 애당초 그렇게 사는 일이 내게 맞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네모진 틀 속에 자기를 맞추고 규격에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늘이며 살아내기 위하여 부단히 견디어 온 세월은 아니었나. 이젠 익숙해진 무채색의 현실 속에서 탈색되어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빛인 줄 알았다. 철저히 가난해지고 철저히 고독해지려 선택한 길, 그러나 실존의 엄청난 무게를 홀로 감당하기엔 나약한 영육, 그 육신을 끌고 세월의 강을 건너 이쯤에 표류하며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결사를 꿈꾼다. 자죄自罪를 미탈末脫하면 타죄他罪를 불속不贖이라 하였다. 자기의 죄를 벗어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죄를 속받쳐 줄 수 없는 것이다.
내 안의 개혁, 올올한 구도의 자세! 확신! 바깥을 완성시키는 그일로 나의 완성을 삼는다는 것. 진정한 의미의 수행, 그 수행의 끝자락에서 보살은 끝없는 보살행으로 자기 수행의 완성을 삼는 것. 팔정도나 육바라밀을 자기 삶의 실천 원리로 한발 한발 점검을 잊지 않을 때, 때로는 더 큰 절망을 만나고 실핏줄까지 아프던 기억을 상기해야만 한다.
인류가 처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없다는 자각아래 현실적인 우리의 문제, 사회와 인류의 아픔을 감싸안고 고민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인으로, 성직자로 내 안의 것도 극복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귀족적인 삶의 안착에서 벗어나 누더기와 헌신과 희생, 동사섭---이론과 실제. 끊임없는 힘---그 일의 조직화---기도의 저력---우리는 거듭나야만 한다.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안일하여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자신을 속여서도 안 된다.
오랫동안 써 오던 낡은 수첩에서 주소를 정리하여 새 수첩에 옮겨 적었다. 이젠 옮겨 적을 주소가몇 개 되지 않는다. 한번쯤 더 만나 보고 싶은 전화번호도 애써 지워 버렸다. 모진 것---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결국은 철저히 혼자서야 한다는 것.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잠깐 동안의 휴식조차도 이 생엔 없는 것이다. 삼시예불, 바루공양, 대중과 더불어 함께 하기를 원하던 삶이다. 맺을 때 맺을 줄 알고 끊을 때 끊을 줄 알고,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설 줄 알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자기만큼의 삶, 차고 예리한 이성으로 응집된 수행자의 얼굴, 날선 눈빛을 위하여, 진정한 회소향대廻小向大를 위하여 지금은 철저하게 자기 속으로 돌아서야 할 때이다. 칩거와 침묵에 힘이 붙는다.

서원문誓願文
불조의 대도를 중흥하고 말세정법을 부양하기 위하여 삼가 삼보전에 천배 하옵고 좌기서원을 앙품하오니 만약 이 서원을 위배할 때는 생함지옥 하겠습니다. 오직 삼보께옵서 특히 가호를 주시옵소서.

一. 항상 산간벽지의 가람과 난야에 지주하고 도시촌락의 사원과 속가에 주석하지 아니하겠습니다.
二. 향상 고불 고조의 유법과 청규를 시범역행하고 일체의 공직과 일체의 집회와 회의에 참여하지 아니하겠습니다.
三. 항상 불조성훈의 앙양에 전력하여 기타여하한 일에도 발언 또는 간여하지 아니 하겠습니다.

갑진 구월 십삼일
삼각산 도선사 청정도량에서

서원불자 청담
서원불자 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