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o}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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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고형렬
1998년 03월 193호
“중철아. 너는 아이엠에프가 뭐라고 생각하니?” “아이엠에프요?” 하고 되묻더니 단벅에 “세균!” 한다. 수저를 달가닥거리며 입에 밥을 가져가던 우리 다섯 식구의 밥상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큰누나가 “째는?” 하고 눈치를 준다.
“세균이 뭐니, 도깨비라고 하지!”
아이엠에프가 초등학교 이학년 아이에게 심각한 그 무엇으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제 딴에는 세균이 자기에게도 퍼졌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그럼 너 잘 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말을 못하고 기가 죽는다.
아이엠에프. 이것을 뭐라고 해야 될까? 현실적으로 세균이 직장과 가정 속으로 깊이 전염되는 속도를 보면 막내 말이 점점 맞아떨어진다. 이런 것이구나. 아이엠에프라는 세균에 감염된 주변 사람들의 안색도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 병증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어떤 해괴망측한 증후군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15층 아파트에서 오물을 아침에 들고 걸어 내려가게 된다, 전기와 가스, 석유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거라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닌다. 아이앰에프 병마는 사람사이 기업과 사람사이, 물질과 인성 사이의 믿음을 등지게 하면서 우리 사회를 파산, 실직, 소외. 무관심, 자살 등 침체와 절망의 나락 속으로 계속 추락시키고 있다.
월초에 인천에 사는 모시인이 시집 「성에꽃 눈부처」를 잘 받았다고 전화를 주었다. 작문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분은 이렇게 한탄을 하였다. “누가 내 옷을 벗기는것 같아요” 전화를 마친 뒤에 한참 동안 그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누가 내 옷을 벗긴다’ 이것은 치욕적인 일이다. 지금 우리는 인격도 얼굴도 없는 아이엠에프로부터 발가벗겨지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이 의복을 벗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선 예의를 잃게 된다. 그리고 남의 마음과 처지를 외면하게 되고 자신의 입장만을 챙기고 믿음의 부도를 낸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에 심리적인 공황으로 이미 나타나 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못할 짓을 하고 “아이엠에프 시대에 그렇지ꡓ 이렇게 자위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 모두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돌아보면 돌이 된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무슨 말이냐 했더니 화두를 던지듯 거듭 “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웃었다. 그 말은 뒤에 있는 것은 쓸데없다, 돌아보면 분통만 난다는 뜻이 담긴 것도 같고 앞만 보고 가라는 뜻도 같았다. 하기는 1997년 10월 이전까지의 경제를 되돌아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 전엔 달러 보기가 어렵다더니 이젠 원화 보기도 어렵게 되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 정경政經을 맡은 사람들도 대기업들도 아이엠에프의 처방에 묘책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다만 이 파경을 우리가 지난날 수십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깨끗하고 인정 있고 물건 귀중함을 아는 진면을 되찾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잃은 것 뒤에는 얻을 것이 와 있겠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나는 긴 방황 속에 버려질 것이다.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발견하고 상처를 다독이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봄이 오는데도 서울이 조용하고 침울한 듯 하지만 그속에 북한산, 한강, 사람. 거리가 달라 보일 것이다.
오늘은 날이 꾸물거린다. 아이엠에프가 대관절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고 내 마음의 바다를 내다본다. 니는 해인의 바다가 흔들리는 것을 본다. 수면 위에서 사람들의 마음아 변하고 있다. 하나의 마음(一心)에서 백 가지 만 가지의 마음으로 갈라지고 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소설을 쓰는 문우의 말이 귀를 때린다.
“나 아무래도 생일도로 내려가야 될려나봐.” 생일도는 친구가 태어난 완도 곁에 있는 작은 면소재지 섬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면서 친구는 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훌훌 털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가 이곳 서울에서 뿌리내리고 실아 온 내력이 만만치가 않이서 귀향이 그리 단순하게 이루어 질 일은 아니다. 먼저 아이들 교육 문제가 막아선다. 재산이라고 해야 아파트 한 채이지만 그것을 처분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고향에 가면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뿌리를 뽑아야 갈 수 있는 일이다.
언젠가 나도 동쪽으로 내려가 살고 싶다했더니 집사람 말이 꼭 그러고 싶으면 당신만 가세요, 우리는 여기서 죽이 되든 법이 되든 끌까지 설아 볼 작정이란다. 당신은 고향이 그리워 내려가고 싶겠지만 아이들이야 여기가 고향이라 여기서 살고 싶어한단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 결국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서 살아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엠에프가 아직도 그 위력을 다 발휘하고 있지 않다는데 우리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그 위력이 얼마쯤인지, 앞으로 어떤 현상들이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미풍이 불기 시작하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좀더 심해지면 쓰레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보다 더 심해지면 덤이 무너지고 마지막에는 집이 무너진다.
금세기에 소련이 붕괴된 것처럼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걸까? 자카르타에서는 연일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에 아이엠에프 핵탄이 떨어졌다, 일본도 금융 지진이 일어나서 침몰한다, 다음은 중국 차례가 아니겠느냐, 이 사태가 유럽과 미국으로 이어져 세계 대공황으로 가는 다음 세기 초의 징후가 아니냐는 말들을 한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어떻게 실이야 할것인가? 나는 꾸물거리는 창 밖의 날씨를 보면서 다시 찾아오는 봄날의 비도 그 뒤의 따뜻한 햇살도 믿어야 한다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자연의 대법칙에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친구들이여, 견디고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네. 세계 금융계는 우리에게 겨울잠을 요구한 것 같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갑작스럽게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안 되네. 겨울잠에서 갑자기 깨면 곰은 회생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더군.
인류는 욕망과 고속 성장의 오만에 대한 반성, 삶의 새로운 질서와 가치관, 자연과 진리에 대한 겸손함, 절제된 생활의 미학을 가진 사상을 필요로 한다.
어설픈 희망을 떨치고 이 풍파를 받아서 우리가 지금까지 얻으면서 잃은 것들을 찾는다면 이런 시절에 그 또한 얻음이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가련한 마음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모오든 산짐승과 들짐승들이 제 목숨을 감추고 겨울을 나고 있는데 추운 신춘 어느 오후, 못 먹어 얼굴이 수척한 매 한 마리가 떨어질 듯 구릉을 낮이 날아간다 저 주린 창자에게 생명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