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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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02월 192호
가야산이 생겨난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자칫 가야산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지금 가야산이 처한 위기를 국민은 물론 불교계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야산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골프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가야산에도 일어나는 것이겠거니’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정말로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한 삽날이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인사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물론 반대의 명분은 충분했다. 가야산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은 세계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민족문화의 성지인 해인사를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 가야산 자락에 50만 평에 가까운 골프장이 건설되면 국립공원 가야산의 파괴가 불가피하며 자연 생태계와 환경의 파괴가 심각하다는 것, 또 만일 집중호우가 왔을 때 보수력의 약화로 홍수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엄청난 양의 농약 살포로 수질이 오염돼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이 불가능해져 지역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것 등이 가야산에 골프장어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가야산 지킴이’들의 호소는 국민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짧은 시간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의 지지 서명을 받아냈다. 그러나 끝내 대법원이 골프장 건설 승인을 취소하려는 국민의 호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가야산은 다시 그 가슴에, 그것도 ‘해인’ 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프장이라는 흉물을 붙여야 할지도 모르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가야산 골프장말고도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위장한 파괴의 삽날이라는 또 다른 ‘마구니’들을 맞이해야 하는 악연에 휩싸이고 있다. 골프장 사업을 처음 승인했던 경북 성주군이 이번에는 가야산 북쪽 능선인 가천면 신계리 일대에 42만평 규모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있다. ’신계지구 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이 관광단지에는 호텔을 비롯하여 숙박단지와 쇼핑센터, 산악 자전거장, 자동차야영장, 놀이동산, 눈썰매장 등 30여 가지의 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란다. 오는 2005년 완공을 목표로하고 있고 540억여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이 사업은 대부분 민간개발업자들에 의해 추진된다. 해마다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추진되는 이 사업이 가야산을 심각하게 파괴할 것이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대규모 골프장과 관광단지 건설 추진으로 이미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야산에 이번에는 건설교통부와 부산지방국토 관리청이 관통 및 순환도로건설이라는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국가지원지방도59호선 가야―봉산(가야―가조 간)도로 2차로 축조 공사’ 라는 이름으로 계획대로라면 3월부터 추진될 이 도로는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서 가야면 성기리까지의 총연장 12.9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 폭 11미터의 왕복 2차선 규모로 계획되어 있다.12.9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 중 교량8개, 터널 1개, 교차로 3개가 설치될 계획이다. 부산지방국토 관리청은 이 도로개설로 인해 지역 간 교통기능이 강화되고, 지역의 균형 발전이 촉진되며, 관광철에 가야산 국립공원의 교통난 완화, 가야산국립공원 관광산업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부산지방국토 관리청은 이 도로로 인하여 가야산의 생태계와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민족정기의 요람이요 한국불교 최고의 수행성지인 해인사를 한낱 관장대상물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없 다. 환경 영향평가라는 그럴듯한 통과의례를 거치기는 했지만, 이 도로가 뚫림으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이 도로가 해인사의 수행 환경을 파괴할 것이고, 세계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등 국보 3점, 보물 15점, 사적 및 명승 1점, 사적 2점, 천연기념물 2점, 중요민속자료 2점, 유형문화재 24점, 기념물 6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27점 둥 총 82점의 문화유산이 직간접으로 훼손될 것이고, 수려한 자연환경과 보존 보호하여야 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또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전통사찰의 환경을 수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종교환경권’도 환경영향평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1995년 9월 7일)를 무시한 환경영향평가는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되어야 마땅하다. 또 이 도로가 개설되면 마장동 일대에 상권이 형성될 것이고 도로주변을 따라 각종 위락시설이 생겨남으로써 종교, 문화환경의 훼손은 물론 한국제일의 계곡인 홍류동 계곡이 오염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특히 이 노선이 당초에는 봉산면-가조-가북-용암-개금-수륜면이었으나, 개발 이익을 노리는 일부투기꾼들의 농간으로, 봉산-수산-마장-삼정 -신부락으로 바뀐 것은 이 계획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정 거래가 있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미 해인골프장이 들어설 가야산 백운동지구는 대형 숙박시설과 야영시설이 국립공원의 경계선을 따라 형성되고 있어 백운동 지구의 수려한 경관은 입술 없는 이빨처럼 흉물스럽게 노출돼 있다. 이 지역은 법수사터, 용기사터를 비롯한 다수의 불교문화 유적이 산재해있는 곳으로, 아직까지 이 일대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개발에 따른 문화유적의 훼손도 우려되고 있다. 또 가야산 서쪽지역인 경남 합천군 치인리 가야산 국립공원일대 10만여 평은 90년대 초부터 대규모 고랭지 채소단지로 돌변해 물 맑기로 소문난 홍류동 계곡의 주된 오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밖에도정부는 경남 합천, 산청 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설정하고 올해부터 가야산 남쪽 기슭에 해당되는 가야면 대전리 일대에 대규모 온천형 휴양위락단지 조성에 245억 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들어선 숙박, 위락 시설들이 지하수 개발을 위해 크고 작은 관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추세라면 불과 몇 년뒤 가야산은 회복 불능의 만신창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오백 명이 넘는 스님이 수행정진하고 있는 으뜸가는 수행정진 도량 해인사는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한낱 볼거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세계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는 그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지리산의 생태계를 극도로 황폐화시킨 관통, 순환도로 건설의 악몽이 가야산에도 재연될 것이다. 국민 모두의 휴양지요, 자연관광지가 되어야 할 가야산은 극소수 특권층의 위락을 위한 시설로 전락해 다수 국민의 외면을 사게 될 것이다. 골프장으로 벌거벗고, 온천 개발로 구멍이 뚫리고, 숙박 및 위락시설로 파헤쳐지고, 도로로 갈래갈래 찢어지고 관통된 가야산. 이런 가야산에 무엇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정기精氣도, 경관도, 수행 열기도, 문화재의 향훈도 모두 사라져 버린 파괴된 가야산에 우리는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황폐한 골짜기에 기름진 피부와 불쑥한 아랫배를 흔들며 골프채를 어깨에 둘러멘 사람들만이 몇 명씩 찾아오는 곳,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곳으로 가야산을 몰아가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를 방조하거나 방관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다행히 해인사의 대중 스님과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가야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 가야산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 힘겹지만 의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호소는 지난해 12월 30일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보이듯 미약하기만 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유세 당시 해인사골프장 백지화서명에 동참한 것을 들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 호소를 했을까. 분명한 것은 해인사와 가야산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이들 관련 단체들의 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이 나서야 하고 불교계가 나서야 한다. 해인사만 나서서 될 일이 아니다. 총무원이 나서야하고. 전국사찰이 나서야 하며, 2천만 불교도가 나서야 한다. 정부와 건설, 개발업자에 압력을 행사하고 동시에 설득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될 일이다. 가야산을 지키는 일은 해인사를 지키고, 불교문화를 지키고 불교를 지키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