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에 놓여 있는 사람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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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 - 혜묵
1992년 10월 128호
며칠 전 중국 남방의 샨토우(汕頭)시, 샨토우 대학에서 컴퓨터 관계 학술 좌담회가 열렸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주최하고 그 대학이 협찬한 회의의 주제는 중문, 한자 정보를 컴퓨터 자동화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사회과학원 계산기실에 연계되어 그곳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자를 국어로 하는 중국과 대만의 현실적인 수요는 말할 필요도 없이 한자 문화권에 속한 나라에게 이와 같은 한자를 포함한 정보의 자동화 기술은 이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컴퓨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방대하고 난해한 한자 정보조차 자동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최근 들어서는 동양 국가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의 학계에서도 유용한 실적과 경험들을 내놓게 되었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에서는 87년 9월 상해에서 한자 정보의 전산화를 내걸고 1차 좌담회를 개최한 이래 기술과 자본, 이해의 부족으로 어려움과 실패를 거듭하다가 최근 퍼스날 컴퓨터를 이용하여 27권, 800만 자 규모의 전당시검색계통全唐詩檢索系統을 개발하여 성공시킴으로써 바야흐로 이 분야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성공은 일본이나 대만, 홍콩의 선진 기술이 주도하고 있던 분야에서 중국 대륙이 자존심을 회복한 계기가 되었다. 샨토우에서의 회의도 이런 분위기와 중앙의 관심과 호응을 반영한 것으로,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서 회의 마지막 날 관계 국가들을 포함하는 “인문전뇌학회人文電腦學會”의 결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고대 문헌 분야의 발전은 더욱 놀랍다. 1990년 6월 대만에서는 이미 5천 6백만 자 규모의 이십오사전문자료고二十五史全文資料庫를 완성했고, 크고 작은 각종 문헌들을 단계적으로 입력해 가고 있다. 지금 같은 발전 추세로 보아서는 머지 않아 모든 한문 문헌을 중앙컴퓨터로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불교 문헌과 대장경에 대한 관심도 대단해서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험적으로 부분을 입력하여 활용하고 있으나, 아직 전체적인 완성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한문 문헌의 자동화 시대를 위한 모든 논리적이고 기술적인 장애물은 제거된 듯하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 수준은 뜻밖에도 낙후된 편이어서 모든 나라가 겨우 몇 년의 경험과 시험적인 성공만을 거두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국가 사이에 얽힌 문제와 한자가 갖는 특유의 어려움들, 처리와 해결 방식의 혼란으로 앞으로 전망도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장애물은 자본과 인력의 부족이다. 다행하게도 이 분야에 대한 요구와 이해의 확산은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지금의 어려움들을 빠른 속도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경비부족을 문제로 삼지만, 지금까지 한자 정보의 처리를 위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투자해 온 시간과 경비에 견주면 한자 정보의 자동화에 드는 비용은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보기를 들어, 중국의 한 문헌 학자도 영락대전永樂大典의 색인을 위해서 십여 년 동안 이십만 장의 카드 작업을 해 왔다. 그러나 컴퓨터 앞에서 허무함을 느낀 그 반백의 학자는 이제 남은 일생을 한자 문헌 자동화에 바칠 것을 선언하였다. 시대는 자꾸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기를 놓치면 설 자리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이번 회의가 열린 샨토우 대학은 남쪽 해변가 특구의 교외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인접한 챠오죠우(潮州)시와 더불어 챠오산(潮汕)이라는 독특한 문화 구역으로 불리운다. 특히 한퇴지가 머물면서 숱한 명문장을 남긴 곳으로 챠오죠우에는 그를 기리는 문왕묘文王廟가 있다. 회의가 끝난 뒤, 학교측의 배려로 부근의 몇몇 명승지를 관광할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개원사開元寺라는 선종 사찰이었다. (중국에는 개원사라는 이름의 절이 몇 군데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잘 알려진 절들로서, 당현종이 주도해서 개창하고 중창한 사찰들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움직이면서 훑어보는 식이었지만 동행했던 젊은 컴퓨터 전문가와 나눈 유쾌한 대화 때문에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제법 규모도 크고 손질도 잘 된 경내에는 지장전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지장보살을 신라의 왕자 무상(無相,김교각, 김화상)으로 알고 있다.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김화상, 지장보살을 언급하는 통에 새삼 의아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법당 앞에 향을 사루고 불전에 참배했다. 제법 진지한 신앙인의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하여 그 백발의 한학자들과 컴퓨터 전문가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던 것은 전시관에 걸린 혈경 한 권과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절에 살던 한 스님은 무문관無門關에 들어가 삼 년을 지내면서 혓바닥에서 피를 뽑아 그 피로 화엄경 전권을 베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이제 혓바닥이라니. 선명한 핏빛 글자들과 산사를 나온 뒤에 장발과 수염 투성이로 가사를 걸친 채 찍은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 아직 불교의 잔재가 남아 있고 향 냄새가 감도는 것은 강철 같은 신심을 가진 선사들 덕택인가. 그 형형한 눈빛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뼈골이 삭은 학자들 마음도 움직였던지 이제는 제법 중국 불교의 전통과 장점에 우쭐해 하는 분위기들이다. 이중 삼중, 중중무진으로 꼬여드는 어리둥절.
“평생을 일해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살아서 순종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천국의 은혜에 희망을 걸라고 권한다. 종교는 또 남의 노동에 기생해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살아서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헐값에 그들을 위해 착취하는 생활을 변호해 주고, 헐값에 천국으로 가는 표를 판매한다.” (레닌,「사회주의와 종교」)
세계가 변하고 중국이 변한다고 떠들어 봐야 종교를-불교 또한 종교라고 하니까-보는 중국인들의 시각은 아직도 저 같은 태도 주위를 맴도는 것 같다. 그들 중국의 지식인들도 혓바닥의 충격에서 얼른 벗어나 합리적인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그 혓바닥 화엄경을 변태화한 종교의 증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종교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말하는 이론들은 모두 실제는 기독교를 겨냥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의 특정한 역사를 반영한다. 그러나 온갖 무기를 동원하여 기독교를 비방하고 공격하더라도 그들도 안다. 기독교가 단순한 변태나 병태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들이 동성연애자를 깔보면서 변태라고 부르듯이 기독교를 깔보며 얕잡을 수는 없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의 한 부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적개심과 분노를 토로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종교는 끈질기게 살아 남아 저항하고 도전한다. 그것은 적군이 되고, 피차가 맞서는 현실이 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불교는 담박에 변태가 된다. 적개심도 없고 분노도 없다. 적으로 간주해야 할 가치도 없는 무력한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래서 문화혁명의 혼란 속에서 쓴맛을 본 지식인들도 이제 여유있게 쇠락한 사찰 앞에서 연민을 표시할 수도 있다. 완전히 변태가 되어버린 과거의 찬란함 앞에서 잠깐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그러고는 교과서에서 배운 반종교의 날카로운 무기를 거두어들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불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태가 된다.
개원사 법당에 분향하던 청년이 되물어 온다. 왜 불교가 변태라고 간주되는지, 불교가 변태라면 어떤 종류에 속하게 되는지 알겠냐고. 그는 대답을 준비할 틈도 없이 역일역이亦一亦二, 비일비이非一非異의 불교식 논리를 장황하게 설명해 댄다. 중국인의 사고 방식으로는 일一과 이異는 항상 병행하는 분별할 수 있는, 분별해야 할 상대적인 개념이란다. 보기를 들어 음陰과 양陽, 남男과 여女는 명증하게 분별되는 사유로 당연한 이치(理)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유 기초를 가진 사회에서 불교는 이제 완전히 자기 설득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남녀가 유별한 세계에 역남역녀亦男亦女, 비음비양非陰非陽의 논리는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괴상한 이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려들이 출가하여 독신으로 역남역녀亦男亦女,비음비양非陰非陽으로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독특한 성 변태가 아니겠냐고 웃는다. 버스 안에서 서투른 말로 떠벌이는 농담에 불과했지만, 사실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정태적인 윤리 질서에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짝짓기가 변태라고 여겨질 수 있다면, 역일역이亦一亦異, 비일비이非一非異의 생활 태도도 변태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겠다 싶었다.
중국에도 스님들이 혓바닥에서 피 뽑아 사경하면서 세속의 변태적인 생활을 탓하고 교화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스로 변태적인 삶을 부끄러워하며 가르침을 따라 용맹 정진하던 불자들이 있었다. 어제의 정태가 오늘의 변태로 된다. 금강경에 겉모양만으로는 여래如來를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혓바닥에서 피를 뽑는 행위 속에서, 그 놀라운 묘기대행진 뒤에서 현대인들은 무엇을 읽으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