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아들의 대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때 존자 라훌라는 부처님께 나아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듣고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하게 생각하여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머물러 알뜰하게 생각하고 방일하지 않은 뒤에는 성을 지닌 남자로 수염과 머리를 깎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가 집이 없이 도를 배우고 범행을 닦아 지니는 까닭은, 법을 보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험하여 생의 의미를 다 알고 범행을 세우며 할 일을 다 마쳐서 다시는 갈등에 휩싸이지 않음을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이 해탈의 슬기가 아직 일지 않았고 더 높은 법을 받아 감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의식의 현상, 느낌, 생각, 행동 들을 가르친 일이 있느냐.”
라훌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직 없습니다, 부처님.”
“너는 마땅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식의 현상, 느낌, 생각, 행동에 대해서 말해 주어라.”
그때 라훌라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며칠 뒤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의 현상, 느낌, 행동 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미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식의 현상, 느낌, 생각, 행동 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원하옵노니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법을 설해 주소서. 저는 법을 들은 뒤에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하게 생각하고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갈등에 휩싸이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이 해탈의 지혜 아직 일지 않고 더욱 왕성한 법 받아 감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너는 남을 위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설명한 일이 있느냐.”
라훌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직 없나이다, 부처님.”
“너는 마땅히 남을 위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 대해서 말해 주어야 한다.”
라훌라는 며칠 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제 남을 위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말해주었습니다. 원하옵노니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법을 설해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듣고 마땅히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하게 생각하면서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갈등에 휩싸이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직 라훌라의 마음이 해탈의 지혜 아직 일지 않고 더욱 높은 법을 받아서 담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너는 일찍이 니다나법을 남에게 말해 준 일이 있느냐.”
“아직 없습니다, 부처님.”
“너는 마땅히 다른 사람들에게 니다나법을 말해 주어야 한다.”
라훌라는 며칠 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니다나법을 널리 말해 주었다. 그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해 법을 말씀해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하게 생각하며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갈등에 휩싸이지 않음을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이 해탈의 지혜 아직 일지 않고 더 높은 법 감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위에서 말한 법들을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하게 생각하고 그 뜻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 때 라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위에서 들은 법과 말한 법을 그대로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 뜻을 관찰하였다. 그리하여 이 모든 법은 다 깨달음을 따라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흘러들며, 끝내는 깨달음에 머물게 된다고 알게 되었다. 그때 라훌라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미 위에서 들은 법과 말씀하신 법에 대해서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 뜻을 관찰하여 이 모든 법은 다 깨달음을 따라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흘러 모이며, 마침내 깨달음에 머문다고 알았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이 해탈의 지혜 성숙되고 더욱 높은 법을 감당할 수 있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모든 것은 덧없다. 무엇이 덧없는 것인가. 이른바 보이는 것의 덧없음 또는 현상과 눈에 비침과 눈에 보임 들도 또한 덧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것들을 더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그때 라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물러갔다.
그 때 라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 알뜰하게 생각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성을 가진 남자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서 집이 없이 도를 배우고 오로지 범행을 닦는 까닭을, 그리고 법을 보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생의 의미 다 알고 범행은 세워지고 할 일 다 마쳐서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알아서 아라한이 되어 마음을 잘 해탈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라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 제20경
부처님을 아버지로 둔 라훌라가 교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자 아무래도 그에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좀 특별한 대우가 없을 수 없었다.
기록으로 검토된 바에 따르면 부처님은 라훌라가 자신의 지체나 정진의 힘이 아닌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빗나가지 않도록 특별하게 드러나지 않게 쌓는 선업의 길, 곧 밀행密行을 부촉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십대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밀행 제일이라는 다른 이름이 그에게 붙어 있다. 이 점 또한 초기 교단에서 부처님과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는 제자들 사이의 깊은 신뢰를 이해하는 요소로 이 경전은 가치를 더해 준다.
지혜의 말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살라숲의 바라문 마을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른 아침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바라문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시는데 갑자기 구름이 끼었다. 부처님께서 생각하셨다. 나는 지금 이 마을의 바라문 장자들이 모이는 큰 회당으로 가리라 하시고 곧 그 큰 회당을 향해서 가셨다. 그때 바라문들은 큰 회당에 모여 있다가 멀리서 세존을 보고 서로 말했다.
“저 머리 깎은 사문은 과연 무슨 법을 알고 있을까.”
부처님께서 바라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도 법을 아는 이도 있을 것이고 법을 알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요. 무사 계급에도 법을 아는 이도 있고 법을 알지 못하는 이도 있듯이.”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벗은 그 벗을 이기려 하지 않고
왕은 꺾기 어려운 이 꺾지 않는다
아내는 그 남편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자식으로 어버이 공경하지 않는 이 없듯
지혜로운 이도 없고 대화도 없어
지혜 없고 법답지 않은 말 하더라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모두 끊으면
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리라.
그때 바라문 장자들이 부처님을 찬탄했다.
“착한 수행자여! 고타마 당신은 훌륭합니다. 이 회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십시오.” 부처님께서 앉으시자 그들이 말했다.
“고타마여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듣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거기 모인 바라문 장자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치셨다. 그들을 기쁘게 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이와 덜 깨인 이 함께 있어
말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를 알리리오
지극히 고요한 길 잘 설명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말 듣고 깨달으리
말하는 사람 바른 법 나타내어
큰 선지식의 깃발 일으켜 세우나니
좋은 말은 선지식의 깃발이요
법은 곧 아라한의 깃발일세.
그 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 장자들을 위해서 바른 법을 세워 보이고 기쁘게 하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셨다.
잡아함 제1180경
이 지혜의 말씀에는 설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길을 가다가 우연하게 부딪힌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배척과 감화, 그리고 나서 친절과 청법이 마치 한 폭의 회화처럼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장면의 묘사는 물론 우연이긴 하지만 부처님 생애 그 많은 날들을 이루었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자기 종교의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편협함에 젖을 대로 젖은 바라문들에게 “고타마여,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듣겠습니다.” 라고 정중한 청법을 받는다는 것은 파격적인 예우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인도 사회의 종교적인 성숙에 대해서 역사적인 인식을 새롭게 할 기회를 제공받는다. 결국 그런 정신적인 토양이 있었기에 부처님의 가르침도 그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상자 안의 독사 비유 또는 킴수카를 보았느냐 하는 경전에서 언급한 ‘얽힌 길의 편협함이란, 내적인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말한 것이다. 네 문이란, 네 가지 의식의 머무름(四識住)을 말한 것이요, 네 문지기란 네 가지 생각하는 곳(四念處)을 말한 것이다. 성의 주인은 의식을 받아 쌓인 식수음識受陰을 말한 것이요, 열린 사람은 바른 관찰을 말한 것이요, 참된 말은 네 가지 진리를 말한 것이요, 길을 다시 밟아 감이란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을 말한 것이다‘는 구체적인 법의 내용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법의 확실성은 그것을 권하는 사람의 인격적 감화에 따라서 수용하는 상대의 태도가 변화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지혜의 말씀은 전법의 사명을 지닌 수행자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경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