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 이운 육백 주년과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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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무관
1998년 02월 192호
올해는 고려 재조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온 지 육백 주년이 되는 해다.
조선조 초기 강화도에 보관되어 있던 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겨오게 된 동기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이 해인사가 삼재불입三災不入의 도량인 까닭이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이 지금까지 육백년을 고스란히 보존해 오고 있다. 대장경이 옮겨 온 뒤 임진왜란과 육이오 같은 전란에서도 아무런 손상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원형을 잃지 않은 것은 부처님의 가호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조선조 성종 19년에 학조대사가 판당을 중건하여 서기 1491년에 대적광전과 함께 일백육십여 간을 완성한지도 오백 년이 지났다. 경판의 자체 능력뿐만 아니라 보전에 적합한 건물의 환경이 함께 조화를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운 육백 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선조들의 뛰어난 예지와 과학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비단문화재로서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의 성보로서의 가치를 선양하고 또 그 안에 담긴 정보를 온 인류에게 두루 알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문화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본다. 해인사에서는 장경 이운 육백 주년을 계기로 1995년 이지관 주지 스님때부터 추진해 오던 성보박물관의 건립이 지금 한창 진행중이다. 당초의 계획은 이운 육백 주년이 되는 1998년 하반기에 박물관을 완공하여 현대인의 삶과 신앙의 한 부분에 기여할 수 있게 하고자했다. 그런데 각계 각층의 조언과 협조를 얻어 여러모로 더 바람직하고 내용적으로도 완벽한 박물관을 세우고자 하여 1999년 하반기로 완공시기를 늦추게 되었다. 지금의 박물관 건립 부지는 구해인초동학교 자리였다. 영암, 자운, 성철,이 세 분 큰스님들은 생전에 이곳에 대불이나 만불전을 모셔서 포교 공간으로 활용하고 일천이백년의 역사를 가진 지금의 해인사는 오로지 수행도량으로 쓰기를 염원하였다. 정화한 뒤 해인사를 일으켜 세운 세분 큰스님들이 열반에 드시고 지금 방장 법전스님이 1988년 주지로 계실때 초등학교를 다른곳으로 옮기고 육천여평의 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1995년 지관스님이 성보박물관 건립에 뜻을 두고 마련한 이십오억원의 예산에 오백여 평에 이르는 건축 계획을 세웠고, 1996년 법전스님이 방장에 추대되고 현 보광스님이 임명을 받아 다시 박물관과 불교문화단지의 조성을 위한 대작불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는 선대 스님들의 염원과 전대중의 의욕이 함께 결합된 대작불사라 하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각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팔십억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성보박물관을 확장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전임 주지의 계획을 변경한 이면에는 해인총림 대중의 뜻을 모아 해인사의 역사와 지금 사세에 부합하는 성보박물관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임회에서는 부지와 규모를 다시 재조정하였다. 지하 일층 오백이평, 지상 일층 사백이십오평, 지상 이층 백사십평, 총면적 천육심칠평이다. 철골, 철근 콘크리트로 지하 수장 공간 및 지상 일층 전시 공간, 지상 이충도 전시 공간이다. 서울에 호암미술관이 연면적 일천이백사십삼평에 전시 면적이 사백오십일평인데 해인사 박물관은 연면적 천칠 평에 전시 면적이 오백육평으로 설계가되었다. 앞으로 이 불교문화단지 안에는 또 연차적으로 장경연구소가 지하 일층과 지상 삼층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지하층 사백이십평에 기계실과 식당, 지상 일층은 전산질과 도서실, 지상 이층삼백사십평에 강의실과 회의실, 삼층 백이십평 객실과 사무실 등이 자리잡을 것이며, 연면적은 일천삼백칠십평의 규모가 될 것이다. 이 가운데 회의실은 스무명 수용 규모의 방이 네개, 식당은 이백명 수용 규모로 꾸밀 예정이다. 아울러 국제회의장(만불전)이 또한 지하 일층 지상 이충 연면적 구백 평의 집회시설 공간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지하 백이십평은 기계실, 지상 일층 오백구섭평은 만불전, 이충 백구십평은 갤러리로 사용하게될 것이다. 이 법당은 구룡사가 이백오십평으로 백오십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직지사 삼백육십평에 이천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것에 견주어 생각해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야외에 대불을 모실 예정인데, 높이는 15미터로 면적의 크기는 가로56미터 세로72미터로 연면적 일천육백평에 오천 명을 수용할 공간이 된다. 만불전 앞의 마당 천오백평을 더 보태면 이는 삼천평에 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화사보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해인 불교단지의 전체 규모는 지금의 불국사 삼천평보다 크고 지금 해인사 오천오백평보다 작은 사천육백평의 규모가 될 것이다. 장경 이운 육백 주년을 맞이하여 해인사는 지금, 고려때 대장경 재조로써 몽고군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쳤듯이, 아이엠에프시대의 위난을 온국민과 함께 극복하자는 뜻에서, 조선초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부터 이곳 해인사까지 옮겨 온 그길을 따라서 국민의 의지를 하나로 모을 기행을 계획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두 번이나 주조함으로써 국난을 타개했던 칠백오십년 전의 그때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정성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