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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도안사 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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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김영옥 1998년 02월 192호
여러 겁을 내려오며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날이 가고 달이 져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접어드니
육정이 열렸어라
한 몸이 무겁기는
산악과 한가지요
가나 오나 서고 안고
풍재가 겁이 나며
아름다운 비단옷도
도무지 뜻없으니
단정하던 경대에는
먼지만 쌓였더라

열네살 먹은 아이 하나, 출가하기 전날에 어머니와 머쓱한 대면을 하고, 속세의 마지막날을 함께 보냈다. 아이는 부르면 대답은 해도 끝내 어미라 불러 보지 못했다. 절에 가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지. 아이는 일찍 잠들어 어미가 그 밤을 울음으로 꼬박 지샌 것을 알지 못했다.
삼각산 도선사에서 청담스님을 은사로 수계했다.

죽어서 헤어짐도
참아가기 어렵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아프고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가
먼길을 떠나가니
어머니의 모든 마음
타향 밖에 나가 있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아들 일을 따라가고
흐르는 눈물 줄기
천 줄긴가 만 줄긴가

산문 들어 부모은중경을 외고 사경하던 혜자스님은 비로소 출가 전 마지막 밤을 떠올렸고,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함께 살다 헤어진 뒤로 한번도. 어머니라 부르지 못했던 일이 가슴에 맺혔다. 천주교 신자이던 어머니가 아주 떠나시던 날, 혜자스님은 천주교 성당에서 올려지는 장례 미사에 참여했다. 이즈박에는 천주교 공원 묘지에 묻힌 어머니를 가끔 찾아뵌다. 그러나 관리소에서 스님 오셨네 , 알은 체를 하면 그는 눈길을 피한다.
그 소리가 아들아 왔니 , 하는 어머니 목소리로 들려서이다. 야채는 영영 들을 수 없게 된 어머니 목소리가 그의 몸 가장 깊고 낮은 데서 강 한줄기로 흐른다. 산이 가로막으면 막는 대로, 석벽이 그 흐름을 바꾸면 바꾸는 대로, 그저 고였다 넘치면 더 낮은 대로 흐르는 물, 여 산 저 산 풀뿌리같이 미약하고 보잘것없던 그것이 종내에 하늘 아래 감출 수 없이 흰 배 드러내며 흐르게 되더라도 가장 낮은 데 있기는 여전한 물, 그러나 그래서 저를 온전히 지키는 강물. 태어나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도 강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도 제 소리 드높은 계곡물과는 다른, 유장한 흐름뿐인 강 같다.
표나게 쓰는 사투리는 없어도 그의 속향을 숨길 수 없는 느릿한 말투며, 만 갈래 지천을 다 품을 듯 유한 성품이며 , 인법당의 규모에 지나지않던 이 곳을 이만한 도량으로 가꾼 것이 어찌 제 공이겠냐고, 수없이 되풀이할지언정 꾸미거나 빈 말 아님을 알겠는 그의 얼굴은 물결 없는 강 같다.

수행이 가혹하고도 엄하여 인욕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청담스님의 마지막 나날을 지켜 드리다가 은사스님 열반하시자 사십구일 동안 꼬박 정근 기도를 올렸다. 늘 기도에 앞서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지은 죄부터 참회해야 한다 이르셨었다. 청담스님이 오늘의 규모로 중창한 도선사에도 참회도량인 석불전을 따로 두게 했거니와, 총무원장 재임 시절, 조계사 대중들의 예불이 끝나고 나면 법당에 뒤쳐져 남아 백팔배 참회 시간을 갖던 은사스님, 그러던 당신을 아미타경으로 극락왕생 염해 올리는 한편으로, 혜자스님 간절히 발원하였다. 원망이 가득하고, 무심 중에 지은죄 가득한 이 몸 또한 참회하나니, 그 마음으로 기도하나니 저의 성심을 흠향하소서,
일배 부 일배.
지금은 명부전이 된 백운정사가 은사 스님의 처소였다. 잔시중 들며 곁방에 살 때, 잠으로 클 나이, 떡보다 잠이 달 나이였으나, 일쑤 아침 예불 잊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의 머리를 톡톡치며 이르곤 했다. 중이면 조석으로 아침 예불은 해야 한다. 사주 밥 얻어먹으며 예불도 안하면 쓰겠니. 그분의 깊고 높은 뜻은 잘 알 수 없으되, 중 노릇 여법히 해나갈 마음 밭 하나는 확실히 일궈 주셨던 분.
일배 부 일배.
여남은 행자들과 함께라지만 나무 때서 밥지어 수십 명에서 수천 명까지 되던 손 치송을 했거니와, 채공과 갱두 소임 등 해볼 노릇은 다 해보았다. 그 때 행자노릇 함께 하던 이들, 죄다 속퇴를 하고 말았는지 지금은 거의 모두소식이 돈절해 있다.
가장 나이 어리던 두엿 도반만 소식 알 따름이다. 종내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것이 굽고 옹이 박히어 남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몹쓸 나무들이라 쉽게 말하고 치울 일 아니다.
통도사 강원 시절, 예순 명 대중의 공양을 감당하는 공양주 노릇을 한 끝에, 깐깐하기로 이름 높던 강원의 벽암스님으로부터 런닝 한 벌 선사 받았다. 질지도 되지도 않게 고르던 그의 밥짓는 솜씨 , 아니 그의 한결같은 심성이 기특하여 내린 것이니, 아무나 받는 속옷이 아니었다.

스무 해 전쯤에 인연이 닿아 이 곳 수락산자락에 암자하나 마련하니, 노할머니 몇 사람 드나드는 쓸쓸한 데였으나 대뜸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인가는 그리 멀지 않으나, 도량이 낮은 기슭 뒤로 슬며시 들어앉은 곳에 처해 있으니 눈앞에 펼쳐져 보이지 않고, 좌우로 굵은 붓질 같은 산허리가 제법 장한 가운데, 유독 해 뜨는 동쪽이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곳이었다.
상계동은 육십년대부터 시작된 도시 재개발사업에 밀려 난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와 동네를 이룬 곳인데, 팔십년대 들어 전철 사호선이 놓이면서 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한 곳이다. 그제나 이제나 여전히 절 주위는 개발제한지역이라 맘놓고 불사를 도모할 여건도 아닌데다가, 그가 이곳에 온 이듬해부터 강력한 자연 보호정책까지 곁들어져 인근의 일여덟 군데 절이 강제 철거되어 깨어진 불상이 바위 밑에 나뒹구는 참혹한 꼴을 지켜 보아야 했다.
그런 형편임에도 그의 눈에 든 것이 계곡에서 한낮을 꼬박이 일 없이 소일하던 노인들이었다. 자식 노릇 옳게 못해 본 채 떠나보낸 어머니가 눈에 밟히어 그들올 절로 모셔다 공양대접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지금껏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열일곱 해를 헤아리게 된 지난해는 천 명이 넘는 노인들이 입구의 동막골 유원지에 모여 그가 낸 갖가지 공양물과 공연물이 베풀어지는 가운데 하루를 보냈다. 몇 년 전부터 어려운 가운데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효자효부를 찾아 모시어 시상하는 행사도 겸한다.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더 이상 상계4동의 일만이 아닌 노원구 전체의 일, 아니, 그 소문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숱해진 큰 경로 잔치가 된 일을 두고 그는 그리 말했다. 힐머니 몇 사람뿐이던 곳이 이제 초하루, 보름. 그리고 지장재일 날 이곳을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이 몇 백은 되었다 하나 절 살림은 여전히 빠듯한 데도 비용이 수월찮은 그 일을 성심으로 해낸다.
자신은 한해가 어찌 가는 줄 모르게 지내는 데 비해,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날을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니 이제는 멈출 수도 없는 일이라 했다. 예전에 그의 초대를 받아 이 자리에 참석했던 보광사 효림스님은 청을 받고 “한마디” 하려고 그 무리 앞에 섰다가 “목이 메여서” 말이 잘 나오지 않더라고 했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감동 때문이었다.
비구가 시施를 받으면 셋으로 갈라 그 하나를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쓰라는 경전 말씀이 없지 않으나, 그는 그 말 대신, 우리 은사 스님이 베풀고 살라 하셨거든요. 그렇다. 그 말씀 그대로 지키어, 설에는 명절이 더욱 서려울 만한 사람들한테 떡이니 고기니 김치 따위를 갖다 드리며 추위를 녹여 드린다.

산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지에도 도시에도 얼마든지 있어서, 자신을 가끔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일종의 산이라 했다. 그러나 그 산의 무게가 버거울 때 도회 사람들이 찾아드는 데가 또 산이라 이르는 데이다. 그 산의 들머리인 곳에 세워진 일여덟 입간판에는 경전의 글귀와 은사 스님의 법어 중에 뽑은 것이 적히어 있는데, 한곳에 실린 분량이 만만치 않아 저걸 누가 부러 읽겠는지 가만히 웃음지을 사람 없지 않을 듯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 온 뒤 질척거려는 길을 마른 데 골라 딛으며 걸어 올라 온 등산객 하나가 그 앞에서 한숨돌리고서서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지난해 그가 펴낸「사람 노릇하고 살기가 어디 쉬운가」라는 제목의 책에 적힌 글처럼, 삶의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높지 않은 어조로 소박하게 가만가만 일러 주는 그의 마음이 소박한 마음들에 그렇게 다가가는 것일 터였다.
어느 날에 대중을 거느리고 길을 가던 부처님이 한 무더기 뼈를 향해 오체투지로 예 올리셨다. 그것들이 어쩌면 전생에 당신의 조상이었거나, 누대에 걸친 부모일지도 모른다 여기셨기 때문이다. 공자 또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초라한 상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고 공손히 예를 올려 바쳤다. 인생의 존엄함과 거취의 한계를 모르지 않으니 생사에 대해 경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 외경심을 가져야함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 서로 화합하며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삶의 전제가 되는 일어라 그는 생각한다. 또한 충효하는 마음이 그 출발이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가 신도들한테 효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또 되풀이하는 것도 그런 그의 믿음 때문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잠을 자야 할 법당에 군불을 지피느라 콧구멍이 새까매지는 나날을 벗어나지 못할 무렵부터 그가 마음에 품은 씨앗하나 있었다. 나이 들고 병 든 오갈 데 없는 사람 거둘 수 있게 해주소서. 언제 구청에서 들이닥쳐 법당을 헐어 낼지 모르는 무허가 암자에서 꾸어 보는 어림없는 꿈과 같던 그것이 몇 년 전에 기적처럼 잎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가 나서 자란 충주호 주변에 반연의 도움으로 ‘자혜 방생원’ 터를 마련하고 올 초파일쯤 낙성식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건축비용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몇 년째 공사 중인 그곳의 낙성식을 그보다 더 간절히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할머니 한 분이 예순이 넘고 반신 불수인 딸이 자신을 수발하는 형편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다가 죽을힘으로 산을 기어 도안사 혜자스님을 찾아왔다.
부디 나를 자혜원에서 살게 해 주어요 건물의 뼈대만 세워진 곳에 임시로 가설되어 있던 농막으로 그 할머니를 모시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낙성식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그곳에 모여 살고 있는 일여넓 사람들이 더 간절했던 것이다.
호수 옆에 바투 서 있는 곳이라 경관도 좋으려니와, 월악산과 수안보온천이 가까운 거리이니 심신을 쉬게 할 여건을 두루 갖춘 곳이기도 하다.
팔십 평 심층 건물인 그곳에는 그들을 위한 전용 공간말고도, 신도들이 철야 기도도 하고, 청소년들에게 효행심을 고취시켜 주기도 하고, 비슷한 목적으로 그 곳을 이용하고자 하는 단체까지 두루 사용할 수 있게 할 생각이다. 그는 그래서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적을 두고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들으러 다닌다. 그것이 등에 붙어 있어야 든든하다는 재색 걸망 단단히 매고, 등산화 비슷한 두터운 신발 가볍게 신고서 , 제 몸 내놀 각오 단단히 하고, 자혜원 꾸려 갈 준비하느라 부지런히 공부하러 다닌다.

늘 그렇듯이 , 준비해 간 질문을 토막쳐 들이대고 짧게 답하게 하는 식의 자리는 아니라 하나, 긴요치 않게 걸어질 말씀을-어느 때 적절히 잘라 다른 긴한 얘기들을 수 있겠는지, 묻는 편은 전전긍긍하게 되기 마련인터에 , 도안사 신도들은 무람 없기도 했다. 주지 스님 방에 불쑥 들어와 회비 삼천원 내놓고 제 이름 적는 것보고 나가는 학생, 설밑이라고 곱게 싼 내복 한벌 수줍게 디밀고 가는 사람, 그리고 인사하러 들어왔다가 스님얘기 듣다말고 눌러앉아 말 거드는 사람, …“눈치”를 주는 사람도 볼 사람도 없이 한돼 어울려 사는 곳인 듯했다. 이런 규모의 절에 대중 스님이 서넛쯤이나 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그가 이룬 덕화일 터였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갈 그는 지난해 연밀에 유앤 엔지오 세계 평화 교육자 국제 협회로부터 세계 평화 교육자상 수상자로 결정되어 상을 받았다. 노원구청에서, 시청에서 , 종단에서 준 것 등 그가 받은 상은 여럿이었으나, 그걸 왜 주는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채로 주면 받았을 따름이라 했다.

도안사는 넓지 않으나 눈길이 가 닿는 곳은 까마득하니 차경하면 수십리 도량이 된다. 도량이 예서 더 넓을 일 있겠는가, 혜자스님은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옷깃을 여민다. 부처님이 이 땅에서 태어나셨더라면 이곳 도안사를 수행 제일의 도량으로 꼽았으리라. 노원구에서 햇살이 가장 먼저 비치는 곳, 겹겹의 꽃잎 같은 먼 산봉우리 위로 떠오른 해는 법당 옆의 야외 기도도량인 석불과 천불전에 번져 예 올린다. 목단, 국화, 솔, 연꽃, 대 등을 투각하여 장엄한 삼간 법당의 문창이 꽃밭처럼 환해지고, 향로가 실로 자아 올리는 연기가 단정해진다. 맑은 날 도안사 아침은 늘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