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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운동의 새로운 모색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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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선주 1992년 10월 128호
설문1. 불교운동의 사상적 진로에 대하여

현실에 철저하게 기초한 전면적인 인간 해방 사상으로
먼저 현실 불교운동의 사상적 입지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전개된 불교운동은 한국 불교 1600년의 역사 속에 이어져 온 민족 불교의 도도한 맥을 현실 사회에 복원하는 데 주력하였다. 10.27법난을 매개로 현실 사회에서 불교계의 지위를 통감하였고, 비상 종단의 경험을 통해 불교 자주와 사회의 민주화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자각하였다. 통일운동에 앞장서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조국통일의 성취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게 되었고, 고질적인 종단 분규의 와중에서 불교 혁신과 대중성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지난 과정들은 현실이 그때그때 제기한 과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어용불교, 기복불교, 산중불교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극복하는 데 몰두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해방사상으로서의 불교사상의 진면목을 현실의 실천을 통해 입증하면서, 권력자와 신적인 존재, 관념적인 자아의식으로부터 인간의 ‘불성’을 되찾은 시기였다. 제반 고통의 뿌리는 현실에 있고, 그것은 인간의 실천(불성의 발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불교사상의 유물론적 전통을 복원해 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회과학을 기계적으로 불교운동에 적용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일면적인 타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고 본다. 불교 사상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은 ‘苦의 근원이 현실에 있다’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이미 부정하셨던 신흥사문들과 같은, 인간의 실천이 배제된 기계적 결정론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또한 최근 들어 그 역사적 한계가 검토되고 있는 막스 레닌주의에서 유물론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불교운동의 사상 체계와 실천 체계 전체를 그것과 똑같이 보아서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현실 불교운동이 안고 있는 사상적 한계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사상적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로 더 높고 많은 것을 제기하는 현실 운동 발전의 사상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자각과 역사발전에서의 역할은 더욱 높아지고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다. 자연을 인식하고 개조하는 능력은 마침내 과학 기술 혁명의 시대를 열었고, 사회 제도를 개조하는 능력은 이상사회로 여겼던 사회주의 사회를 재변혁하려는 시도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사회 대중들의 정치 경제적 삶의 질도 많이 개선되었으며 앞으로도 꽤 진전될 전망이다. 대중들 스스로가 노동하고 투쟁해 온 결과물임은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이런 바탕에서 이제 대중들의 요구는 더 높은 삶의 질을 요구하는 데로 나가고 있다. 큰 틀에서의 사회구조의 변화만으로 모든 문제가 단선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근대적인 믿음은 이미 현실적인 근거를 잃고 있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인간과 자연 관계, 인간과 사회 관계, 인간과 인간 관계, 인간 자신과의 관계에서 전면적인 해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지배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모색하게 되었고, 사회제도의 작은 틀에서도 인간적인 관계가 보장될 것을 요구하며, 개인 사이의 비적대 모순에서 파생되는 고통을 극복하고, 개인의 잘못된 의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성을 최대로 실현할 것을 제기하는 것은 폭압적인 정치적 억압이나 절대적인 경제의 궁핍 상태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던 문제들이다.
방식에 있어서도 전체의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무조건적인 헌신만이 만능이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각 개인과 소집단의 자주성과 창의성이 최대로 발휘되어 전체의 발전으로 모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불교 수행은 운동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정당한 지위를 복원해야 한다. 물론 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밑도 끝도 없는 관념의 끝자리를 찾으려고 헤매는 것은 곤란하다. 시대와 공간의 울타리 안에 갇힌 의식의 왜곡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운동의 일보 전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운동가가 수행의 풍모를 갖춘다면 더욱 좋다는 식으로 수행의 지위를 보조축으로 설정한다면 이제 더 이상 현재 제기되는 과제들을 전면적으로 풀어 나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불교운동이 사상적인 근거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상구보리 하화중생’ ‘인간해방사상’ ‘정토구현’ ‘보살행’ 등 다분히 선언적으로 표현되어 왔던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상의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교운동을 이끌어 왔던 소수의 선각들이 오랜동안 실천수행을 통해 운동의 불교 사상적 근거를 체화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운동의 덩어리가 커지고 과제가 복잡해진 상황에서 체계적인 사상 전파의 문제는 매우 중요해 졌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이는 기존의 부분적인 사상적 검토들을 접합시켜야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무수한 경전들을 모두 번역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현실의 대중들이 요구하는 더 높고 더 많은 요구들에 부응할 수 있는 사상적 과제들에 대한 불교 사상적 근거를 도출한다는 문제 의식을 담아 내는 가운데 불교의 인간관, 세계관, 인생관, 실천관 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기초 위에 불교의 자연관, 사회관, 정치관, 경제관, 민족관 등으로 까지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이다.
체계는 이와 같은 것을 그대로 채택할 수도 있고 새로운 체계 속에 앞의 내용들을 담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방시과 관련해서는 불교적 용어에 너무 집착하여 근현대 진보 사상들의 성과를 수용하는 데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 부처님의 사상적 구도행을 살펴보면 이는 자명해진다. 62가지나 되는 삿된 견해들을 물리치는 과정을 보면 선험적인 원리에 따라 제반 사상 조류들을 무조건 배척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견해들 가운데서도 사상적 정수들을 추리는 방식의 변증법적 부정의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류역사의 진보를 추동해온 제반 근현대 사상의 합리적 핵심을 관통하는 것이 부처님 사상을 현실에 맞게 온전히 구현하는 데서 필수적인 것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설문2. 불교운동의 사회 참여에 대하여

양심적 불교인의 사회 참여에서 불교의 사회적 관계 해방으로
운동의 초기적 단계에서는 언제나 선각자들의 선도적 실천에 의해 운동의 지평을 전면화하는 과제가 선행된다. 이미 앞에서 약술한 바와 같이 지난 10여 년 동안의 불교운동도 이러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교 자주와 불교 혁신. 그 연장선에서 우리 사회의 자주민주 통일운동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불교대중운동의 실천 영역은 전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물론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대중들의 요구에 따라 실천 영역은 계속 넓어지게 될 것이다-이제 불자 대중들의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우리 사회 대중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기초하여 불교운동의 일보 전진을 모색하는 단계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전적으로 불교운동의 성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불자 대중들의 의식 구조와 실천 양태는 양적 질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으며, 불교운동 활동 인력의 구성만 보더라도 불교적 이해와 요구에서 출발한 주체들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더 이상 고리타분한 전근대적 신앙 실천 의례에는 만족할 수 없는 불교인들이 저변을 두텁게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 각 계급, 계층, 지역, 부문 들의 자주적 진출이 매우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몇몇 선각적인 불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제반 고통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불교운동의 초기적인 모습은 앞으로 불교의 사회적 관계 변혁에 불자 대중들이 주체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 진행되는 몇 가지 움직임들은 다소의 우려를 낳고 있다.
먼저 새로운 과제들을 찾아서 발빠르게 움직이는 부분들이다. 불자 대중들이 쉽게 가까이서 느끼는 문제의 해결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으나 자칫 중심이 없이 현상적인 문제의 나열에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출발하든지 간에 결국 한 점으로 관통될 수 있는 실천적, 조직적 체계를 갖추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특히 충분한 준비도 없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언저리만을 쫓아다니는 것은 결국 그 동안의 불교운동이 지녔던, 사회운동과의 무매개적 결합이라는 실천적 한계를 주제만 바꿔서 반복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불교운동의 실천 영역을 전문적인 수행 공간으로만 한정짓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현실운동에서 수행의 지위는 정당하게 복원되어야 하고 이 점이 불교운동이 지닌 최대의 장점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대중운동의 모든 문제가 수행의 영역으로 해소될 수는 없다. 불교를 구성하는 것은 부처님 사상만이 아니라 현실의 불교인과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회 전체와 불교계의 관계를 포함한다. 따라서 올바른 불교상의 구현은 결국 불교의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핵심적인 것으로 요구하며 이것과 매개되어서만 수행의 근본 의의는 살아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사회적 관계 변혁에서 현실적으로 불교 혁신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것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문3. 승단 개혁은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정책적 조직적 대안을 충실하게 갖추어가는 과정으로
비록 충분하게 검토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불교운동의 중심적 실천 영역으로 종단 개혁을 설정하는 것은 꽤 현실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본다. 사실상 종단 개혁의 의지가 없어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양심적 비판 세력만이 아닌 한 걸음 나아가 구체적인 대안 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은 운동의 필연적인 경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종단 개혁의 문제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점은 개혁해야 할 종단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다. 곧 종단 개혁은 종단 구조를 어떻게 뜯어고치고 종단의 일부를 누가 담당하는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종단으로 표현되는 왜곡된 불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부처님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올바른 불교상을 실현하는 것이 그 핵심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몇 가지 측면에서 총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거듭 강조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불교자주와 혁신, 우리 사회의 자주 민주 통일을 총체적으로는 담보하는 근본적인 의미의 혁신된 불교상이 구현되어야 한다. 즉 운동의 대중성 강화가 자칫 대중들의 현상적인 요구에 매몰되는 것으로 진행되어, 종교개혁운동이 왜곡된 형태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접근 경로에서는 불자대중들의 자주적 진출을 반영하여 가능한 한도에서 참여를 통한 제도 개혁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혁신된 신앙 실천 의례를 모범적으로 전파하는 사찰이나 포교당의 적극적인 개척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최근 다양한 형태로 모색되고 있는 결사운동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방식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검토 속에서 현실적인 올바른 결합 방도가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종단 개혁이라는 과제는 단기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차근차근 정책적이고 조직적인 대안을 준비해 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운동과정에 대한 집착이나 청산주의적인 경향을 탈피하고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발전’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모든 부분에서 묵묵히 실천해 나간다면 조금 더디더라도 불교 혁신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