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명無明 속의 중생은 아무리 밝음을 설명한들 자신이 빛을 본 것과 같지 못하며, 또 밝음을 보지 않은 이가 밝음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도 한가지이다.
세간의 모든 행行은 한결같지 못하며, 모든 법法(진리) 또한 ‘나’라고 이름하는 상相없으니 없으니(諸行無常, 諸法無我) 한마디로 결정된 바가 없는 것이 진리일진대 ‘그것’으로 이끄는 이는 진리를 몸소 행하는 이이다.
가전연존자迦旃延尊者는 석가모니 십대 제자 가운데 논의제일論義第一 또는 광설제일廣說第一로 손꼽힌다 어느 날, 사밋디라는 사문이 석가세존에게 현자의 게송을 여쭌 뒤에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가전연존자에게 설명을 청하니 그 뜻을 설해 주었다. 뒷날 그 내용을 전해 들은 석가세존은 내가 설하였더라도 그러하였을 것이라 하였다.
진리를 행하는 이는 미혹한 중생에게 길 없는 바다에서 길을 보이며, 중생은 그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발을 옮긴다. 보살이 비록 진리와 한가지라 하여도 중생 역시 이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보살의 설법은 시냇물을 건너는 징검다리이며, 오르는 산길에 놓인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석가세존의 설법이 그러하며 여러 불보살의 이끌음이 문답問答을 방편으로 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전에서 대하듯 석가세존이 중생을 일깨우는 방편으로 문답을 택한 것은 중생이 스스로 삼계고三界苦에서 걸어 나오도록 한 것이며, 밝음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를 논의論議라고 한다. 논의는 중생에게 바른길을 보이는 방편이고, 스스로 걷도록 용기를 주니 진리의 세계에서는 이미 묻는 이와 답하는 이의 구별이 없어지게 된다.
가전연존자는 인도 변방 아반티국에서 포교하였다. 바다를 본 일이 없는 이에게 바다를 설명함과 같았을 것이며 눈(雪)을 본 적이 없는 이에게 눈을 설명함과 같았으리라
스스로 밝음이 되어 중생에게 빛을 보이는 일이 설법이며, 논의論議다. 진리의 빛이 지신의 것이 되지 않고는 중생에게 빛을 설명할 수 없으며, 스스로 빛이 되는 길을 보일 수 없다. 가전연존자의 광설廣說과 논의가 큰 미덕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