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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운동의 새로운 모색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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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유정길 1992년 10월 128호
설문1. 불교운동의 사상적 진로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는 실로 격변하는 대전환의 시기라고 말할 만큼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동구의 붕괴에서 시작된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전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의 지위 축소, 전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적인 지역적 통합(EC, NAFATA)의 움직임, 그리고 각 국가 내 민족들이 독립하려는 거센 흐름, 과거 2차대전 이후 만들어진 세계 구도가 오늘날 커다란 지형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 등 과거의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새로운 현대 문제들이 현실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생태계의 문제와 전지구적인 환경문제 등과 같이 자본주의적 방식이나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풀어 낼 수 없는 새로운 위기가 지역이나 국가는 물론 세계적 문제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불교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보살들에게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에 대한 검토와 대안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둘러싸고 많은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80년대 중반시기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시기였던 것 같다. 몇 가지 분석 도구로 모든 사실들이 명쾌하게 설명될 수 있었고, 그에 의거해 무조건 실천해 나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한 공식에 대입하면 모든 문제가 풀리던 편리한 시대가 아니다.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가며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할 시기이다. 이제 과거의 문제를 포함하여 새롭게 제기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확대된 진보관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세계적 문제를 두고 많은 석학들은 서구문명의 사상적 위기를 운위하고 있다. 즉 서구의 3가지 논리 「甲은 甲이다」라는 동일률,「甲이 아닌 것은 非甲이다」라는 모순률,「甲도 아니고 非甲도 아닌 것은 없다」라는배중률 등인데 바로 이 배중률적 사고가 서구적 사고의 문제라는 것이다. 흑과 백만 있고 중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사물을 구분하고, 나누어 쪼개서 분석하는 것을 과학적 사고라 하여 오늘날 현대의 전 사상 체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유패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여 자연을 단순히 인간의 편이와 발전을 위해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고 파괴를 일삼아 온 문명의 기조가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 전인류 공멸의 위기를 낳게 만든 기조라고 하고 있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발전이며 행복으로 보는 가치관의 단절을 요구하는 시대이며, 이제는 양적으로 발전의 척도를 바라보던 시대를 넘어 삶의 질적인 것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물신과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생활양식의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기존 생산력중심주의로서 막시즘의 한계로 지적된 것이며, 물신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사회의 한계로 지적된 것이다. 이미 불교는 아무런 고정 관념 없이 현실을 보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과 탐진치 삼독심을 끊는 것 등이 불교사상에서 가르침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지금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동양적 사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특히 불교적 사상 체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이미 불교적 가르침을 따라 살려는 우리에게 많은 인류적 과제의 해결 임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의 진보주의가 오늘의 보수주의로 전락하는 모습을 소련 사회를 통해 보았다. 이제 단순한 틀로 바라보던 진보의 개념을 확대시켜야 할 시기인 것이다. 그간 무시되어 서랍 속에 묻어둔 것들을 다시 떠들어 보며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여야 한다. 기존의 편견이나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어떤 집착이나 이기심을 떨쳐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발전의지를 포기한 “주어진 대로의 현실”이 아니며 또한 현실과 무관한 “바라는 대로의 꿈”을 동시에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념 지향주의」가 아니라 「과제 지향주의」로,「목표 중심주의」뿐 아니라「과정을 소중히 하는」자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현실은 희망적인 것도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희망적인 관념과 절망적인 관념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실은 우리의 관념과 관계없이 저기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설문2. 불교운동의 사회참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본인은 불교운동의 세부적 각론에 책임있는 이야기를 할 준비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식을 토대로 몇 가지 대략적인 원칙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 동안 끊임없이 사회 이론과 불교적 사상의 기계적 결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어 왔다.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지만 진영내에서 사회 이론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기조가 있어왔던 것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사상에 있어 좀더 철저한 연기적 인식의 체득을 통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 이론을 창출해 내는 것, 생명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연관과 상호의존적으로 바라보려는 인식은 산업문명의 전환기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상적 핵심이 되고 있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그 자체의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그 사회를 이끌어갈 자율적이고 자각적인 인간을 창출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제 사회 개조를 위한 노력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외적 강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최선의 창의성과 노력을 철저히 해 나가는 자기 개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개조와 수행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릇된 욕망을 끊고 더 큰 대자적 욕구로의 확대이며, 역사적 당위와 자신의 욕구를 통일해 나가는 것이며, 외적 이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보살로서의 원력과 에너지를 키우는 것이다.
희망봉이 무너진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희망봉을 만들어 나가는 일과 현실의 험난한 파도와 싸우는 일이다. 현실의 고통을 야기시키는 것들에 대한 파괴와 대안 창조의 통일은 이 시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파괴는 창조의 공간을 확장시켜 주며, 창조를 위한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대안의 창조는 파괴를 더욱 힘있게 해 주며 타격을 더욱 정확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는 이념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진보로 향한 열정과 에너지로의 통일을 중심으로 현실의 과제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메타이론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현실의 과제는 사람과 집단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각기 상황에서 자신이 느끼는 고통스러운 현실적 과제를 자신의 조건과 역량을 긴밀히 조정하면서 각개약진해 나가되, 각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진보로 향한 서원을 매개로 연대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불교운동은 사회 속에서 도덕적 정당성과 윤리성을 확보하며 대안적 세력으로의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반대와 부정하는 운동은 대상에 대한 일정한 파손(파괴가 아니라)은 줄지 모르지만 파괴는 불가능하다. 결국 대중들에게 대안적 세력으로 인정받을 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 새로운 사회의 씨가 있다. 또한 강자의 풍성함과 정서를 갖고 원대한 원력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약자의 한풀이 정서만 존재할 때 대중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해국가의 정서, 약소국으로서의 정서가 아니라 강자의 정서로 세계를 바라볼 때 정확한 자신의 위치를 볼 수 있고 미래를 정확히 내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사회운동뿐 아니라 불교운동은 기동전이나 타격전, 목표획득전이 아니라 진지전적이고 장기전이다. 따라서 최종획득만을 목표로 통일을 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긴호흡과 장기적 관점으로 사회적 영향력과 도덕성, 정당성을 획득하며 전환의 분위기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설문3. 승단개혁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과거 몇몇 진보적 승려의 종단진입시도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종단 내에서 사부대중으로부터 대체세력으로서의 신뢰가 다져지지 못하고 스스로의 정당성과 도덕성만을 내세우면서 과정에서의 비도덕성을 합리화하려하다 실패했던 몇 번의 사건을 보았다.
종단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위한 해결과 동시에 진정한 승가공동체의 건설과 대체세력으로서의 모범속에 사부대중의 싱뢰를 획득하고 그 속에서 지도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조직적 모범을 찾고 실천의 전형을 발굴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단순한 모방과 복제에서 점차 새로운 창조적 모색이 확대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안적 신뢰와 모범 속에 영역을 확장하고 동시에 종단민주화의 집단적 노력을 병행해 나가면서 일정한 성과를 축적하고 이를 점차 증폭시켜 마침내 새로운 종단질서를 출현시켜 나가는 것이 느린 것 같지만 오히려 빠를 수 있으며, 불확실 한 것 같지만 오히려 확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