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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운동의 새로운 모색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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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현기 1992년 10월 128호
설문1. 불교운동의 사상적 진로에 대하여

불교 운동의 사상적 진로를 모색하는 일은, 불교사상이 오늘의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 곧, 이념, 환경, 정치, 경제 등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 답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물음은 단순히 불교운동 단체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불교권 전체가 짊어지고 있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한 민족이 다른 이념 체계 속에서 수십 년을 분단된 상태로 살아 온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 불교의 역할과 임무는 실로 지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자본주의가 오늘의 세계 문제에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아직 우리 현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체제 속에 놓여 있기에, 오늘의 한국 불교는 이 두 체제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대안을 민족과 세계로부터 요청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요청은 민족의 통일이라는 좁은 의미를 떠나서 오늘의 문명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불교의 사상적 진로와 고뇌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과연 이런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학문적인 토대나 사상적 정립은 이런 대안을 갖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것도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불교의 수행관이나 실천관을 정립하지 못해서, 오늘의 대중들에게 수행이나 깨달음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조차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세계사적인 문제에 대안을 갖는 사상의 토대를 세우려면, 우선 다양한 논의와 학문적 성과들이 축적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과학과 철학과 역사학 등 제반 학문 전반에서 불교에 던져오는 질문들에 대하여 불교적 논리로 응답할 수 있을 때만이 불교적인 대안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분야까지 불교운동 단체가 담당하기에는 벅찬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 불교운동 세력이 담당할 수 있는 사상적 진로는 불교적인 수행관과 실천관을 정립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오늘의 불교운동가들에게 수행과 실천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며 어떻게 하면 자기 개조(깨달음)와 사회 개조(정토)를 함께 이룰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일에서 비롯하며, 이로써 불교대중에 바람직한 인간상 바람직한 사회상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상의 정립 없이는 불교운동이 역사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나 깨달음을 성취하는 일도 불교적인 태도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운동의 사상적인 진로는 우선 불교적인 인간상은 어떤 것이며 불교적인 사회상은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인가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불교운동의 당면한 목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설문2. 불교운동의 사회 참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불교의 사회 참여, 이 말은 얼핏 듣기에 불교와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불교는 이미 사회의 구성 요소이며 사회는 불교 현실의 장이므로 어떤 모습에서든 불교는 이미 사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참여의 의미란 사회 역사의 질곡과 문제에 대해 불교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 역사관과 불교 역사관의 차이가 무엇이며 불교인의 행동 양식은 어떤 것인가를 밝히는 작업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각 나라의 민족사관이 다르고 각 민족의 행동 양식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그것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느냐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만일 불교 역사관과 일반 역사관이 다르다면 어떤 한 사건에 대해서 그 접근 방식이나 해결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 접근 방법과 해결 방법이 다르다면, 행동 양식도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하는 점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불교운동이 불교의 역사관에 기초하고 불교적 행동 양식으로 역사의 사건이나 질곡에 대응해 왔느냐 하는 점에 꽤 많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 문제 때문에 많은 진통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사회 참여의 방법이나 실천의 문제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것은 바로 불교 역사관과 불교 행동 양식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가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80년대 불교운동이 자기 대중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걸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리는 불교적인 면을 가지면서도 교리를 해석하는 방법에서는 일반 역사관을 택해 왔기 때문에 불교 용어의 개념이나 의미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또 그래서 불교운동이 불교 대중이 요구하는 행동 양식보다는 지극히 일반 역사의 행동 양식을 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중불교니 기복불교니 하는 비판에도 그런 비판이 잘못된 이유를 정확하게 지적하지 못한 채, 비판을 비난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산중 불교가 선불교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선이 역사나 역사적 사건을 대하는 태도나 해결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제기해야만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여하지 않는 것만을 비판하고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교운동이 불교 대중의 정서와 유리되었던 것은 불교 대중의 정서에 편승하지 못했기 때문이 문제가 아니라 불교적 정서나 불교적 행동양식이 무엇인가를 밝혀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불교의 사회참여, 펼쳐진 역사의 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다시 역사 안에서 병폐를 일으키지 않을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적인 방법을 역사의 땅에 선뵈는 작업이며, 이 방법의 옳고 그름은 불교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선택에 있습니다.
불교가 사회 민주화, 민족통일에 참여하기에 앞서 불교가 바라는 민주화란 어떤 것이며 통일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대안을 가질 때 불교 대중은 불교운동의 전면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설문3. 승단 개혁은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불교 개혁이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가를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불교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 개혁의 내용이나 의미가 정확하게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 개혁은 종단 제도의 개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종단의 부패에 대한 정화의 차원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 개혁의 의미가 단순히 제도 개혁이나 승단의 도덕적 혹은 윤리적 측면에서만 지적된다면 그 접근 방법은 아주 쉬운 문제일 것입니다.
만일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제도를 새롭게 편재하면 될 것이고, 윤리적 또는 도덕적 측면, 곧 승가의 부패에 문제가 있다면 이것은 계율의 강화와 이를 근간으로 하는 엄격한 질서를 확립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개혁이란 의미가 이런 단순한 의미만을 지니고있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불교 개혁이란 사상, 윤리, 제도 등 다방면에서 불교적인 것과 비불교적인 것을 가름해 내는 작업일 뿐더러, 이런 작업을 통해서 이 시대의 온갖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 바람직한 시대상과 불교상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총체적인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불교 개혁은 다방면에서 다양한 접근 방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교 대중이나 승가 대중 안에 이러한 다양한 접근과 방법을 통해 저마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그룹이나 인자가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불교적인 것과 비불교적인 것을 가름해 주고 불교 사상을 올바르게 정립해 줄 수 있는 그룹도 필요하고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그룹도 필요하며 종단의 제도 개혁을 담당할 그룹도 필요한데, 과연 이러한 역할을 누가 담당해야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지금의 종단 개혁 운동이 실패한 것은 어찌 보면 한 그룹에서 이 모든 것을 담당하려고 해서, 결과적으로 한 측면만을 강조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개혁은 제도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제도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청정한 수행풍토를 먼저 이룩해야 한다든지 하는 논쟁으로 일관되어 왔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설문에서 보듯이 불교 개혁은 양심 세력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불교가 하루 하루 어용화되고 피폐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양심 세력이란 엄밀하게 말해서 그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을 때는 지극히 추상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교 개혁 운동을 하려면 저마다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대안 세력들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불교 사상을 연구하는 그룹, 올바른 수행자상을 보여주는 그룹, 제도 개혁에 몸담을 그룹, 이런 그룹들이 서로 역할 분담과 공조를 할 때만이 불교개혁은 가능하며 올바른 종권 투쟁도 벌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불교운동 진영은 이런 그룹들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교운동 진영이 산중 수행자들에게 가졌던 편견이나 산중 수행자들이 운동 승려에게 해 왔던 비판은 이제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맡아야 할 부분과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불교 개혁은 각 부분이 서로 특화되어 저마다 역할과 임무를 담당해야만 하며 각 부분은 서로 개혁 주체 세력을 어떻게 만들어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의 불교 개혁은 종단 제도나 도덕 윤리적인 문제보다도 개혁의 방향과 방법, 사상적 토대, 그리고 승가상의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좀더 충실하게 모색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