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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산으로서의 보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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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허권 1998년 02월 192호
충격적인 대법원 결정
1995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 19차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에서 우리의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전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유적의 반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동안이었고 문화유산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가야산에 이질적인 문화공간(?)이 들어선다는 충격적인 보도에 놀랐다. 이에 많은 단체, 언론에서 이의 부당성과 법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해 역사상, 문화사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해인사의 문화유산을 손상 없이 지켜야 한다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지난 1997년 12월, 제 1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그것도 12월 30일 대법원은 문화체육부의 행정조치가 법적 하자가 있다며 고등법원에서의 원심을 재 확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세모에 내려진 충격적인 소식에 과연 법과 행정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법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법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권과 생존권 보호에 근거하여 절차상 법적인 하자가없으며 지금까지 문화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가야산 국립공원내에 골프장이 들어설 수 있으며 그것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골프장이 들어서도 그것은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법의 공정성, 법이 합의하고 있는 가치 지향성에 합당한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또한, 문화재보존과학의 전문지식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환경영향이라는 것에 대해 왈가불가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사십삼만평에 달하는 골프장의 건설과 운영은 해인사 문화유산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황폐화된 일부 지역에 육림사업을 실시함으로써 가야산생태계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농약사용도 큰 문제가 없다는 가야 개발측의 주장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이를 공박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치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원고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과거 이권과 결탁되어 수행된 여러 국책사업이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었고 그 결과는 환경의 파괴, 문화공동체의 파괴를 초래하여 그 불이익을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 안았던 쓰라린 경험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집트가 자랑하는 기자지역의 피라미드군 내에 순환도로를 개통시키려는 이집트 정부에 대해 국제사회는 이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지적하여 이집트 대통령은 이의 건설을 취소한 적이 있다. 그리고 찰스 다아윈이 종의 기원론을 주창하게 되었던 에쿠아도루의 갈라파고스 섬에 대해서도 지금 진행중인 도로건설과 위락시설의 건립이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취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갈라파고스 섬 안의 인공물 설치를 중단시키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유산을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하고 이에 대한 강도 높은 모니터링을 실시해 오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시공되는 사업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 사례는 많이있다. 문제는 지난 제29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우리 한국은 그 어려운 세계유산위원회의 이사국으로 진출하였다. 그것도 네 차례의 투표를 거치면서 세계 강국인 중국을 근소한 표 차이로 누르면서 이사국에 진출하였다. 전 세계 유산의 절대적인 보존을 위해 새로운 책임과 의무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인류의 공동유산을 잘 보존시켜 우리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숭고한 사업에 한국이라는 국가가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내 사정은 어떠한가? 누구를 위한 개발이며 누구를 위한 법적인 승소인가 후세 역사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언급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통합시킨 과학성
지난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개최된 제2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창덕궁과 수원 화성이 새로운 세계유산으로 결정되었다. 지금까지 총 오백쉰두 점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그 가운데 사백열여덟 점의 문화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해인사의 판전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독특한 건조물로 평가되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건축의 미적, 규모의 웅장성이 아닌, 과학적 건조물로 평가되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전 세계의 보고인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존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설립된 판전, 그 구조물은 자연의 변화를 최대한 활용한 예지와 창의성이 결집되어 건설된 구조물인 것이다. 곧,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소통을 전제로 만들어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유산이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 독일의 아헨 성당, 중국의 자금성, 인도네시아의 보루보도루 사원, 잉카제국의 마추피추 등 대부분의 조형물들은 그 조형성, 규모, 역사성을 근거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들이다. 곧 자연의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건축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해인사 판전은 그렇지 않다. 세계유산의 가치는 바로 우리 조상들의 예지, 곧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조화시킨 그 놀라운 과학성에 있는 것이었다.

만일 주변의 대규모 공사로 문화재보존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리고 그 영향의 가능성이 농후해질 경우 해인사 판전은 곧 바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분류될 것은 자명하고 그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국제사회의 통제와 간섭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도 세계유산위원회 이사국으로 진출한 마당에 지금 국가 경제를 잘못 운영하는 바람에 아이엠에프의 간접을 받는 치욕스런 국치에 처한 형편에 또 다시 문화분야에서도 국제사회의 간섭과 지시를 받아야 하는 문화국치를 경험하고 싶다는 것인가? 우리 아무도 이를 원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 땅 위에서 함께 살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부당한 논리를 합법화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가치에는 상하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즉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절대적이고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는 다른 가치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라는 인식의 잣대에서 흔들리고 있다.
양측의 견해는 나름대로 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영향 평가를 다시 한번 실시하고 이 결과를 가지고 다각적으로 논의하기를 바란다. 골프장대신에 지연환경의 영향을 극소화하는 다른 사업방향은 없는지도 논의하기를 바란다. 국립공원과 골프장,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이다. 차라리 청소년 야영장이나 산림박물관의 건립은 어떠한가? 장기적인 부가가치의 창출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해인사뿐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에 대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방법론의 개발을 강구해야 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을 가지고 있는 모든 국가들은 매 오년마다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꼭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실태조사를 하기보다는 우리의 유산이자 인류의 공동 자산인 세계유산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보호하자는 뜻에서 조사하여야 한다. 더 이상 개발의 논리에 우리 문화유산이 희생되는 경우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