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나 사상이라고 하면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 또는 새롭고 특별한 것처럼 여기는 선입견을 버리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갔으면 한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불교적 이상 실현, 곧 인류의 원초적인 고뇌를 해결하고 보편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법의 눈인 부처님의 자취에서 실제적인 교훈을 얻어 내려는 겸허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불교 수행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이 길이야말로 인간의 고뇌와 인류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이고도 보편적인 해결의 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한 사람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수행자로서 올바른 불교관과 실천 태도를 확립하는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불교는 일찍이 싣달타가 수행을 통하여 존재의 실상을 깨달은 다음에 그 깨달음의 안목으로 인간의 문제를 꿰뚫어 보고 해결 방향과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역사의 종교로 등장했다. 그래서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그리고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법이요, 그 실천 체계는 중도라고 한다.
불교가 연기법적인 안목과 중도적인 실천을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깨달음과 정토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불교운동이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것도 불교의 이상과 목적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찍이 부처님은 연기법적인 안목과 중도적인 실천으로 당시 인도 대중의 삶을 지배해 온 기존의 사상과 삶의 태도가 갖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서 연기적인 세계관과 중도적인 실천 체계를 제시하였다. 인간과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부처님의 접근 태도는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내는 데도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운동의 사상적 진로를 모색하는 데 그 동안의 현상들을 검토하여 반성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첫째로 불교 수행자로서의 주체적이고도 기본적인 입장이 확고하지 못했다. 둘째로 장기적인 전망과 올바른 문제 의식으로 내적 내용과 역량 축적의 과정을 소홀하게 취급했다. 셋째로 옷깃을 뜯어다가 옷소매를 기우는 격으로 지나치게 상황 논리에 휩쓸려 왔다. 넷째로 본디 부처나 부처다운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통하여 부처로서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임을 살피지 못하고,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의 오류를 범했다.
단순화시킨 논리이긴 하지만, 이런 반성을 전제로 하고 불교운동의 사상적 진로를 모색하려는 방향과 방법을 몇 가지 제안하려고 한다.
첫째로 우리가 인간과 역사의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이 불교에 있다는 확신으로 출발했다면 반드시 올바른 불교 세계관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로 불교의 연기적 관점에서 볼 때 평화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만 실현된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따라서 불교적이고도 평화적인 실천 태도인 지혜와 자비 또는 중도, 육바라밀의 실천만이 불교적인 실천 방법이며 태도임을 확신해야 한다. 셋째로 이와 겉은 불교적인 안목과 실천 태도의 토대 위에서 역사를 이끌어 온 기존의 세계관과 실천 방법과 현재의 사회 현상과 인간들의 속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냉철한 성찰을 통하여 원인을 찾아 내야 한다. 넷째로 그렇게 되면 기존의 신․인간․자아(탐․진․치) 중심의 세계관은 연기법적인 존재 가치(悉有佛性)와 연기법적인 일심동체의 관계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존 경쟁과 약육 강식 등 이기적인 욕망의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역사의 비극과 오늘의 위기를 자초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다섯째로 이렇게 가닥을 정리하고 보면 부처님께서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세계관으로서 연기적 세계관을 제시했듯이 오늘의 수행자들도 현대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불교야말로 새로운 세계관으로서 부족한 것이 없음을 만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우주적인 사고와 삶의 태도가 요구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중무진의 법계 연기적인 세계관에 의해서 동체대비 정신과 자주적이고도 창조적인 선 정신의 통일(隨處作主立處皆眞)이라는 관점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겹겹으로 얽혀 있어서 해결의 길도 단선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껏 나열해 본 방향과 방법의 과정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설문2. 승단 개혁은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불교 수행자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할 까닭이 성립되려면 원칙적으로 불교 수행자 다워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승단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깨달음과 정토 실현이라는 청정 승가의 본디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자신이 직접 몸담고 있는 승단 문제여야 함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승단 문제라고 하더라도 결코 세상 문제와 무관한 것이 아닌 만큼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수행자들이 마음써야 할 일차적인 과제는 자기 혁신과 승단 개혁을 위해서 관심과 역량을 모아 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수행자로서 성실하고도 양심적인 태도이며, 일의 순서상 합당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청정 승단으로서 자기 위상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사회 문제를 풀어내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따름이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할 때 불교운동 진영이 승가 개혁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하려면, 먼저 그 동안 갖고 있던 승단 개혁에 대한 문제 의식과 기본 태도를 돌이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첫째로 승단의 혼란과 타락을 낳게 한 심층적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지 않았다. 둘째로 거창하고도 가시적인 결과를 노리는 입장에서 일괄저긍로 일시에 해결하려고 허둥거려 왔다. 셋째로 근원적이고도 총체적인 진단에 입각하여 장단기적 계획을 갖고 승단 개혁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넷째로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작은 일들을 하나씩 풀어 가려는 점진적인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섯째로 법의 정신을 확립하고 법에 의지하여 문제를 풀어 가려는 진지한 모습을 견지하지 못하고 자기가 처한 입장과 이해에 따라 처리하려는 과오를 범해 왔다. 셋째로 급변하는 사회 흐름과 정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과 자주적인 의지로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들을 극복하고 승단 개혁을 이끌어 내려면, 첫째로 통일된 불교 세계관을 확립해야 하며, 둘째로 그를 실천하기 위한 교육 체계를 마련하여 교육시켜야 하고, 셋째로 이를 위한 합리적인 승단 제도를 확립해야 하며, 넷째로 승단이 제도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하고, 다섯째로 법대로 운영할 수 있는 인적 역량들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현실에서 실현되도록 하려면 승단 개혁의 대안을 마련하고 현실적으로 추진할 인적 역량을 형성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서, 첫째로 법에 입각하여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둘째로 작은 것이지만 실현 가능한 것을 찾아 점진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셋째로 대중적인 공신력을 형성해 가고, 넷째로 그와 아울러 대중들의 의식을 각성시켜서, 다섯째로 각성된 대중의 힘이 개혁의 힘으로 통일될 수 있도록 하고 작업을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이며 일관되게 추진할 때 승단 개혁은 구호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흐름이 형성되어 승단 개혁을 이끌어내기까지는 참으로 멀리 내다보는 인내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함을 깊이 새기지 않는 한 승단 개혁은 영원한 구호로만 남아 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설문3. 불교운동의 사회 참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불교 사상과 정신에 의한 청정 승단으로서의 위상이 확고할 때 현실 참여는 설득력을 갖게 되고 그와 더불어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런 전제를 갖고서 오늘의 사회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전도된 세계관으로 인하여 인간의 역사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위기 의식으로 인하여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전도된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관습들이 불법을 파괴하고 수행자를 괴롭히며 승단을 혼란스럽게 하고 역사 대중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 깨달음과 정토 실현이라는 불교의 이상을 장애하는 이런 현실 문제를 예방하고 타파하려는 것이 현실 참여라고 하면 수행자들이 현실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구체적인 역할을 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다만 방법론으로 볼 때 다각적인 측면에서 모색하는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수행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현실의 문제들을 살펴보면 민족 분단, 경제의 불평등, 탄압받는 정의와 양심, 망국적인 지역 감정, 민족 전통과 주체성의 마비, 환경 파괴와 오염, 자원 고갈과 핵무기의 위협, 욕망의 극대화와 인간성 타락 등 우리 삶을 파괴하며 불행하게 하는 요소들이 실로 위협적이다. 수행자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사회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깨달음과 정토 실현의 불교적 이상을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문제 해결을 이끌어 내려는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역할을 다하려면, 첫째로 불교 세계관에 입각한 승단의 위상 확립이 전제되어야 하고, 둘째로 부처님 법에 맞게 사부 대중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야 하며, 셋째로 출가와 재가가 자기의 역할을 하되 서로 돕고 보완하도록 해야 하고, 다섯째로 이처럼 사부대중의 힘이 통일 될 때 현실적인 힘을 갖고서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입장을 갖고 사회 문제에 접근할 때 비로소 수행자로서의 주체적인 위상을 지키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실 참여의 방법을 찾아보면, 첫째로 수행자와 승단은 불교적인 투철한 안목과 역사 의식을 갖고서, 둘째로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하여 불교적인 해결 방향을 제시하며, 셋째로 재가 불자를 이끌어 주고 보호해 주고, 넷째로 그럼으로써 재가 불자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대한 역할을 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을 생각해 보면, 첫째로 수행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둘째로 사회는 엄청나게 비대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셋째로 전문적이고도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고, 넷째로 수행자만이 할 수 있는 역할만 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며, 다섯째로 결국 한정된 숫자의 수행자로서는 사회적인 엄청난 요구에 직접 참여하여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같은 관점을 갖고 판단할 때 수행자의 현실 참여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서는 긴 안목을 갖고 신중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첫째로 수행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둘째로 수행자가 할 수 있는 일, 셋째로 현실적으로 바람직하고도 효과적인 방법 등 사회 문제를 풀어내는 데 수행자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원칙과 기준과 한계를 잘 세워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겠다. 왜냐면, 불법과 수행자와 승단과 역사 대중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욕심과 열정은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할 뿐더러 문제 해결의 방향을 그르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역시 “적을 알고 자기를 알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병법의 원리는 인간과 사회 문제를 풀어 내는 데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깊이 음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