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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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만우(시인)
1992년 10월 128호
지금까지 전해지는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다는 상원사 동종銅鐘에 새겨진 주악비천상을 탁본하러 간 날은 추석이었다. 절에서 명절이란 평소보다 오히려 한가한 날이다. 평상시에는 관광객들이 절 마당을 온통 차지해 버려서 마당을 잃어버리고 사는 게 요즈음 절 살림살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가운데 낮 동안은 행락객들의 장場이고 밤이 되어야 겨우 마당을 차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런 공방전 속에 절은 놓여 있고 이 마당에 스님들은 살고 있다. 오랫만에 명절을 맞아서 사람들이 고향 집에서 성묘하거나 친지를 만나 바쁜 한때를 보내고 있어서, 스님들은 낮과 밤, 하루 동안을 마당 주인으로 행세할 여유가 생겼다.
상원사는 동종과 더불어 문수동자상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성덕왕 24년에 주조된 이 종은 안동 누문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예종 1년에 국명에 따라서 지금 위치로 옮겨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널리 알려진 비천상은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두 사람이 대칭으로 양각되어 있다. 그리고 공방을 중심으로 팔변八辨연화를 조각하고 그 주변에 당초문을 조각한 동좌도 매우 아름답다.
종이란 무엇인가. 불가의 사물(법고, 운판, 목어, 범종) 가운데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법구이다.
“이 종소리를 듣고 지옥고를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여, 고통을 벗어나 정각을 이루어지이다” 하고 염하며 치는 종에 새겨진 문양들은 어쩌면 그 시대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탈각하려는 비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삼국의 끊임없는 전란 가운데 부모 형제를 잃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불전에 간절하게 기도하며 범종 소리에 발원했을 것이다. 절이 많이 세워지고 범종 소리가 끊이지 않을수록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는지 모른다. 그래서 전란이 끝이 없는 한 이 땅은 지옥을 방불케 해서 비원도 끝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민초들의 발원은 한결같이 이 고통을 벗어나 득락得樂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상원사 동종이 신라종의 보편적인 양식이라면 거기에 새겨진 땅에서 하늘로 오르려는 비천상도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삶이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을 것이다. 창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통곡소리 대신 공후나 생황 같은 악기의 선율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백지에 먹빛으로 떠오르는 비천상의 얼굴에서 알 듯 말 듯한 그 시대의 음영도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요즈음도 많은 범종들이 주조되어 아침 저녁으로 절을 장엄해 주고 있음을 본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에서 어떤 희원을 종에 새겨야 할까. 동강난 땅, 이 부실한 허리를 이어 줄 비원을 담아서 종을 만들어 이 산하 곳곳에 굽이치게 해야 할 것이다. 그 얼굴들을 조각이 아닌 거리에서, 이웃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상원사는 문수도량이다. 보현 보살의 실천행과 함께 그 실천력의 근거가 되는 지혜의 대변자가 문수보살이다. 피 묻은 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등창병으로 고생할 때 문수보살이 동자로 헌신해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전설이 자랑스런 내력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무력으로 집권한 세조가 문수에 의해 정통성(?)을 확보한 이 이야기는 불교라는 이름을 빌어서 서민 대중들에게 왕위 찬탈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한 냄새가 물씬하다. 지금도 우리는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한 정권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대중을 선무했던 갖가지 사례를 겪어 온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의 불교 또한 부정한 정권의 안전만을 위한 또 다른 신화 만들기에 분주하다. 지혜의 완성자로서 문수의 행위가 한낱 왕권을 보호하려는 파렴치행으로 전락한 곳. 세조의 원찰로서 각별하게 예우받았던 이곳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 현주소와 그다지 다를 바 없다. 권력에 굴종하면서 운영하고 있는 종단을 보면 오히려 불교를 통해서 인정받으려고 했던 세조의 행위는 인간적인 고뇌의 표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엄격함과 자비로움이 함께하는 문수행에서 엄격함을 따로 떼어서 내버리면 자비는 비겁으로만 남아서 또 다른 예속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다른 때보다 한껏 넓어 보인 추석날 절 마당에는 또 다른 티끌들이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