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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의 교육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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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금강 1992년 10월 128호
가장 광활한 교육 현장
몇 해 전 산골짜기 쓰러져 가는 고찰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사찰 보수 공사에 삼 년을 온통 보낸 적이 있다. 비좁은 도량의 담을 헐고 축대를 쌓는 일이었는데, 가장 튼실하고 안정된 돌을 지주석으로 먼저 놓는다. 그 위에 올려 쌓아도 될 만한 모나지 않고 잘 생긴 돌들을 쌓아 간다. 쌓아 놓은 돌 사이 사이에 쓸모없다고 제쳐 두었던 돌들도 빈틈에 끼워 무너지지 않도록 조화롭게 맞춰 가는 작업이다.
노동의 조직화, 이데올로기의 종식, 첨단과학과 고도 정보화 시대에 돌맹이 쌓는 일이 무슨 의미 있겠는가만 손등을 깨 가며 마당 하나를 반듯하게 만들었다.
오늘의 승가 교육을 걱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축대 쌓는 일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은 토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승가 교육은 사원도량 어디서고 할 수 있으며 그 범위는 포괄적이고 우주적이다. 반짝이는 새벽 별빛, 천둥 소리, 떡장수 노파의 물음, 경구 한 구절 같은 온갖 잡동사니 현상이 다 깨침의 대상이다. 교육이라는 말도 위로는 쉼없는 정진과 지도로 깨침을 구하고 아래로는 보살행으로 미혹한 이들을 교화하는 절 집안 전체가 평생 교육원이며 발길 닿는 곳 모두가 교육 현장인 셈이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승단 교육은 선원과 강원이 맡아왔고, 현대적으로는 중앙승가대학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이 각각 교육과 학습을 지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승단 교육 상황은 전통 교육과 현대 교육의 난맥상들이 돌출되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첫째로는 가장 귀중한 우리의 교육 공간인 도량 문제이다. 세계 최대의 부처님 조성이니 삼천불․만불 조성이니 하는 전시장으로, 역사 유물을 지키고 보수하는 관광지로, 대입 합격 기도원이나 세속인의 출세를 위한 고시원으로, 죽은 영혼을 달래는 제사나 병을 고치는 신비의 도량으로 전락되고 있다.
둘째로는 오늘을 사는 민중들의 아픔과 동떨어진 생활관으로 교육 대상 괴리 현상이다. 민족의 아픔인 분단 현실, 강대국의 경제 침탈과 정치적 불안감, 선거에 대한 불신감, 종말론의 사회적 패배감, 권리를 찾지 못하는 피폐한 노동자들과 괴리감. 이 모든 사회 현상들을 외면하고 편안하게 개인이 안주할 곳만 찾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손 붙잡아 주는 차별적 보살행만이 있는 편협한 교단 분위기도 문제이다.
셋째로는 승단의 교육 현실 상황이다. 일 년에 삼백 명 이상의 입문자가 있는데도 교육 체계가 산만하고 의무화되어 있지 않아서 병폐가 사회에 까지 미친다는 점이다. 기초 교육 기관과 전문 교육 기관의 혼동으로 일관된 공통분모가 없어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아서 표류하는 초심자가 많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혼란한 위기 상황을 맞고있는 불교 교육 현실에서는, 지주석처럼 결코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듬직하고 모범적인 새시대의 수행자상을 찾고 또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역사성 인식을 위해
종단은 줄곧 포교와 역경과 교육 사업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사업이 교육 사업인데도, 종단은 이 사업을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하고 있다. 교육법도 있고 교육위원회 시행령도 제정․공포된지 삼십 년이 지났지만, 그 실적을 보면 불교 교육사업이 제대로 되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지금 시대는 첨단 과학화되고 다원화된 사회다. 국내 굴지의 대재벌 회사들은 전문 분야의 박사들을 백여 명씩 확보하고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자녀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해 가며 최고 학부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교육은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의 교육 사업은 하루하루 확장되어서 기독교와 카톨릭 계통의 인가된 각종 학교와 정규 대학을 합하면 교육 도량이 백여 군데에 이른다. 물론 한국 불교의 무려 일천 육백 년이란 긴 역사 속에는, 삼국 시대나 통일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처럼 불교가 찬란하게 꽃피었던 불교 전성 시대가 있었고, 조선 시대처럼 정치와 제도의 억압에도 출가 승려로서 사회에 대한 역할을 끈기 있게 수행해서 불교적 전통 수행을 이어 갔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찬란한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팔만대장경을 보자. 조사스님들이 판에 한 자 한 자 조각하던 피나는 노력들이 한낱 세인의 구경거리로 전락되고 있지 않은가. 대장경이 어디 오랑캐의 침범을 물리치려는 도구로만 조성되었던가. 요즈음 학인들은 전란과 혼란 속에서도 민족을 구할 부처님 말씀을 피멍울로 새겨 놓은 그 말씀이 어떤 구성력과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간행하고 영인한 대정신수대장경을 의지해서 공부한다. 이는 불교 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적으로 틀린 글자가 가장 적고 훌륭하다는 우리의 고려팔만대장경이 학인들에겐 이제 한낱 나무판대기에 불과한 역사의 유물로만 존재한다. 고려팔만대장경을 지금의 언어로 역경하여서 부처님 말씀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일구어 갈 원력을 가진 이들의 자리가 없다. 그 자리를 펴 줄 원로스님들과 중진스님들이, 이기주의와 패권주의에 물들어 방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부처님의 원음이 살아있는 초기불교, 존재의 논리를 파헤친 중관불교, 마음의 예지를 천여 년 이상 줄기차게 탐구한 유식불교, 대승의 웅대한 설계도인 화엄사상이 오직 참선 위주의 편협한 불교 교육에 매몰되어 깡그리 역사의 유물로만 남았고 기껏해야 훈고학적 강원 교재나 선을 위한 과정으로 전락되었다.
새로운 교육 체계의 모색
‘현대화된 승가상’의 모습은 은둔적인 수행자상일 수 없고, 도와 진리가 사유화될 수 없다. 또한 불교 교육은 도인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삼보를 중심으로 세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래서 불타의 가르침과 불교 사상의 근본 종지를 올바로 전승하고 변화된 시대 상황에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역할을 함께 충족시켜야 한다. 이는 곧 총체적인 불교관을 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기초 교육 과정과 전문 교육 과정을 분리하여서 시대에 맞는 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인류를 구할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요즘 들어서 교육 제도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이 다양하게 발표되었다. 여기서는 문제점과 공통된 지향점을 밝혀 볼까 한다.
기존의 기초 교육 과정의 대표적인 교육원은 전통 강원이다. 여기서는 교재가 문제점인데, 조선 시대부터 줄곧 변함없이 선불교 위주로 교육하는 문제점을 들고 있다. 현대 사회에 비추어 훈고학적이며 서당식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또한 그나마 사찰 행사와 소임에 묻혀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게다가 다른 종교처럼 사회에서 인정하는 대학으로 인가된 곳이 전혀 없다.
또 전문 교육 기관으로 설립된 중앙승가대학의 교육 편재는 기초 과정으로 방향성이 잡히고 있으며, 학인들은 종단 차원에서 재정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해서 방학 때는 공부보다는 학비 충당에 노력해야 하는 모순이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수행자들의 교육 기관이 시중에 인접해 있는 점과 비구와 비구니의 계율상 학습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어느것 하나 문서화되어 있지 않아서 사미계만 받은 토굴승이나 유랑객승이 생기기도 하며 기초 과정도 거치지 않고 선원에 입실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풀어 가는 청사진 가운데 대표적이고 공통된 내용을 말하면 중앙승가대학을 기초 교육 과정으로 의무교육화하고 지금의 지방승가학원(강원)은 그 사찰의 특성을 살려서 수의과(대학원) 과정으로 하여 선원이나 기타 수행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수의 과정은 보기를 들어 해인사는 법보종찰로서 화엄경을 강설하고 범어사는 선수행 도량으로 선문염송을 익혀 선원으로 연계하는 방법이다.
아무튼 종단은 개혁안 수렴과 재정 지원, 의무교육화하는 방법들을 모색해서 백년 대계의 계획으로 지혜와 덕을 겸비한 승단의 지주석을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칠팔십 년 전에 만해 스님이 교육에 대해 역설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교육을 방해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교육을 부흥시키는 자는 마땅히 불도를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