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방의 말로 나의 가르침율 전하라
투철한 신심으로 무장된 그 비구가 워낙 비장한 어투로 건의를 히는 바람에 부처님은 그저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비구의 말이 끝난 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렇잖아도 이 부분에 대하여 뭔가 기준을 만들어야겠다고 당신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중 또 한숨을 죽이고 부처님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들쭉날쭉한 사투리 아닌 사투리들 때문에 교단의 자기동일성 유지에 문제가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는 터라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부처님께서 입을 여셨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지방의 말로 나의 가르침을 전하라.”
부처님 역시 단호한 어투로 당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이를 뒷날 학자들은 ‘속어주의俗語主義’ 라고 이름을 붙였다. 불교의 경전 언어에 대한 부처님의 지침인 셈이다. 이는 교단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이러한 속어주의의 원칙이 있었기에 경전의 번역도 실제로 가능한 것이었다. 경전 번역 자체가 부처님의 뜻에 부합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부처님의 이 말씀이 없었다면 우려는 지금 어떤 언어로 된 경전을 보면서 신행활동을 하고 있을까?
최초 교단언어는 마갈타어였다.
부처님의 교화 무대는 주로 마갈타 지방이 그 중심이었다. 그 곳은 당신이 성도成道한 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지방의 언어인 마갈타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따라서 최초의 교단은 마갈타어를 교단언어로 삼았다. 그 뒤 당신과 제자들의 헌신적인 교화 활동에 힘입어 교단이 지역적으로 광대해지고 각 지역마다 지역 승가가 생기면서 교단의 언어 역시 속어주의에 입각하여 더욱 다양화되어 갔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그 가르침을 길이 후세에 전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결집된 경전도 속어주의에 입각하여 그 무렵 그 지방의 언어로 기록하였다. 4세기 무렵에 활약하던 구마리집鳩摩羅什(343413) 법사가 법화경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사용했던 원본은 그의 고향 언어인 쿠차(Kucha 龜鉉) 지방의 말로 기록된 것이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경전을 범어화하다
이렇게 각 지역어를 사용하여 속어주의를 지켜 오던 교단 언어는 4세기 초 굽타(Gupta 崛多) 왕조에 들어오면서 양상이 다소 달라진다. 곧 경전을 범어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 때 불교 교단의 문제는 바라문교와의 경쟁적 대결이었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이론가 마명馬鳴 대사와 용수龍樹보살의 모든 저작 역시 범어로 이루어졌다. 이는 굽타 왕조가 범어를 표준어로 선택한 것에 대하여 불교 교단이 동조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범어를 구 무렵의 속어로 간주한 또 다른 속어주의의 연장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지만 내용적으로 속어주의를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결국 이는 교단이 대중과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빚으면서 바로 교세의 약화로 연결되었다. 그리하여 12세기 말에 이르면 교단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불교는 전문가들만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이슬람교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교단 자체가 티벳, 네팔 등지로 옮겨가면서 인도 땅에서는 뿌리마저 완전히 내어주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장서각의 경전들을 함께 모셔간 공덕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티벳 대장경의 근간이 되어 법등法燈을 이어갈 수 있었다.
속어주의는 불교의 미래까지 염두에 둔 결단이었다.
결국 부처님이 경전의 속어주의를 주장하신 것은 지혜의 눈으로 불교의 미래까지 염두에 둔 시려 깊은 결정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종교란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고 실천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그래서 부처님 때부터 불교 교단은 각지방의 교단이 처한 특수성을 인정하고 더불어 그 교단이 속한 지역 언어를 사용하여 포교를 하게 한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처음의 교단 언어였던 마갈타어로 되어 있는 경전을 보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바라문 출신의 그 비구의 건의가 받아들여졌다면 범어로된 경전을 보고 있을 게다. 하지만 그 보다도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마 이 땅에서는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어떤 진리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장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지방의 말로 나의 가르침을 설하라”는 경전의 속어주의 지침이 있었기에 수많은 역경가들이 원력을 세워 가지가지 언어로 번역하고 또 번역했다. 그러기에 우리도 한글로 된 경전을 독송하면서 이천오백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인도에서도 수천만리 떨어진 이 땅에서도 부처님을 만나뵐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혜안慧眼과 함께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역경가 스님들께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