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것과 작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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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종문
1998년 02월 192호
어느 소설가와 또 어느 시인이 작은 것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왜 크고 위대한 것만을 추구하는지 모르겠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있지 않으냐, 오히려 작은 것들 속에 아름답고 미묘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더 많지 않으냐, 설령 기존의 기준으로는 무가치하다고 내버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가치가 그 속에 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던 듯하다. 조금 통속적인 표현으로는 ‘작은 것의 미학’ 이라 일컬음직도 한 그런 뜻이었으리라.
작은 것도 소중하다는 반성적 지적은 딱히 작은 것을 강조하려는 것보다는 일이나 생각이나 사물의 크기로 가치를 결정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에 그 참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문제는 가치이지 일이나 사물의 크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을 한 걸음 더 진척시켜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인류는 가치를 추구해왔다. 가치없는 삶이란 도무지 상상도할 수 없었다. 육신을 가지고 뜻한 바 의지의 내용을 집행하고 추구해 가는 인간의 삶 자체가 가치 관념 없이는 도무지 무의미하고 허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자라도 더 배우고 한푼이라도 더 벌고 한사람이라도 좋은 친구를 더 가지고 좀더 나아지고 좀더 훌륭해지고 좀더 예뻐지려는 사림들의 애틋한 노력은 그 모두가 가치를 전제하고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에서도 늘 반상최대盤上最大를 지향한다. 크게 길게 볼 때 한 집이라도 더 큰 쪽을 먼저 취해야지 눈 앞에 아른거리는 작은 이익에 연연하면 큰 것을 놓쳐 버린다. 결국 그런 어리석음이 쌓이면 바둑에서 질 수밖에 없다. 바둑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좀더 큰 가치를 추구해서 더욱 높은 존재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그것이 훌륭하고 보람 있는 것이 되지 사소하고 무가치한 것에 매달려서 큰 것을 잃으면 그 인생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까지가 지금의 인류가 거의 무비판적으로 채택해 온 가치관념의 토대라면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것은 과연 인생이란 바둑처럼 이겨야만 하고 사람은 반드시 훌륭해져야만 하는가 하는 막연한 의문이다.
설령 지더라도 순전히 재미로만 바둑을 둘 수는 없는가? 세상에서 널리 존경과 숭앙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기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오손도손 그저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은 과연 무가치한 삶인가? 이런 물음을 던져보고 싶다.
어쩌면 너무 힘들지 않게 그렁저렁 조금은 재미나게 놀아가면서 시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생일는지도 모른다. 위대하다는 것, 크다는 것, 고상하고 훌륭하다는 것은 얼마나 힘겹고 가파른 일인가? 성자가 되고, 대예술가, 문호文豪, 대정치가, 석학, 거부巨富, 영웅, 천재가 되어 역사에서 위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얼마나 막막하고 숨가쁜 일인가? 남자 같으면 그저 평범무비한 소시민 가장이 되어 처자식 사랑하고 몇몇 가지 일에 재미 붙여 몰두해 보기도 하고 어쩌다 바람 한번나서 가슴앓이 불륜의 사랑도 해 보고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은 과연 무가치한 삶인가?
작은 것이 소중하다는 그들의 얘기는 혹여 이런 생각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실패하고 가난에 찌들고 과욕에 시달리고 무의미하고 잡초 같은 인생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있고 살아야 할 필요와 가치가 있었기에 지금껏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천민도 왕자도 현자도 바보도 모두 우리가 자의적으로 구별했을 뿐이지 정말 현자는 바보보다, 왕자는 천민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또 정말 현자와 왕자는 바보와 천민보다 더 훌륭하다 하더라도 바보와 천민은 엄연히 그들 나름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태양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존재할 까닭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게다. 즐거움도 고통도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한강의 기적도 아이엠에프 한파도 모두 까닭이 있어서 있지 까닭 없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날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너무 긴장하고 애태울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런데도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자동차에 올라타고 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긴장과 애태움을 새롭게 시작하고 되풀이한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 시작되었다. 이런 때일수록 불충분하고 불완전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머무를 줄 아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기름 값이 올랐으면 조금 덜 때고 덜 다니면 된다. 쌀값과 반찬값이 올랐으면 조금 덜 먹으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무한하게 크고 넓고 깊어서 모든 어려움에 다 적응하고 모든 재난을 다 감수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러나 어떤 어려움도 재난도 끝없이 계속되는 법은 없다. 한 고개를 넘어가면 평지가 반드시 나타난다. 한번의 힘든 고비를 넘기면 만족과 기쁨이 조금이라도 꼭 주어진다. 그러니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여유로운 심정으로 그저 그러려니 하자. 내가 힘드는 것은 참겠는데 이웃과 가족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바로 고통 분담이다. 고통은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이럴 때 참 이웃 사랑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가진 사람일수록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잘 살다가 살림 규모를 줄이는 것은 참 힘들다고 한다. 외제 승용차에서 국산 차로 바꾸는 것도 꽤 어려울는지 모른다. 털가죽 옷 입다가 헝겊 옷으로 바꿔 입으려면 처량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절약과 검소를 실천해 보자. 그리하여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뿌듯함을 느껴 보자. 작은 것에 마음 쓰는 일은 이런 모습들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분투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크고 위대한 것이 왜 좋지 않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위대한 것에의 추구와 성취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만 위대한 것올 얻으려는 데에는 많은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지나친 긴장에는 완화가 필요하다. 작은 것에 관심을 돌리면 긴장 완화의 기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