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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이 새가 바라보는 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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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철수 1992년 10월 128호
호도나무인 줄 알고 심었던 가래나무 덕을 여름내 보았습니다. 이 그늘이나마 창문 앞에 있어 주지 않았으면 여름은 무덥고 마음은 더 적적하였으리라 싶습니다. 이제 그 잎이 누런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여 거기서 가을 발자국 소리 듣습니다.
생각하면, 가래나무 잘못 심기듯이 제 삶도 그런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호도나무 아니어도 창밖에서 그 나름으로 구실하듯, 모자라고 덜된 나름으로 제 나머지를 스스로 가꾸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대략 아구를 맞추어 두었습니다. 가래나무도 다행이라 하지 싶습니다.
부지런만 하면 어쨌거나 한세상 살아지려니 하던 것이 이제 지난 생각이 되었습니다. 고작인 능력이나마 놓인 자리에서 세상에 쓸모가 생기면 다행이지요.
산골짝에서 초록만 바라보며 지내느라 기운 없어진 것인가? 하늘 땅 크고, 사람 작은 줄 알게 된 셈인가? 매사에 기운 없고 게을러지는 것이, 눈에 뜨이는 초록에 탓을 떠넘길 일은 아니겠으나, 사실 한적한 창밖 풍경에 마음 보내고 앉아 있는 일이 제게는 큰일입니다. 해 보면 아시겠지만 풍경이 풍경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 그 일의 재미인 셈입니다.
창밖을 지나는 전선 위에 참새로 시작해서 따오기까지 하고 많은 새들이 앉았다 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제게나 저들에게나 다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들 덕분에 전깃줄이 의젓해 보입니다.
비를 가리자고 덮은 지붕이지만 용마루에 날렵한 새 한 마리 내려와 앉으면 나름으로 격格이 생기는 것처럼, 다니러 오는 생명이 있는 것마다 아름다워집니다. 나뭇잎새 우거진 숲이야 더 말할나위 없습니다. 사람 사는 것도 그렇게 서로 빛내는 일이지 싶습니다.
백운白雲․천등天登․지등地登․인등人登의 산들로 싸여 옴팍한 뱃바닥 같은 터에서, 사람이 뚫어낸 창으로 내다보이는 것으로는 그만해도 괜찮습니다.
게으른 사람이라, 농삿일이야 천지인天地人 동업으로 하는 것이지 하는 투로 건성 일하여도 여기서는 그리 큰 흉이 아닙니다. 뿌려둔 벼 포기가 게으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고 잘도 자라줍니다. 며칠씩 집을 비웠다 돌아와 보면 푸성귀 심긴 텃밭이 부푼 듯이 자라 있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동업하는 천지天地에게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어느 순간 부끄럽고 민망스럽습니다.
그 부끄러움 놓을 자리를 찾다 보면 하늘과 땅이 보이고 그 기운이 보입니다. 마음으로 고마운 인사하게 되는 것 염치 모르는 사람에게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다시 게으름으로 돌아가 앉습니다. 천지간에 사람의 자리는 게으른 집구석이거니 하는 셈입니다. 때로 눈 앞에 솔숲이 청청한 무덤터와 건너다 보이는 산기슭의 잣나무 푸르름 보면서, 그 칠칠한 낙락장송 아래서도 잔나무 잡풀들 서로 기대고 싸우는 일로 치열할 것을 생각합니다. 세상과 같습니다. 뜰앞에 잣나무! 그 뜻인가? 아, 아닙니다. 그러나, 잣나무는 조주趙州의 뜰에서만 힘쓰는 법.
내 일하는 창밖에는 가래나무 한 그루뿐입니다.
내뜰에 가래나무!
하고 보니 좋습니다. 조주가 따로 없습니다. 다만, 뜰에서 같이 고행하며 크는 벌레 먹은 박넝쿨과 머루나무들이 서운해 할까 마음 쓰입니다.
내 뜰에 박넝쿨!
내친 김에, 내 뜰에 쑥갓!
내 뜰에 배추!
내 뜰에 열무!
에라, 모르겠다.
내 뜰에 총각무!
터무니 없는 이런 짓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는 제 뜰에 하루 한 번 우체부가 다녀갑니다.
잠자리와 달라서, 매미 소리나 까치 울음과도 달라서, 그의 오고 감은 제가 다 압니다. 그가 전해 주는 소식은 사람 냄새, 세상 냄새로 가득합니다.
저 동구밖 시외버스와 시멘트 실은 트럭들 따라가면 닿을 도회지에서 온 소식들입니다.
흙을 떠나 아스팔트로 간 사람들!
그래, 그대들도 이 세상에 속하지! 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도시와 그 마음을 생각합니다.
위로 거짓말만 하는 정치배에서 아래로 둘이 벌어 하나 먹기가 힘든 날품에 이르기까지 함께 사는 곳, 수많은 욕심의 갈등이 있는 곳, 밝은 소비의 불빛과 그 빛으로 허영이 자라는 곳, 그러나 그래서 사람이라는 이름의 짐승들이 한없이 모여드는 곳.
무슨 냄새가 저 많은 짐승들의 코를 꿰는 것인가? 전혀 모르겠다 할 일은 아닙니다. 거기서 사람의 떼가 으르렁대며 살아 가는 소식을 듣습니다.
욕심껏 움켜쥔 손과 갈 데까지 간 퇴폐한 몸뚱이, 야비한 정신들, 그리고 그러지 못해서 미쳐나는 또 다른 사람, 사람들. 거기가 저들의 무덤이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정한 벗들과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내 알량한 경제가 젖줄을 대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엊그제까지는 내 주소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함부로 침을 뱉고 돌아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희미하게나마 이곳 새 소리, 풀벌레 소리, 이슬 젖은 풀섶과 하늘에 가득한 별들의 하늘 길이 닿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거기 소식을 낯설어 해서는 안된다고 한번 되새깁니다. 마음으로 멀어도 이방의 땅이 아닙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억울한 손, 헐벗은 몸뚱이, 정직하고 결 고운 마음씨들이 보입니다. 아픈 말과 얼굴들이 보입니다. 그것들이 초록만 흔하게 바라보고 있는 제 눈에 송곳처럼 박혀 오면 하늘이 검습니다.
콩 한 쪽도 나눌 수 있다 했습니다.
누더기 한 장으로도 시린 마음은 덥힐 수 있습니다. 여태도 그 일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꿈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익히 알던 것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꿈적대는 벌레 나부랭이에도 불성佛性이 있다 한 말은 아직 빈 말입니다.사람의 몸을 받아서도 벌레만 못한 대접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봄에서 가을까지를 생애로 삼는 박넝쿨도 박 하나 달면 그 무게를 버틸 끈 하나는 내어주기 마련입니다. 제 꽃 제 열매를 못 이기는 꽃대나 줄기를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가난과 소외와 다툼이라니! 사람의 잔혹함이 보입니다. 그 세상을 보느니 차라리 다정한 무덤들을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필시 또 다른 죽음 하나가 있으려니, 오늘도 그 죽음의 냄새를 맡습니다. 달콤하여 취하기 좋으나 돌이키기는 어려운 그 길로 세상은 떠나가고 있습니다. 복伏날 다리밑에 매달리는 짐승이 제 무게 때문에 죽음에 이르듯, 사람도 욕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죽음에 닿지 싶습니다.
그것 다 버리고 깃털 같은 무게도 버리고 나야 우리 안의 불성도 제 면목을 드러내려니, 사람 사는 소식에 마음 무거운데, 드문드문 낯익은 사람들의 이승 떠나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 날이면 오늘은 왜 이러는가 합니다. 밝은 방 안에서 문득 마음이 어두워 옵니다.
그렇구나.
내 입고 있는 옷의 올들이 벌써 삭아 내리고 있음입니다. 그 옷이야 그리 아까울 것도 없으나, 어둡고 무거운 이 마음으로 어찌 세상 떠나는가? 깃털보다 가벼워도 오히려 무거운 것을... 깃털도 땅에 내려 제 무거움을 쉬던 것 보았습니다.
옛적 누군가 기심機心을 경계하였다더니 이제 우리들 도심都心이 그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잔인함 위에 어리석기도 한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그 세상 풍경이 제 마음 풍경이어서 낯설어 할 것도 없습니다.
크게 모르겠어서, 답답하여, 저절로 하늘 맑은 바깥 풍광으로 눈이 갑니다. 거기서 인사하는 초록이 있으면 그저 머물고, 반가운 소리 있으면 거기 귀기울입니다. 마음 이야기 아니거든 조용한 초록의 말 아니거든 내게 말 건네지 말라! 하는 시늉이지만, 웬걸 마음 그렇게 편편키는 어렵습니다. 세상일이 힘에 겨워서 짐짓 고개 돌려 보았을 뿐입니다. 하나 믿는 것은, 초록 씻은 바람이 원없이 맑아도 그 속에서 칙칙한 도회의 마음 키울 수 있음과, 잿빛의 굳은 벽들로 빽빽한 기심한 복판에서도 달마達磨가 살아와 생각할 수 있음입니다.
초록에 묻혀서 오히려 기심과 싸우느라 지치고 낙담하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하나 어디 따로 있는 것인지? 새 한 마리 창밖에서 우짖더니 문득 떠나가고 없습니다.
그 새, 죽으러 갔는가?
창밖에 밤톨 같은 양광이 서성이는데 마음으로 마음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