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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니라 물질 토대를 허무는 징계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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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06월 208호
지난해 말 조계종사태에 연루된 승려들에 대한 징계가 마무리됐다. 조계종 재심호계원(원장 월서)은 5월 6일 16차 심판부를 열어 지난해 피제소자들에 대한 심판을 마무리 지었다. 이로써 해종특위가 활동한 지 두달 만에 조계종 사태에 따른 징계는 일단락되었다.
해종특위는 모두 126명을 조사해 113명을 호계원에 제소하여 그 가운데 92명이 문서 견책 이상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 내용별로는 공권 정지 5 ~10년이 32명, 공권 정지 6개월~4년 25명, 면직 4명, 문서 견책 10명이다. 종회의원 7명은 종회의원직 사퇴로 징계 회부가 취소됐다. 94년 개혁회의 때보다 징계자 수효가 두 배쯤 많은데, 이는 해종 행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됐다. 94년에는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옹호한 사례를 해종 행위로 규정한 반면, 이번에는 정화개혁회의라는 도당을 형성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 수효가 늘어난 원인이다.
이번 징계를 주도한 해종특위 쪽에서는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원칙으로 삼아 징계 대상자들이 남긴 자료와 참회의 정도, 소명 기회부여를 통해 징계 기준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형평성 상실 비판에 대해서는 어떠한 협상도 없이, 종단의 질서와 기강을 확립한다는 대의에 근거하여 종단사태를 올곧게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수긍하는 교계 인사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도 형평성에 맡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센데, 본사주지와 중앙종회 의원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장 분노하고 있다. 곧, 대어는 빠져나가고 피라미만 걸렸다는, “무권유죄無權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것이다. 본사 주지나 종회의원, 유력 문중 출신이나 현집행부 실세와 연이 닿아 있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생각은 교계에서 거의 진실로 통한다. 본사 주지나 중앙종회 의원 중에서 징계자가 없는 것말고도, 94년 개혁회의에서 서의현 원장 편에 섰는데도 절묘하게 징계를 면한 몇몇 승려가 이번에도 정화회의에 적극 가담하고서도 징계를 면하거나 예상보다 가벼운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사실을 들여다보면 소문은 조금 과장됐거나 추론이 사실을 앞선 바가 없지 않다. 징계 대상자로 거론된 본사 주지 중 한 명은 아직 징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고, 다른 한 명도 해당 본사 전체가 정화회의에 가담하였지만 본인은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음이 드러났다. 아직 단정은 이른데 대중들은 개연성만을 갖고 추론을 확장시키거나 심증에 따라 단정한다. 대중들의 이런 인식 앞에서 물증없이 심증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해종특위의 설명은 무력해진다.
중앙종회의원의 경우는 종회의원직 사퇴로써 다론 징계는 면했지만, 썩 명쾌하지 못하다는 시각이 많다. 결국, 힘 없는 사람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냐는 불만과 더불어, 한쪽에서는 중앙종회의원은 종회종회 재적의원 3분의 2가 넘는 찬성이 없으면 징계를 할 수 없는 현 종헌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악성 루머 중에는 수도권의 유력 사찰주지로 가고 싶어하는 스님이 현 주지를 징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켰다는 등, 어느 사철의 주지는 징계 당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 솜방망이 징계였다는 따위의 이야기도 있다. 이 또한 나름의 근거야 있겠지만, 대중은 자신의 신념과 다른 증거는 무시한다는 속설을 보여주고 있다.
멸빈자 관한 이야기는 좀더 심각하다. 사회의 처벌 규정과 견주면 사형과 같은 멸빈은 현 종헌에서는 사면 복권이 불가능해 이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갈등과 지켜보는 이들의 관심이 퍽 크다. 처벌이 중한 만큼 종단에서의 활동 비중도 큰 이들 중에는 정화 당시 대법원에서 할복한 이른바 ‘6비구 사건’의 주역인 전 중앙종회의장 월탄스님을 비롯해, 불교의 강남 시대를 열었으며 94년 개혁 당시 서의현 원장에 대항해 단식농성을 벌인 정우스님, 70년대 말 중앙승가대학설립을 주도하고 83년 재가 청년 불자들과 함께 종단 개혁을 주도한 성문스님 등, 한국불교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스님들이 여렷 들어 있다. 지난해 종단 분규의 주연으로 활동한 이 스님들은 이제 종헌이 바뀌지 않는 한 조계종 승적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과거의 업적이야 어떻든 정치적인 책임이 이들을 조계종에서 밀어낸 것이다. 한편, 지난 해 총무원이 주최한 승려대회에서 멸빈이 정해졌는데도 이를 피해 간 승려가 두명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정화회의 핵심은 분명한데 이를 입증할 채증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 한 명에 대해서는 멸빈을 피한 사실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이가 많은데,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증거 사진이 없다고 봐 주는 것은 분명히 물밑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있다.
승려 징계를 두고 말이 많은 것 조계종 승려로서의 권한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승가공동체의 일원으로 원만하게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사회법처럼 신체를 구속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승복을 입고 사찰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는데 징계가 무슨 효력이 있을까 싶겠지만, 그것은 승가 사회의 특성을 모르는 생각이다. 절 집안에서는 징계자를 멀리하는데, 이는 종단법이 승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멸빈 징계자중에서 자신을 변호하려고 재심호계위원회에 출석한 스님이 있음은 이를 잘 말해 준다. 재심에 출석하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원칙을 정화회의 최고 핵심까지도 받아들였다는 것은 스님들이 징계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준다.
멸빈자가 아니면 징계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사면 복권된다. 서의현 원장에 맞서다가 징계 받은 88년 봉은사 사태 당사자들이 그랬고, 94년 개혁회의에서 징계 받은 이들도 머잖아 징계가 풀릴 것이다. 그래서 멸빈만 면하면 징계가 별 효력이 없기 때문에 멸빈을 더 늘려야 한다는 시각과, 조계종 승적을 박탈하는 멸빈만큼은 되도록 막아야 한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둘 다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징계자들이 늘 종단의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멸빈을 당한 승려들만 보아도, 어느 본사에서는 이들이 뒤에서 주도하여 본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듯이, 이들의 기반 세력이 만만치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물리력으로 사태를 전환할 수 있음이 사실이다.
종단 행정이 본사중심제와 대의민주제를 택하고 있음은 정계자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고 있다. 유권자 수효가 권력의 주인을 정하는 제도와 한정된 권력에서 소외된 다수의 불만이 상존하는 세속의 법칙이 이 종단에서도 통용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법에 밝고 종단 행정과 싸우는 방식에 능통한 징계자들은 제도권 안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이 때문에 사건을 마무리 짓는 징계가 또 다른 문제의 씨앗이 되곤 한다. 그 까닭은 징계가 종단 분규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인 물리력을 제거하지 못하고 다만 사람에 대한 제약에 머물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태에서도 물리력을 동원하는 일은 주로 징계자들이 맡은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공권을 제한하는 것은 본디 취지가 수행에 전념하라는 뜻이지, 사회처럼 공직 취임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권력 기구와 목적이 다른 종단으로서는 징계 대상 승려에게서 모든 소유물을 빼앗되 수행에 필요한 발우와 승복만큼은 남겨줘 제방 어디서든 수행은 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징계의 본디 목적에도 맞다. 멸빈을 당하더라도 개인 소유의 법인이나 사찰을 갖고 있으면서 과거와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고, 때가 되면 다시 분규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종단과 종권에 대한 불만분자의 수만 늘릴 뿐 아무런 효과도 없다. 승려법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고 누구나 수긍하는 징계가 되려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하게 만들고 수행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돈과 재산을 박탈하는 징계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