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파 속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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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01월 191호
새해 벽두부터 경제난의 심화로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일말의 기대를 가져 보지만 하루아침에 이 난리가 수습될 것 같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나라의 사정이 이렇게 어려우니 불교 집안이라고 해서 편안할 리 만무하다. 어지간한 경제불황에는 별 영향을 느끼지 않던 불교계이지만 이번 경제난국은 사정이 다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종교심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게 통상의 예이긴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어려운 정도를 넘어 아예 자포자기 상태에까지 이르고 나니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신앙에 의지하려는 마음조차 말라붙어 버린 듯하다.
불교계에 불어닥친 이번의 경제한파는 확실히 예전의 그것과는 감이 다르다. 불교방송이나 불교텔레비전, 대한불교 진홍원, 불교언론사등 사실상 불교권 기간시설의 역할을 해 온 불교계 주요 기관이 하나같이 재정난에 시름하고 있다.
불교방송은 수입의 팔십에서 구십 퍼센트를 차지하는 광고수입의 대폭적인 감소가 예상돼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업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광고물량이 크게 줄었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광고비를 우선으로 삭감하고 있어 불교방송의 재정난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 불교방송 공금횡령사건의 연루자들 문제가 신속히 처리되지 않아 방송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것도 불교방송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교텔레비전은 더 어려운 상태다. 지난 연말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넘겼지만 앞날이 막막하다는 게 경영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다달이 사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감당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94년 개국한 뒤로 누적된 만성적자로 인해 지난해 12월 은행으로부터 빌려 쓴 부채가 삼십구억원에 달하고 있다. 종단 차원의 지원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지만 예산*1에 편성된 불교텔레비전의 지원금 마저 삭감하는 지금의 종단 분위기로 볼 때 그나마 난망한 상태다. 부득이 상여금 지급을 중단하고, 임금을 감액하며, 프로그램 제작비를 줄이는 군살빼기를 단행하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관계자들도 장담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가장 안정된 기관으로 알려져 있는 재단법인 대한불교 진흥원도 자금난에 봉착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불교 진흥원 수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다보빌딩 임대수입에 심대한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한불교 진홍원의 한 관계자는 십칠 층 건물인 다보빌딩에서 여덟 개 층을 사용하고 있는 해태그룹의 부도로 임대료가 제대로 수금되지 않고 있어 내년도 예산마저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 놓고있다. 여기에 네 개 층을 사용하는 불교방송으로부터 임대료를 받는 것도 요원한 실정이어서 대한불교 진흥원은 법인설립 뒤로 가장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조계종 총무원도 내년도 예산을 십 퍼센트 절감하겠다는 선언을 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예산축소집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같은 관측은 예산을 분담금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각 본말사의 재정악화가 불보듯 뻔한데 제대로 분담금이 걷힐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각 교구본사들은 내년도 본사운영 예산을 절감하고, 갖가지 긴축 운영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관광 사찰의 경우 내년도 수입이 많게는 오십 퍼센트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 본격적인 내핍에 들어간 국민들이 가장 먼저 문화비와 종교비를 줄이겠다는 조사결과도 있어 종교계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찰과 종단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질 경우 불교계 신문사들이나 불교복지시설, 산하 단체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될 것이 확실하다.
예년 같으면 본격적인 인도부처님 성지 관광철이었을 겨울철에 해외성지순례로 명맥을 이어온 불교계 여행사들도 이미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불요불급한 불사는 미루거나 하지 말자는 다짐이 스님들 사이에서 분출하고 있지만 사찰의 다짐이 아니더라도 불사는 이미 어렵게 되어 있다. 불사는 일단 시작만 해 놓으면 성취되는 것이라는 절집의 속설은 통하지 않는 시절이 됐다. 절집 어느 곳을 들어다보아도 희망적이거나 사정이 괜찮은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국가파산의 위기에 불교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가 피부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천태종 등 각 종단과 조계종 교구본사주지 스님들, 불교계 중진 스님들 사이에서 불교가 승단의 생활정신인 무소유無所有와 분소의糞掃衣 정신으로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선봉이 되자는 결의와 실천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민족의 정신문화와 역사에 중대한 역할을 해 온 민족종교로서 국난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지도급 스님들의 선언은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던져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쩌면 이런 면이 이천 년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에서 열린 조계종 지도자회의와, 대전에서 열린 조계종 교구 본사주지모임에서 참석 스님들은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몇 가지의 다짐을 내놓았다. 사찰마다. 최대한 재정긴축을 단행하는 것은 물론 불사자제, 해외성지순례 자제, 실내 한 등 끄기와 온도 낮추기 생활화, 수입 과실 불전에 올리지 않기, 종무원 급료 십 퍼센트 저축장려와 같은 절집 내의 실천지침을 내놨다. 특히 전 국민을 상대로 경제 살리기 한 통장 갖기ꡑ 운동을 펼치자는 호소를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님들의 이런 선언이나 다짐이 아니더라도 절집에서 재정긴축과 반찬 줄어기나 차량운행 줄이기, 신도대상 국산품 애용 장려하기에 앞장서는 것은 경제난으로 인해 실의에 빠져 있는 중생의 고통을 분담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매우 바람직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스님들이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경제적인 공황의 상태가 자칫하면 인간의 심성의 공황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구조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는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원시 공산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로 그리고 현대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심성과 생활 양태는 사회구조와 경제구조와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변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은 물질적인 보상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심성의 피폐는 그 추락을 막는 어떠한 안정장치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추락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인간적이고자 하는 심성은 무력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불교는 이 흩어지고 깨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되살아나게 일깨워야 한다. 경제적인 고난이 인간이 지닌 소중한 내적 가치인 지비와 사랑마저 앗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많은 말씀과 청정한 스님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이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베일 수 있도록 스님들이 더욱더 배전의 노력을 하여야만 한다.
야구에 위기 다음에 기회라는 말이 있다. 솔직히 한국불교는 근세에 들어온 뒤 우리 국민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분담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여 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국민의 고통보다는 정치권력에 기대려는 모습이 더 많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로인해 많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곁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한국불교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인 호국불교의 의미는 변질과 변색이 불가피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그 참의미가 변색됐다 하더라도 한국불교가 호국불교의 찬란한 전통을 되살리는 기회로 이번 국난을 맞이한다면 한국불교는 다시 한번 민족종교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그래서 민족종교라는 호칭을 갖게 된 불교의 전가를 국난극복을 선도하는 보살행으로써 내외에 확인시키는 대열에 전 불교도가 앞장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