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악업은 날로 늘어나고
내일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선업은 날로 줄어들며
올해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번뇌가 끝이 없고
내년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깨달음은 자꾸 멀어지네.
원효스님
세상 일은 끝이 없는 게 분명하다. 나 역시 본분 밖의 일 때문에 진짜 본분사本分事에 소홀한 삶을 날마다 살고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바쁘다는 까닭에 본-분을 잊고 사는 게 마치 우리네 자화상 같다. 어쩌면 미루고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옛 스님네는 하루 해가 지면 헛되이 하루를 보냈다는 안타까움에 다리를 뻗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행정진한 시간에 견주어 나아진 게 없는 것이 내 공부의 현주소다. 공일공년空日空年, 헛되이 하루를 살고 쓸데없는 일로 한해를 보냈으니 목놓아 울어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의 내 공부를 점검해 보면 번민과 갈등뿐이다. 그래서 자꾸만 허탈한 한숨이 나오는 걸까. 세월은 토끼 뜀박질이고 마음공부는 언제나 거북이 걸음이다.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시절을 기약할 것인가. 사람 몸으로 태어났을 때 생사대사生死大事를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생을 보장받기 힘든 게 우리네 삶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맹구우목盲龜偶木의 비유를 보면 더 와 닿는다.
눈 먼 거북이가 깊은 바다 속에 살다가 천 년에 한번씩 고개를 내밀고 숨을 크게 들이키며 쉬게 되는데,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었을 때 때마침 떠내려 오는 나무토막을 만나야 몸을 편안히 쉴 수 있다. 눈먼 거북이가 나무토막을 요행히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 그래서 사람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눈 먼 거북이 나무 만나듯 어렵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바늘 한 개를 던져 겨자씨를 맞추는 것만큼 힘들다’는 말이나 ‘사람 몸 받는 것은 손톱 위의 흙과 같다’ 는 비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으로 태어나 또다시 중생의 업을 쌓고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인간의 본분은 아닐 터이다. 마음 찾는 공부가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이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신 없이 살아가는 내게는 신년법어나 다름없다.
그러나 출가할 때의 그 간절하던 마음은 반푼도 남아 있지 않고 늘어나는 것은 방일한 마음과 망상밖에 없는 것 같다. 출가를 결심하던 행자시절의 신심이 지금껏 변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공부의 반은 거뜬히 성취하였을 게다. 머리에 붙은 불 끄듯 다급한 마음으로 공부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조사 스님의 경책도 있지만 안일한 자세 때문에 귓등으로 흘리기 일쑤다. 바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습관이 몸에 배인 까닭에 그렇다. 어느 날 문득 염라노사閻羅老師가 찾아오면 늘어놓을 변명조차 용납 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모골이 송연해 오고 얼굴을 들 수 없다. 흔들리지 않는 도정道程을 챙기려면 날마다 방일한 번뇌를 삭발하고 매일같이 인욕의 가사를 입고 출가하는 일이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사네.
학명鶴嗚 선사의 게송이다. 시종始終을 나누는 일은 아무래도 중생의 분별심이고 몽상일는지 모른다. 본분납자에게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듯 자기 일에 충실한 이에게는 묵은해와 새해가 다를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새해부터는 달력의 공간을 널다랗게 비워두고 싶다. 바쁜 일상으로 채우기보다는 수행의 여백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