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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쓰는 자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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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수상 - 현진 1998년 01월 191호
출가하던 그 해 겨울이었을 게다. 팔뚝의 연비 자국도 채 아물지 않은 햇중으로 법주사 관음암에서 암주庵主 스님을 모시고 중노릇을 익히고 있었다. 관음암은 속리산의 암자 가운데 가장 높운 곳에 위치한 암자이기 때문에 거의 토굴에 가까운 수행처이다. 더군다나 임경업 장군이 수련했다는 경업대 바위 사이에 있으므로 공부의 기운이 남다르고 인척이 드문 곳이라서 정진하기에는 손색이 없는 도량이었다.
새해 첫날, 폭설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무렵 쌀이나 간단한 부식은 며칠에 한번씩 아랫절이나 큰절에서 얻어와 먹고 있었다. 그런데 무릎까지 쌓인 눈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게 되고 때마침 김치가 동이나 버렸다. 밥을 먹을 때마다 김치 생각이 간절하였으므로 다음날 이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상고암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막상 나서고 보니 괜한 호기를 부렸나 싶었다.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산길이 묻혀 버려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낭떠러지가 많고 경사가 심한 길이기 때문에 섣불리 내려가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순간 전화선이 떠올랐다. 아랫절 상고암까지 임시로 연결한 전화가 있었는데. 그 전선을 잡고 따라가면 될 것 같았다. 전선을 따라서 이리 엎어지고 저리 구르고 하길 수십 번, 무사히 상고암까지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마치 적진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와 다를 바 없었다.
발자국을 거슬러 암자까지 다시 올라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죽을힘을 다하면 평소의 힘보다 몇 배가 생긴다는 말이 옳은 것 같다. 그 때 먹었던 김치 맛은 꿀맛이었고 지금 까지 그 김치 맛을 잊지 못한다. 새해에 눈이 내리면 그날을 떠올리며 차향에 젖을 때가 더러 있다.
그 때와 견주어 보면 지금은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수행의 소식이 아니라 일상의 소식들이 내면의 틀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의 일을 정리해 보면 내 안의 일보다는 바깥 일에 신경 쓴 흔적이 군데군데 있다. 한해의 달력은 내 수행의 이력이며 일기이다. 특히 메모칸에 써 놓은 쪽지들을 다시 읽으면 바삐 살았음이 느껴진다. 꼭 해야 할 일인 것처럼 적어 놓았지만, 지나고 나면 부질 없는 일들이 더 많다. 수행자의 방에 걸어 놓은 달력에는 오로지 정진시간만 표기되어 있어야 옳을 게다. 그래서 내가 지녔던 한해의 달력이 너무 부끄럽다.

오늘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악업은 날로 늘어나고
내일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선업은 날로 줄어들며
올해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번뇌가 끝이 없고
내년부터 잘 해야지 하면서도 깨달음은 자꾸 멀어지네.
원효스님

세상 일은 끝이 없는 게 분명하다. 나 역시 본분 밖의 일 때문에 진짜 본분사本分事에 소홀한 삶을 날마다 살고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바쁘다는 까닭에 본-분을 잊고 사는 게 마치 우리네 자화상 같다. 어쩌면 미루고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옛 스님네는 하루 해가 지면 헛되이 하루를 보냈다는 안타까움에 다리를 뻗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행정진한 시간에 견주어 나아진 게 없는 것이 내 공부의 현주소다. 공일공년空日空年, 헛되이 하루를 살고 쓸데없는 일로 한해를 보냈으니 목놓아 울어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의 내 공부를 점검해 보면 번민과 갈등뿐이다. 그래서 자꾸만 허탈한 한숨이 나오는 걸까. 세월은 토끼 뜀박질이고 마음공부는 언제나 거북이 걸음이다.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시절을 기약할 것인가. 사람 몸으로 태어났을 때 생사대사生死大事를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생을 보장받기 힘든 게 우리네 삶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맹구우목盲龜偶木의 비유를 보면 더 와 닿는다.
눈 먼 거북이가 깊은 바다 속에 살다가 천 년에 한번씩 고개를 내밀고 숨을 크게 들이키며 쉬게 되는데,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었을 때 때마침 떠내려 오는 나무토막을 만나야 몸을 편안히 쉴 수 있다. 눈먼 거북이가 나무토막을 요행히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 그래서 사람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눈 먼 거북이 나무 만나듯 어렵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바늘 한 개를 던져 겨자씨를 맞추는 것만큼 힘들다’는 말이나 ‘사람 몸 받는 것은 손톱 위의 흙과 같다’ 는 비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으로 태어나 또다시 중생의 업을 쌓고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인간의 본분은 아닐 터이다. 마음 찾는 공부가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이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신 없이 살아가는 내게는 신년법어나 다름없다.
그러나 출가할 때의 그 간절하던 마음은 반푼도 남아 있지 않고 늘어나는 것은 방일한 마음과 망상밖에 없는 것 같다. 출가를 결심하던 행자시절의 신심이 지금껏 변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공부의 반은 거뜬히 성취하였을 게다. 머리에 붙은 불 끄듯 다급한 마음으로 공부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조사 스님의 경책도 있지만 안일한 자세 때문에 귓등으로 흘리기 일쑤다. 바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습관이 몸에 배인 까닭에 그렇다. 어느 날 문득 염라노사閻羅老師가 찾아오면 늘어놓을 변명조차 용납 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모골이 송연해 오고 얼굴을 들 수 없다. 흔들리지 않는 도정道程을 챙기려면 날마다 방일한 번뇌를 삭발하고 매일같이 인욕의 가사를 입고 출가하는 일이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사네.

학명鶴嗚 선사의 게송이다. 시종始終을 나누는 일은 아무래도 중생의 분별심이고 몽상일는지 모른다. 본분납자에게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듯 자기 일에 충실한 이에게는 묵은해와 새해가 다를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새해부터는 달력의 공간을 널다랗게 비워두고 싶다. 바쁜 일상으로 채우기보다는 수행의 여백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