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치문반 스님들에게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머물고 싶은 경구 - 영덕 1998년 01월 191호
동지 방학일, 이른 아침 대중이 떠나간 도량은 고즈넉합니다. 바람을 타고 한잎 두잎 비가내리고, 올해는 겨울비가 잦습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산과 산사이의 원근이 드러납니다. 더 이상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그만큼의 거리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미 가시적인 안목의 거리는 없습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훤히 보이는 깊은 속내, 서로의 마음가는 길을 알고 있으며 튼실한 신뢰감이 있을 뿐입니다. 빗속에서 보는 사물은 파스텔화처럼 부드럽습니다. 그 사이로 우리를 스쳐간 시간들이 보입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의 물결, 산과 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우리가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그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수행과 생활 그 상환관계, 사는 일, 산다는 것의 양면성, 자기 앞의 생, 밤낮으로 바쁘게 무언가를 추구하지만 우리는 물결 위에 뜬 거품은 아니었을까요? 결코 체류를 용납하지 않는 도도한 흐름 그 한가운데였을까요? 마음속의 사랑 분별을 끊고 허공을 닮아 가는 것이 우리 수행의 기본이라면 평지풍파를 쉬고 고요하였느냐, 수없이 묵묵담담이라고 써 보지만 얼마나 묵담하였느냐고 되물어보며 ---찬비 속에서 죽은 듯 서 있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옷자락이 다 젖도록 비를 맞았습니다. 이 순간 이생에 남은 한마디 질문이 있다면 누구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질 것인가 바로 이 순간 이생에 마지막 한 장의 원고지가 있다면 누구를 향해 그 종이를 쓰려느냐…. 나는 망설이지도, 서두르지도 않으며 치문반 스님들에게 그렇게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 나는 지독한 잔소리꾼이어서 그때 그때 하고싶은 말을 다해버려 꼭이 들려주고 싶은 말이 따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이야기를 시작하여도 그 말의 결론이 어떻게 끝나려는지 이젠 나보다 여러분이 더 잘하는 일이지요---. 세간 삶의 때를 바래어 중물들이는 과정, 지금 이 자리 선 것은 익게, 익은 것은 설게, 지혜롭게 지혜롭게, 부드럽고 따듯하고 배부르고 달고 편안함을 위한 길이 아닌 극기 극기 그리고 긍정과 순종, 마음 하나 잘 쓰면 아무 것도 아닌 일, 오로지 부처님을 닮기 위하여, 순수해져라. 마음을 순수하게 쓰라. 땅에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듯 당처에서 최선을 다하라. 참는 일이 없으면 이루어지는 일도 없는 것. 침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인욕. 난행難行에도 매진하는 노력, 올바른 일은 굽히지 않고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마는 노력 그것이 진정한 정진, 낙수물이 돌을 뚫듯 부단히 부단히 첫계단 바로 이 자리에서 깨어 있으라. 치문에 최선을 다하라---. 그 많은 잔소리가 여러분을 향한 것이기보다 어쩌면 내 자신을 향한 내면의 울음이었는지 모릅니다.

“승려란 부처님으로써 성姓을 삼고 여래로써 집을 삼으며, 법으로써 몸을 삼고 혜慧로써 명命을 삼으며 선열禪悅로써 공양을 삼는 연고로 세속성世俗姓을 믿지 않고 세가世家를 경영하지 않으며 계해戒骸를 꾸미지 않고 생을 탐貪하지도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오미五味에 젖지도 않나니라. 그 몸을 막음에 계가 있고 마음을 섭수攝受함에 정定이 있으며 가림을 분명히 함에 지혜가 있나니라. 그 계를 말할진댄 삼혹三惑을 깨끗이 하고 청정하게 하여 몸을 마치도록 물들지 않고 그 정定을 말할진댄 사려思慮를 고요히 하여 신명을 바르게 해서 종일토록 어지럽지 않게 힘이요 그 혜를 말할진댄 덕을 숭상하여 미혹을 밝히는 것이 펼연적인 것이라”
치문명교숭선사 존숭편

치문繼門 한해를 마무리하며 안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는데 소홀하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화엄회향 그 날까지 무장무애하기를 축원하며 산과 산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