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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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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1999년 06월 208호
사람들은 나를 보고 ‘자살바위’라고 부릅니다. 사람들뿐 만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도 나를 자살바위라고 부릅니다. 거북처럼 생겨서 거북바위라고 불리는 친구도, 용머리하고 흡사하다고 해서 용두암이라고 불리는 친구도 심심하면 나를 “어이, 자살바위!”하고 부릅니다,
처음에 나는 내가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습니다. 원래 내 이름은 자살바위가 아니라 ‘솔바위’였습니다. 바다를 향해 높이 절벽인 양 서 있는 내 몸에 노송 한그루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다들 그렇게 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를 자살바위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모두들 나를 자살바위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살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살이 무엇일까? 왜 나를 자살바위라고 부르는 걸까?”
어느 날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거북바위가 마침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 응, 그건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것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그 자살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응, 그건 사람들이 너를 이용해서 자살을 하기 때문이야.”
“나를?”
“넌 사람들이 자살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거든. 너무 높아도 겁이 나서 자살을 못하는데, 넌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 그대로 바다로 뛰어내려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야. 그러니 사람들이 너를 이용하는 거야. 고개를 숙여서 네 발 밑을 한번 봐. 넌 발 밑까지 바위가 깊게 뿌리박고 있는 데다 아주 날카로운 몸매를 하고 있어서 한번 떨어진 사람은 그대로 부딪쳐 죽고 말아. 그냥 바닷물이 출렁대고 있다면 본능적으로 헤엄을 쳐서 살아나 올 수도 있는데, 한번 몸을 날리면 아예 살아나지를 못해. 그래서 다들 널 자살바위라고 부르는 거야.”
나는 억울했습니다. 듣기에 따라 내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거북바위는 마치 내가 사람들을 죽이는 양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그리 곱지 않았습니다.
“싫어. 난 자살바위가 아니야. 날 자살바위라고 부르지 마. 원래 내 이름은 솔바위야. 제발 그 이름으로 날 불러 줘. 너도 내 이름이 원래 솔바위였다는 걸 잘 알잖아”
“이름은 자기가 그렇게 지어도, 남이 그렇게 부르면 할 수 없는 거야. 네 몸에 씌어 있는 글씨를 한번 찬찬히 살펴봐. 그런 글씨가 씌어 있으니 다들 그렇게 부를 수 밖에!”
나는 내 몸을 찬찬히 살펴 보았습니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무슨 글씨란 말입니까. 내 몸엔 붉은 페인트로 “다시 한 번 생각하자”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살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심사 숙고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다른 뜻으로 해석하면 ‘여기가 바로 자살바위다, 자살을 하려면 바로 여기에서 하라, 많은 사람이 이 바위에서 자살을 한다 는 뜻일 수 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동안 내 몸에 누가 언제 그런 글씨를 썼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온 나 자신이 무척 어리석게 느껴졌습니다. 만일 내 몸에 씌어진 그런 글씨를 보고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했다면 내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지?”
나는 기가 죽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거북바위에게 물었습니다.
“부지기수야.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나아.”
거북바위는 내가 아주 꼴 보기 싫다는 듯 눈을 한번 흘기고는 그만 몸통 안으로 모가지를 쑥 접어넣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심한 자책감에 삐쳤습니다. 나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 갔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사람들을 그렇게 죽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괴로웠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공연히 갈매기들하고 장난이나 치고, 멀리 수평선을 오가는 선박들이나 바라보곤 한 일이 후회되었습니다.
나는 잠을 자지 않고 몇 날 며칠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달빛이 푸른 밤이었습니다. 한 젊은 여자가 살며시 구두를 벗어 가지런히 내 가슴 위에 올려놓고는 맨발로 바다로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 여자도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멀리 달빛에 부서지는 파도가 끝없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왜 자살을 하려고 하세요?”
나는 속삭이듯 살며시 그 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사랑을 잃었어요”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목숨까지 바쳐서 사랑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어요”
여자의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습니다.
실은 그 동안 나는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눈물이 내 몸을 적시자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여자는 새벽 별이 질 때까지 내 몸에 눈물을 쏟아 놓았습니다. 내 몸을 눈물로 범벅을 만들어 놓고 여자는 다시 구두를 신고 돌아갔습니다. 달빛이 돌아가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비쳐 주었습니다.
그 뒤 또 한 여자가 나를 찾아와 내 가슴 위에 고무신을 벗어 놓았습니다. 여자는 예순이 넘은 얼굴에 주름이 퍽 깊은 분이었습니다.
“자살하지 마세요.”
나는 여자가 바다로 곧 뛰어드는 듯해서 급하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들을 잃었어요.”
여자가 괴로워 숨을 토해내듯 말했습니다.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나간 아들이 폭풍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어요. 나이 마흔에 얻은 얼마나 귀한 아들인데, 내 목숨보다 귀한 아들인데, 아이고!”
여자가 “아이고!” 소리치면서 “아들 없는 세상은 살고 싶지가 않다”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습니다. 여자는 그만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여자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내 몸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노송의 솔가지를 길게 늘어뜨려 여자를 사뿐히 안아내려 놓았습니다. 여자는 자기 몸이 바다에 던져진 줄만 알고 한동안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고마워요. 이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지요.”
여자는 깨어나서 내게 그런 말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 나는 자살하려고 나를 찾아 오는 사람마다 그렇게 살려 놓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려 놓은 사람이 몇 명인지 나도 알 수 없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는 거북바위와 용두암 친구가 “어이, 복바위!”하고 나를 불렀습니다.
친구들과 사람들이 나를 “복바위” 라고 부르는 줄을 나는 그 때 처음 짧습니다. 나를 찾아와 복을 빌면 된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로 널리 퍼져 나간 줄을 나만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