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만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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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2년 09월 127호
해젯날은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급해진 것 같다. 한 철 지냈던 도반스님들과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서둘러 산문을 내려온 까닭에 그렇다. 해젯날을 무슨 명절처럼 줄곧 기다려 온 탓이기 때문일까. 이날은 꼭 남보다 먼저 걸망을 챙기게 된다. 한철씩 안거를 지내게 되는 우리로선 이날이 보통 때와는 다르다. 한 철 동안 내 본분사를 점검하던 방석을 훌훌 털고 일어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젯날은 홀가분한 기분만큼 마냥 즐거워지기 마련이다. 우리 삶이란 게 어쩌면 이처럼 처음과 끝을 거듭하면서 희노애락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시공양을 마치고 자기 바릿대를 챙기는 일로 안거 기간 수행 일정을 마무리 했다. 떠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조그마한 걸망에 행각 때 필요한 것들을 챙기면서 만행무정처萬行無定處의 내 삶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으면서 짐을 싸는 손길이 버릇처럼 빨라지는지 모르겠다. 가사를 곱게 접어서 보자기에 싸는 일이 우선이다. 어느 처소에 가든 가사 하나만 있으면 끼니 굶을 염려는 없다. 그리고 속옷 한 벌, 양말 한 켤레 정도면 한동안 다닐 수 있다. 그때그때 빨아서 바꾸어 입는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간단한 세면 도구까지 넣었더니 걸망의 모양새가 제법 갖추어졌다. 이번엔 오래 다닐 작정으로 삭발할 때 사용하는 면도기까지 챙겼다. 대충 이렇게 걸망을 싸고 나면 끈을 내 어깨에 맞추어 묶는다. 너무 아래로 처지면 걸망이 흔들리게 되고 그렇다고 단단히 윗쪽으로 조이게 되면 어깨가 아파 오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다. 또한 걸망배가 불룩불룩 나오지 않게 내용물을 잘 정리하는 것도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이때는 등산 배낭을 꾸리는 일과 똑같은 이치이다. 무엇보다 걸망은 가벼워야 좋다. 그래야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줄이는 습관이 몸에 배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기게 된다. 알고 보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걸망을 무겁게 만드는 함정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걸망을 깔끔하게 갖추고 다니는 스님네를 만나면 예사로 보지 않는다. 걸망 싸는 일만 보아도 한 수행자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젯날 아침엔 군불을 아궁이 가득 지폈다. 얼마간 거처를 돌보지 못하게 될 것을 배려한 까닭이다. 사실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해젯날 준비를 해 두었다. 뒤란의 장작더미에는 새로 우장을 덮어 단단히 동여매 주었고, 화장실에 낙엽을 여러 겹 뿌려 주는 작업도 집을 비우기 전에 할 일이다. 재래식 화장실의 냄새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루 전날에는 이불 빨래까지 길게 널었다. 어디를 나설 때는 벗어 둔 옷가지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찜찜해 하는 탓이다. 그런 다음 풀 먹인 무명옷을 꺼내 입었다. 풀옷의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해젯날 아침에는 더 크게 느껴진 걸 보아 마음이 아주 가벼웠던 모양이다. 해젯날 걸망을 메고 산문을 나서는 스님네의 모습이 더없이 좋다. 걸망 하나만으로 떠날 수 있는 수행자의 삶이 얼마나 좋은가. 아마 이런 해젯날 기분 때문에 안거를 착실하게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한 철을 열심히 정진한 만큼 해젯날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이다. 또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처음으로 걸망을 푼 곳이 해인사. 마치 출가 본사를 찾은 것처럼 기분이 새롭다. 몇 년 살면서 중노릇을 익히고 장판때를 묻힌 곳이라서 그럴게다. 다시 말해 내 사상의 근간처. 언제 들려도 내 집처럼 편안한 도량이다. 그리운 도반을 만나는 날이다. 학인 시절 동수동행同修同行했던 도반들과 만남은 거짓 없는 기쁨이었다. 해젯날부터 도반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뜨곤 하였다. 이제 풋내기 수좌들로 각기 다른 처소에서 안거를 지내고 모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반들 눈빛이 맑게 살아 있었다. 오랜만에 둘러앉아 풋풋한 정담을 나누고 도반들의 안부를 물었다. 보이지 않아 서운했던 몇몇 도반들의 소식도 이런 날엔 들을 수 있다.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수행길에 나선 도반의 환한 얼굴도 반가웠고, 외국으로 나간 도반의 건강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우릴 슬프게 한 것은 한 도반의 환속에 관한 얘기였다. 공부를 잘했던 도반이었던 터라 뜻밖의 그의 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젊은 도반들이라 수행의 부침이 다소 심한 게 걱정이다. 세속인에겐 깨복쟁이 친구가 편하듯 우리 수행자에겐 강당도반講堂道伴을 따를 이가 없다. 무엇보다 부담이 없어 좋다. 때론 물기 없는 사무적인 만남들이 우리네 일상을 얼마나 지치게 만들고 있는가. 그래서 가식과 위선을 벗어 던진 도반들과 만남은 참으로 나를 편하게 해 준다. 법석法席이었던 셈이다. 헤어진 도반들이 벌써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