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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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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사재동 1998년 01월 191호
무엇이 나를 이다지 괴롭히는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 이제 정말 괴로워 견디기 어렵다. 이보다 더 불행하면 살수가 없다. 이게 따 누구의 탓인가. 정말 따져 보자. 따져야 한다. 그래서 그 책임 소재를 밝혀서 형사 처벌이라도 해야 된다. 정말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오늘의 이 고통이, 지금의 이 불행이 정말 누구의 책임인가. 국가의 책임이다. 그렇다 대통령의 무능이다.
장관의 잘못이다. 시장의 실책이다. 구청장, 동장, 반장의 실수다. 부모, 처자들이 시원찮아서 그렇다. 선후배 친구들이 의리가 없어 이 모양이다. 분명한 것은 내게는 책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털끝만큼도 잘못한 바가 없다. 나는 눈꼽만큼도 어긋난 점이 없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잘했다. 최선을 다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남의 책임이요. 네 탓이다.
그런데도 왜 나만이 괴롭고 나만이 불행해야 하는가 하느님도 무심하고 부처님도 무능하다. 아무 소용이 없다. 나도 돈을 모으고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가난해야 되는가. 나는 권력을 쥐고 싶다. 나도 좀 감투를 쓰고 칼자루를 마구 흔들면 시원하겠다. 그런데 나만은 왜 백대가리, 펜자루도 못 잡고 있는가. 나도 명예를 누리고 싶다. 명예란 얼마나 좋은가. 좋은 것은 약삭빠른 놈들이 다 앗아가고, 나만 왜 천덕꾸러기로 부끄러워하는가.
이제 정말 화가 난다. 다 부수고 싶다. 다 태우고 싶다. 다 죽이고 싶다. 벼락이라도 내리어 다 폭삭 망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더욱 화가 치민다. 펄펄 뛰고 싶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몸부림을 친다. 발광을 한다. 이제는 미치광이가 된다. 스스로 폭발하여 죽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제풀에 몸이 녹고 마음이 타서 기절하게 된다.
그래서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없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후좌우를 모른다. 매사가 사리에 어긋나고 하나도 되는 게 없다. 말할 수 없이 혼미하고 오리무중이다. 정말 약삭빠른 바보다. 내가 왜 이리 어리석어지는가 나를 내 맘대로 못하겠다. 자꾸만 저 어두운 구렁으로 빠져든다. 아아 지옥인가. 꿈속인가. 내가 꿈을 꾸는가. 꿈속에 내가있는가.

악 하고 악몽을 깨고 나니, 내가 양소유로 태어났다. 소유는 세상에서 가장 잘나고 총명이 비할 데 없다. 장성하며 무불동지하여 과거에 장원급제한다. 한림학사로 제왕의 총애를 받고 벼슬이 하늘같이 오른다. 그러니 왕가, 권부의 규수를 아내로 맞고, 여기 저기 자천, 타천으로 소첩을 두어 여덟의 처첩을 거느린다. 처첩은 형제의 우애로써 남편을 하늘같이 받든다. 주지육림에 환희를 누리고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관직은 거침없이 오르고 국난이 나도 소유가 원정하면 스스로 평화롭다. 그러니 들어오면 재성이요 나가면 대장군이다. 그리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성이 된다. 권력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재산도 마음껏 주무르고, 명예도 위없이 누리고 사랑도 실컷 맛보고, 자손이 훌륭히 만당하여 있다. 그러나 소유도 인간이라 처첩과의 무한한 행복으로도 늙음을 막지는 못한다. 고대광실 높은 다락에 올라 황혼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황혼을 깨닫는다. 이제 시름과 괴로움을 느끼며, 산중 암자를 찾아 노승의 설법을 듣고 아득히 깨닫는다.
악 하고 꿈을 깨니, 남가일몽이라, 소유가 바로 성진으로 돌아왔다. 그는 진실한 성품으로 남악형산 연화도량에서 육관대사에게서 의발을 받고 성불 도사가 된다. 도량 대중을 제접, 교화하고 꿈속의 처첩을 보살로 구제, 승화시킨다. 드디어 성진은 부처가 되어 여덟 보살을 거느리고 지혜의 광명을 타고 주낙세계로 왕생한다.
이것이 「구운몽」의 정신이요 가르침이다. 이것이 진공묘유를 체달하고 지혜로 저 언덕까지 건너가는 수행의 원리다. 또한 이것이 인생을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영원한 지혜다. 이제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그 놈의 탐욕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억지로 즐기고 행복 하려고 얼마나 탐착 하였던가. 좀더 높은 벼슬, 더욱 큰 권력을 잡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쳤는가. 불의 부정은 물론 생사를 걸고 엉뚱한 명분을 세워 싸우고 죽이기를 얼마나 했는가. 그래서 좌절하여 병들고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하여 권력을 잡았어도 권불십년이라고 그 종말이 죽음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큰 재벌이 되고서도 더 큰 재벌이 되고자 과욕을 부리고 집착하다가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그 귀한 명예련만, 명예를 좀더 따려고 집착하다가 망신하고 불명예를 자초한 체험이 있는가 없는가. 탐착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이 최상의 지혜다.
그리고 그 놈의 성냄을 가라앉혀야 한다. 내 기분풀이로 남을 욕하고, 뜻대로 안 된다고 얼마나 화를 냈던가. 자신의 실패와 괴로움 그리고 불행이 모두 남의 탓이라고, 죽기 살기로 다투고 화를 낸다. 이 화는 정말 무서운 불길이 되어, 남을 태우고 나 스스로를 태운다. 남을 향해 독기를 품으면, 남을 상해하기 이전에 자신을 망가뜨린다. 그 독기는 독사처럼 자신의 분비샘에서 방출되어 우선 혈관을 타고 전신을 마비시키고 실신시키며, 마침내 죽음을 부르는 극약이 된다. 성냄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것을 단비로 안정시키는 것이 최고의 지혜다.
이어서 그 놈의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한다.․사실 탐착과 성냄이 있으면, 총명을 가리워 어리석기 마련이다. 약삭빠른척하며 어리석고, 잘난척하며 어리석다. 어디에 집착하여 고집불통이면 자연 현명함이 사라져 앞뒤와 좌우를 모른다.
사리분별이 어렵고, 한 치 앞을 못 본다. 사실 육안을 가지고도 언제나 캄캄하다. 그래서 험로도 모르고 장애물도 모르는 채 위험에 빠져든다. 그래서 어리석음이 괴로움과 불행을 자초한다. 어리석음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것을 헤어나는 것이 무상의 지혜다.
불가에서 흔히 말하기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죽음에 이르는 세 가지 독약이라 했다. 그러기에 탐욕은 계행으로 다스리고, 성냄은 정력으로 가라앉히며, 어리석음은 지혜로 깨달으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세 가지 배움이요 참된 지혜다. 이것만 지키면 그대로가 지혜로운 삶이다. 그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지켜도 다른 두 가지까지 깨달아 실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죽지 않으려거든 서서히 작은 것부터 지켜라.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이치, 세 가지 가르침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 그래야 실천하는 법이다. 그래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언제나 다라니를 염하라. 늘「반야심경」을 외우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무리 없이 부드럽게 외우라. 잠시라도 한가할 때, 여행 중에 차안에서 속으로 염하라. 그것이 마음을 비워 삼독을 버리고,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무상의 법문에다. 그것은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내 책임 아래 모든 고액과 불행을 능히 제거하는 참된 주문, 영원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