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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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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해인삼매 - 이시영 1992년 09월 127호
어느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 하는구나
내가 네 발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아는 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시작노트
정말로 좋은 시란 시 자체가 자족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세계에 대한 독특한 한 질문의 양식이 시라면 이미 해답이 마련되어 있거나 제시된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시에는 세계를 비추는 빛과 함께 존재의 알지 못할 불안이 깃든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제 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구요...)
「해인」지를 읽으면 (특히 ‘호계삼소’ 같은) 저처럼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사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분들의 밝은 빛에 비하면 제 시의 그늘이란 얼마나 초라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