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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현명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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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도법 1998년 01월 191호
참으로 불교인이고자 하는가
부처님 일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든다면 아마도 석가족의 멸망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민족이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처님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인간 또는 민족에게 덮쳐 온 처참한 비극 앞에서 부처님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때 정황을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다. 부처님의 심정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길이 벗다. 다만 정복 군에게 보여준 태도와 수제자들의 건의에 대한 부처님의 반응을 통해 유추해 볼 따름이다.
첫째, 부처님은 살인적인 태양열이 작열하는 한낮에 정복 군이 쳐들어오는 길목의 고목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민족의 멸망이 주는 고통과 불행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는 복수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 해결의 길이 아님을 설득하고자 함이었다.
둘째, ‘신통력을 사용하여 민족의 멸망을 막아내야 한다’는 수제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맺어진 원한은 본인이 참고 용서하는 인간 성숙의 길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는 법에 대한 자각과 확신 때문이다.
경전에 나타나 있는 부처님의 태도와 같은 선상에서 이 사건을 다룬 현장법사의 서역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석가족의 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정복 군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석가족들은 “우리 석가족은 전륜성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법왕法王의 종족이다. 무장투쟁으로 사람을 죽인 일을 어찌 용서하겠는가. 이 네 사람은 석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 하며 멀리 추방했다. - 비루라카왕은 석가족을 몰살시켰다. 시체는 풀 더미 같이 쌓이고 피는 흘러 연못을 이루었다.

민족의 멸망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화의 길, 법의 길을 지켜 가신 부처님과 석가족의 태도 앞에서 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진정 우리는 부처님의 사상과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불교의 사상과 정신을 지키고 현실의 문제를 불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제자리를 찾아보자
경전에는 부처님의 인행과 관련된 많은 우화들이 있다. 이 우화들은 삶을 되돌아보게도 하고 인생의 지혜를 열어주기도 한다.

어느 가을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스럽게 불고 있었다. 점심을 마친 토끼가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는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정신 없이 낮잠에 빠져 있는데 상수리가 떨어져 토키의 머리를 때렸다.
화들짝 놀란 토끼가 순간적으로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고 판단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빨리 피해야 한다”고 외치며 뛰기 시작했다. 토끼의 외침을 들은 산중의 짐승들이 너도나도 뛰기 시작했다. 온 산중이 난리가 났다. 얼마나 뛰었을까. 백수의 왕인 사자가 나타나 물었다. “누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는가” 곰은 소에게, 소는 말에게, 말은 노루에게, 노루는 토끼에게, 마지막에 토끼가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사자는 동물들과 함께 상수리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어느 곳에도 세상이 무너지는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도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겁 많은 토끼의 무지와 경박함으로 인한 사건임이 밝혀졌다.

이 우화는 앞만 바라보며 달려 온 인류사 또는 개인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인류는 고통과 불행이 없는 안전지대를 찾아 멀고도 먼 길을 줄기차게 달려 왔다. 온갖 기술과 수단과 열정을 바쳐 달려 온 오늘 이 자리가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안전지대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혼란과 혼돈에 빠져 신음하고 방황하는 현대 인류사회가 적나라하게 웅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하는 냉철함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참으로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우리는 일상의 경험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의 기울여 자연 현상을 관찰하노라면 새로운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여름밤 등불 주위에는 무수한 불나비들이 날아든다. 불빛을 향한 일방적인 불나비의 몸짓은 필사적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빛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불나비의 본능적인 갈망을 보노라면 오싹한 추위를 느낀다. 빛을 찾아 죽음도 돌아보지 않는 본능적인 갈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등불 주위를 돌아보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져 있다. 불에 타서 목숨을 잃은 불나비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날개와 발에 상처 입은 불나비들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살상의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가 아마 이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불나비들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나비에게 돌아온 결과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일까.
오늘 인류의 신세도 불나비 신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긴 세월 무엇인가를 얻고자 죽을힘을 다하여 애써왔다. 그런 결과, 비행기, 자동차, 컴퓨터, 고급주택, 넘치는 물질적인 부유함과 생활의 편리함 등 엄청난 것을 소유하고 누리게 되었다. 우리의 꿈과 소망이 실현되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전율할 듯한 감격의 기쁨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인류에게 덮쳐오고 있는 재앙은 범상치가 않다. 공해, 핵무기, 자원고갈, 환경오염, 생태계 붕괴, 불치의 질병, 이상기후, 식량난, 대량실업, 자아상실, 인간성 파괴 둥 지구촌의 생명 자체가 위협받는 위기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가 갈망해 온 낙원은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 우리가 얻고자 했던 것이 생명의 위기는 아니지 않은가.
현대의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여 불안해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지만 불나비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진정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겸손함이 있어야하겠다.
앞만 바라보며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차분하게 돌아보는 침착함을 지녀야하겠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더욱 본질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