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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 같이 생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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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적축 - 원철 1998년 01월 191호
연재를 사작하면서
몇 년 전 얼떨결에 인정에 못이겨 율장관계자료를 모아 일 년 동안 해인지에 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계목戒目은 제대로 다루어보지도 못한 채 겉만 맴돌다가 부랴부랴 매듭을 지어 버렸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연재란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동일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공해낸다는 것 자체가 끊임없는 망상 짓기를 요구해 오기 때문이다. 그건 몸과 마음을 늘 담박하게 해야 하는 출가자의 살림살이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게 대중살림이다.

속장경을 한 질 구입하다
얼마 전에 「신찬대일본속장경」을 한 질 들여 놓았다. 이 책은 해인사에서 학인으로 있을 때 영인본으로 만들어 보급할 때 처음 보았다. 그 때는 이 대장경의 가치를 몰랐다. 나중에 속장경을 다시 교정 재편집한 대장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새삼 그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불교 공부에는 논소초論疎抄가 필수이다. 그래서 이미 소장하고 있는 대정대장경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자주 이용되는 장경이기도 하다. 가치를 다시 알고 나서 구하려니 구할 수도 없었다. 불교책은 수요가 두텁지 못해 적게 찍는지라 금방 절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은해사로 와서는 더욱 필요성을 느껴 도반이 한 질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줄 것 같이 얘기하더니 막상 ‘책을 가지러 가겠다’고 하니 ‘안 된다’ 고 하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벼르고 벼르다가 이번에 한 질 구한 것이다. 아혼 권이나 되는 많은 양인지라 좁은 방에 둘 데가 없어 공중에 다가 선반으로 책꽂이를 해 달고는 진열해야 했다. 손재주라고는 젓가락질밖에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나로서는 톱질에다가 망치질까지 하고나니 삼 일 동안 몸살을 앓을 수밖에. 법보로 모셔놓기만 해도 좋았다. 책을 주려다가 마음이 변해버린 그 도반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고려대장경과 법보전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세세생생 전할까 하는 것은 입멸 뒤부터 교단의 화두였다. 그래서 결집이라는 형태를 통하여 한곳으로 모았고 나중에는 문자로 기록을 하게 되었다. 나뭇잎에다가 새긴 패엽경이 최초의 경전 형태일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 건너오면서 영원한 보전을 위하여 돌에다가 경전을 새겼다. 그것이 석경石經이다. 방산석굴房山石屈에 보관되어 있는 석경이 유명하다. 그러나 보관만으로는 법을 널리 펼 수는 없다. 적극적인 입장에서 유포까지 염두에 두어야한다. 책으로 묶을 수 있는 활지본을 생각해냈다. 원목을 바닷물에 담구어 나무의 진을 빼고 나서 그늘에 충분히 말린 다음 필요한 크기로 켠다. 그 다음 한 자한 자 정성스럽게 새긴다. 글자 하나를 새길 때마다 큰절을 올렸다. 글자를 다 새기고는 옻칠을 하였다. 부식을 막아 오래도록 보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영원히 우리 후손에게 전해지길 발원하면서 정교하게 지어진 장경각에 서가를 만들어 차곡차곡 한 장씩 세워 놓았다. 뒷날 틀어지지 않게 모서리를 구리판으로 처리하는 수고로움이 더해졌다. 경판은 책을 제대로 만들어야 빛을 내게 된다. 먹물을 바르고 한지를 덮은 뒤에 솜방망이-정식 이름은 마력-로 문질러 한 장씩 찍어내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황색의 표지를 붙이고 밀랍을 먹인 실로 묶으면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부처님의 법음이 온누리에 퍼지기를 기도하면서 배포하였다. 그리고 대장경은 그 자체가 삼보의 하나인 법보이다. 신앙의 대상으로 귀의처인 동시에 기도처이기도 하다. 늘 기도 소리가 끊어지 않는 보궁인 법보전은 많은 수행자들의 가피처인 동시에 득력처이기도 하다. 천일기도의 영험담은 여러 스님들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이면 곧잘 거기에 들르곤 했었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판전을 한바퀴 돌아서 내려오곤 했다. 선인들의 지극한 정성과 발원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나를 반조해 보는 시간을 가졌던 곳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칠백년이 지난 오늘까지 오롯하게 닿아 온다. 아울러 인도에까지 가서 경전을 구해와 이를 한문으로 번역한 구법승의 체취도 함께 묻어난다. 그러한 뼈를 깎는 피땀이 있었기에 오늘 검은 표지의 두툼한 고려대장경을 뒤지는 교학자들의 손끝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

경판이 빨래판으로 불리다
송광사 법정스님은 젊은 시절을 해인사에서 보냈다.
자주 장경각을 들르신 모양l다. 하루는 참배를 마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보실님과 마주쳤다.
“스님 팔만대장경이 어디에 있어요”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더니 장경각에서 팔만대장경을 찾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입니다.”
“그 빨래판같이 생긴 것 말이예요.”
고려대장경을 새길 때는 힌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다. 그때는 한문밖에 없었다. 그때로서는 한문이 일상적인 글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오늘 한문이 새겨진 대장경이 보통사람의 눈에는 빨래판으로 비치는 충격적인 일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경전의 한글 번역을 발원하고 그 때 역경원장이던 운허스님을 도와 한글 대장경의 간행에 ‘약간의 손을 보탰노라‘ 고 술회하고 있다. 그런 노력들이 합쳐져서 대장경의 한글화 작업도 이제 거의 마무리를 향해서 가고 있다. 더욱이 고려대장경 자체의 전산화 작업도 병행하는 등 경전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구법求法의 노력들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장경은 선인들의 피와 땀이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펴신 지 이천오백 년이 지난 오늘, 이 이역만리의 땅에서도 그 가르침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많은 선지식들의 피와 땀 그리고 때로는 목숨을 건 치열한 구도정신이 함께 어우러졌기 때문에다. 그러한 선인의 행적과 정성을 한번 되돌아봄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발심을 날로 새롭게 하고 신심을 더욱 돋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