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수행이 뭣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김대광 1992년 09월 127호
방학이 되어도 부처님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하려는 한국대학생불교 연합회(대불련) 불제자들. 도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 그리고 불교에 대한 드높은 신심을 다지고자 전국의 젊은 불자들이 한곳에 모여든다.
이름하여 ‘한국불교 1600년 대회’가 그것이다.
1970년대에는 개인 수행 중심의 수련대회가 ‘화랑대회’라는 이름으로 일곱차례 열리다가 1982년부터 ‘한국불교 1600년 대회(이하 여름대회)’로 바뀌면서 형식과 내용에 변화가 있었다.
민족 중흥이 곧 불교 중흥이라는 인식 아래 젊은 불자가 한국 불교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함을 깨닫고, 또한 대승불교가 펼치는 가르침인 ‘상구보리하화중생’ 이념을 바탕으로 진리를 구하는 것과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둘이 아닌 완전한 하나임을 확인하고, 개인 수행과 함께 대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으로 대회의 형식과 내용을 전환하여 출발한 여름대회가 벌써 십일 년째 되었다.
이번 십일차 여름대회는 작년에도 진행되었던 불교성지 순례, 역사기행, 교육 들이 실시되었고 광주불자들과 함께 하는 포교 대회와 문화제가 성대히 개최되었다.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사박 오일 동안 광주 전남대와 조선대에서 치뤄진 이번 대회에서는 대불련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서 한곳에 모여 대불련인의 숨은 역량을 맘껏 발휘했다. 대회에 참가한 법우들은 우물에서 바다로 나온 개구리 마냥 다른 활동 공간에서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느라 웃음꽃이 한창이었다.
이번 대회가 광주에서 개최되는 만큼 80년대 당시의 시대적 고통을 함께 하고, 이를 치유하려는 약사여래불의 모습, 그리고 불교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호남불교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대불련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둘째날에는 미륵사상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친구, 우정, 친절의 뜻을 가진 mitra라는 미륵의 어원이나, 당시 인도 사회에서 인간고의 극복을 열망하던 민중의 생활들을 배우면서, 정토를 일구어 낼 도반에 대한 믿음과 미래불 출현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또한 천불천탑의 사찰인 운주사를 순례하여 화려하진 않지만 순박하고 소박한 미륵불에서 미륵불 출현을 염원하던 중생에 대해 진한 애정을 느꼈다.
미륵불 출현을 염원하는 민중의 함성은 망월동을 참배하면서도 들을 수 있었다.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 간 광주 시민의 숨결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망월동에서,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며 인간 구원의 자비를 몸소 실천한 선배 열사의 정신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셋째날에는 무등산을 등반하였다. 무등산은 화려하거나 수려하지도 않아서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일등도 이등도 아닌 불법 무등의 경지라고 하던가. 모두 함께, 무등산을 오르며 불국토가 무등산 정상에 있다는 믿음으로 지쳐 쓰러진 법우의 몸을 일으켜 주고 이마에 맺힌 옥구슬 같은 땀방울을 닦아주며 힘겹게 오른 정상에서 우리는 해탈(?)의 기쁨을 느꼈다.
이윽고 장엄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통일기원 탑쌓기... 정근과 함께 자신의 발로 무등산 정상을 다지면서 우리들 숨결이 고동침을 옮기는 발걸음마다 새겼다.
마지막으로 전국에서 가져온 흙과 돌에 민족통일의 기원을 새기며 합토식을 가졌다.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된 세상이 바로 우리 불국토임을 알기에 우리의 기원도 어느때 못지않게 드높았다. 법우들 손에는 다른 법우의 손이 굳게 맞잡혀 있었고, 어느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무등산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번 여름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써서 계획한 것이 포교대회였다. 지금까지 불교 모습이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이고,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분우기였던 것이 포교의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불교도 개신교와 같이 도심에 나와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면서 적극적으로 포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와 반대로 아직 불교는 그런 요란한 짓(?)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 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또한 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심 포교당 형태도 법회를 중심으로 한 틀 이외는 없고, 그것도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져서 포교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대학생 불자들이 갖는 활동성과 기백, 그리고 임전무퇴 정신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포교대회는 광주시민공원에서 포교 선언식을 갖고,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에서 가두 포교를 벌인 뒤 다시 공원에서 회향하는 순서를 가졌다.
광주신도회와 사암연합회 스님들, 그리고 대불련 법우들. 부처님의 정법을 광주 시민에게 전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푹푹 찌는 여름 햇살도 꺾지는 못했다.
“전법하러 떠나가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현현키 위해서 “자! 이제 우리 모두 떠납시다! 저 고통받는 중생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라는 포교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가두 포교의 시작을 알리는 문화패의 풍물 소리가 힘차게 울리는 가운데 우리는 도심으로 나갔다.
저 부루나 존자의 눈빛과 같은 불자의 발걸음은 힘차 보였고, 열렬한 전법의 의지를 가지고 시민과 만났다는 희열로 가득 찼다.
찬불가조, 오체투지조, 목탁․사경조, 선전조, 연등조 들로 이루어진 포교단은 미리 배치된 도심 곳곳으로 옮겨갔다. 찬불가조는 충장로에, 목탁․사경조는 원각사 앞에, 오체투지는 두 조로 나누어 금남로와 충장로에, 연꽃조는 가든 백화점에, 그리고 그밖에도 곳곳에 선전조가 배치됐다.
찬불가조는 대불련 문화부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서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았고, 연등조는 코흘리개 어린이부터 나이든 할아버지까지 참여하여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지나가던 시민이 더운데 수고한다고 음료수를 건네줄 때는 신심이 절로 나서 연잎 접는 손길이 바빠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광주시민을 놀라게 했던 것은 오체투지였다. 원각사에서 출발하여 금남로에 이르는 조와 충장로에 이르는 다른 법우들 이백여 명의 모습은 진지함을 넘어서 무엇인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모습이어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가던 발걸음도 멈춘 채 대열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기도 했다.
원각사 앞의 목탁․사경조도 엄숙한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우리 서원이 담긴 발원문을 새기는 과정에 스님도 학생불자와 함께 동참하여 이룬 광경은 그 동안 멀게만 느꼈던 재가와 승가가 혼연일치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소극적인 전법 태도를 벗어나 저자거리에서 뭇대중들을 만나 부처님 정법을 전하겠다는 적극적인 포교 방법은 불자라면 누구나 본받아야할 모범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준비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진행이 좀 서툴렀지만 사부대중이 한데 어우러진 뜻깊은 대회였음을 자부한다.
저녁에는 광주 시민과 한판 어우러진 문화제와 대동놀이를 가졌다. 문화제 시작을 알리는 법고화 함께 각 지역에서 준비한 연등무, 찬불가, 음악 공연이 있었다. 이부에는 불제자로서 참된 삶과 현실 고의 해결 방안을 내용으로 하는 집체극이 있었다.
처음 기획했던 것에 견주어서 시민의 참여가 부족하여 대학생 중심 행사로 끝난 아쉬움이 있었지만 대회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대회 마지막 날 밤에는 하늘로 치솟는 불꽃을 보면서 불제자로서 각오를 가슴속에 깊이 새겼다.
도반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신뢰 그리고 청년불자가 한판 어우러진 여름대회는 대불련이 삶과 사랑과 열정의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 불국토 건설을 위해 정진하자는 결의를 다지며 끝이 났다.
다섯 달 가량의 기획과 준비 과정에 비해 사박 오일의 여름대회는 금방 끝나고 말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우리는 수행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혼자만의 깨달음에만 집착하고, 노력하지도 않은 채 깨달음을 쉽게 얻고자 했던 그 동안의 수행태도를 가슴 깊이 반성했다. 부처님 법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뜨겁게 받아들이지 못한 지난날을 참회하기도 했다.
수행이란 신체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만이 아니고, 대중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모든 사람이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여 대중과 함께 하는 삶이 곧 수행이 아닐까 하는 화두를 몸소 체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