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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있는 곳에 자유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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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2년 09월 127호
“내 주변에 가난과 곰팡이 핀 한 조각 빵을 위한 싸움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에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겠는가. 내가 고상한 정서의 세계 속에서 생활하기 위하여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될 모든 것은, 제 손으로 보리밭을 경작하면서도 제 자식들에게 빵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빼앗아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모스크바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여 근위학교를 나와 출세를 보장받은 피터크 르포트킨(1842-1921)은 자신이 굳이 지리학자의 길을 가다가 돌연 혁명가로 변모하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다.
크로포트킨은 러시아 혁명에서 잘못된 정책을 질책하고 레닌을 규탄하였으며, 볼세비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혁명의 장송’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는 아나키스트의 풍운아로서 자본가의 예속에서 생산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노동조합 운동으로 생애를 마쳤다.
5마일을 뒤덮은 인파가 모인 그의 장례식 때 검은 깃발에 붉은색으로 쓴 ‘권력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는 표어가 지금 내 가슴에 섬짓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쪽에서는 밥이 넘치고 우유가 남아돌아 썩어 가는 이 세상에 대한 점잖치 못하고 거치른 얘기를 왜 이 해인의 칼럼에 적어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고상하기로 이름난 차의 성지 일지암에서 차 마시는 일이 잦은 내가 무엇하러 낯 간지럽게도 이런 서두를 꺼내는지 모르겠다.
“권력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
그렇다. 자본의 예속, 정치의 종속, 그 굴레에서 인간 해방을 이루려면 철저한 투쟁이 아니면 안 된다.
법과 권력의 울타리 안에는 자본가든 공산주의자든 명상가든 미로의 함정인 현실이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인가. 과연 출가한 승려들마저도 이 밥과 권력의 덫에서 과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일까.
출가 수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현상의 거대한 굴레로부터 환상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세계와 역사가 공함을 알아서 출격 장부의 자유를 얻기 위함이 아니던가.
“권력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
그런데 요즘 불교에는, “권력 있는 곳에 자유는 있다”는 현상이 더욱 팽배해 가고 하루하루 권력의 시녀요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있다. 어쩌자고 그런 것일까.
소문은 언제나 알맹이 없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지만, 대선을 앞둔 우리 종단의 행세가들은 정치 권력의 그물에 들어가지 못하면 앞날의 전도가 어두워지기나 하는 듯 쓸개도 없이 이단의 권력 앞에 끈을 대기에 동분 서주하며 이미 누구 앞에 줄서기를 했다고 하니, 아무리 불어난 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게 무슨 망신스런 추태인가.
그토록 탄압받던 조선 시대 우리 조사들이, 보리밥도 못 먹어 배를 웅크리면서도 투철한 불가의 지조를 지키며 위법 망구의 주장자를 서슬 푸르게 휘둘러댔던, 그 승가의 가풍은 어느 바람골로 사라져 버렸을까.
제 손으로 논과 밭을 갈아 제 자식들에게 풍요를 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밥을 얻어먹는 우리 출가 수행자들이 무엇을 더 먹지 못해 탐욕과 이기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는가.
우리의 법을 베어먹는 이단의 권좌 앞에 두 손을 비벼대는 이 현실이 제발 소문의 바람결로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런 혼동과 가치의 전도 속에서 우리 불교가 거듭나려면 새로운 출가 정신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세상에 갖고 있는 것 하나 없어도, 기댈 권력 하나 없어도 색성향미촉법 속의 자유를 얻는 심무가애心無罣碍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걸릴 고통 하나 없고 두려움 또한 없는 자유 자재하는 출격 장부가 사는 도량이 되게 하자.
“권력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는 그 가증스러운 자들에게 두려움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무애를 보여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