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관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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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장채향
1992년 09월 127호
어느 날 저녁 문득 새롭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더위에 지친 오관五官이, 시든 풀잎이 단비에 살아나듯 생기를 되찾는다. 이 가을이면 풀풀 떠가는 오관을 부여잡고 저 깊은 고뇌의 늪을 가늠하는 것도 좋다. 고苦 희열, 고통, 행복감, 불쾌감. 이들 미세한 그림자는 떠도는 영혼에 무기無記로 되어 늘 같은 부피로 있지만 우리는 고통만을 여의고자 한다. 무아無我 너와 내가, 주체와 객체가, 고통과 희열이 하나 되는 자리. 그 일치의 순간을 만드는 일은 치열한 객관화가 우선 필요하지 싶다. 자연과 사람의 간격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아름다운 하나로 만드는 일을 하는 분이 있다. 관조觀照스님 말이나 글로 다 새기지 못하는 자연의 깊고 내밀한 모습을 가장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작업을 운명처럼 여기는 스님이시다. 지혜로 비추어 보는 뜻이라도 좋고,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본다 하여도 좋을 듯한 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한다. 렌즈를 통해 열려 있는 스님을 뵈었다.
퍽퍽퍽... 검푸른 바다에 포말이 일듯이 다완 가득 말차의 거품을 내며 스님은 우릴 맞는다. “생활이 너무 드러나 취재할 것이 뭐 있느냐.”고 되물으시며 유명한(?) 스님답지 않게 하얀 치아를 모두 드러내고 웃으시는 모습이 소탈하여 좋다. 축축한 바깥 날씨에 한여름에도 군불을 지핀 스님의 방은 절간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그런 내음을 풍긴다. 범어사 왼편 요사채 끝방, 언뜻 보기엔 다른 방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하나 둘 눈여겨 살펴보면 주인의 손길에 조화를 이룬 세계가 있다. 발 사이로 내다보이는 낮은 담과 작은 숲들, 그리고 개울물과 장대 빗소리는 차맛을 더욱 진하게 하고, 이것저것 되는대로 쌓여 있는 방에는 족자가 몇 점 걸려 있는가 하면, 검은 바윗돌에 이끼가 무늬져 있고, 높은 산의 작은 꽃들도 있고, 푸른 바다에 가슴을 내놓은 연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다. 렌즈에 비치는 점들... 그들이 어우러진 형상, 스님은 그 이상을 보지 않는다. 그 이하도 보지 않는다. 단지 점은 점이기를 바랄 뿐. 스님의 사진들은 절 안팎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어느 사진보다 단연 두드러진다. 흐드러진 자연의 풍경이나, 인생 행로가 웅장하고 신비로움이 아닌, 마음이 빚어낸 지극한 신심의 형체를 담고 있기에 많은 얘깃거리가 숨어있다. 갓 절에 들어와 속티가 벗어지지 않은 햇중의 환한 모습이, 머리를 깎으며 침통해 있는 여느 비구니 스님의 사연 있는 얼굴, 긴긴 얘기를 들려주는 절간의 담장과 장독들, 축구를 하다 공과 더불어 하늘로 올라간 검정 고무신, 백척간두에 선 듯한 수행승, 간절하게 부처님전에 드리는 예불의 모습. 그 얘깃거리가 세권의 책자로 엮어져 세간에서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반인에게 승가 생활을 엿보게 하고, 멀리 나가 있는 교포들에겐 한국인이기를 자랑스럽게 할 뿐 아니라, 포교 책자마다 인물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책자를 베끼고 또 베껴 퇴색이 되어 버린 사진이다. 그렇게라도 활용되는 게 기쁘다. “우리의 것을 못 지켜서 큰일이야. 작년에 찍은 절이 해가 바뀌면 달라지고, 절 집안 전통 의례도 점차 사라지고, 스님네의 풋풋한 옷차림도 바뀌고 있어요.” 새로운 풍속에 밀려 옛 모습의 정취 있던 아름다움이 차츰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얘기하시며 우리의 본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신다. 다비식, 대중방, 인물사진... 그야말로 연애하는 것만 빼고 다 담아 놓은 필름들은 바다 건너 이국인들에겐 가장 토속적이고 이색적이라 해외 전시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침 우리 은사스님(지효) 다비식을 찍어 이를 전시했는데 그들 눈에 독특했나 봅니다.” 미국의 동양 사상연구소에서는 동그레진 눈으로 자료를 수집해 가 이삼 년 뒤면 좋은 책이 나올 예정이다. “요즘은 관심의 대상이 조금 바뀌었죠. 시멘트 문화가 가져온 급격한 변모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서 새로운 운동의 하나로 이런 것들을 찍습니다.” 스님이 내민 필름에는 어렵게 사는 것들, 다시 말해 넝쿨이며 돌틈에 사는 풀들, 작지만 귀중한 것들, 끈질긴 생명력과 더불어 어우러진 삶들이 담겨 있다. 결코 편안하지 않은 삶들이 생생히 살아 있는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눈을 드니 처마밑에서 천천히 낙수물이 떨어진다.
독일의 학자 융은, 인간의 내면 세계는 스크린과 같다고 했다. 마음이 짓는 대로 마구 그려 놓은 영상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가상의 그림을 보고 있는 객석의 나를 찾으라고 했다. 현란하게 비쳐진 그림들은 모두가 참이 아니니 그들을 지우면 깨끗한 스크린을 보고 있는 나를 본다고 했다. 스님이 바라보는 렌즈 밖의 세계, 어느 것이 참이고 거짓인지 밝히는 작업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유학자 집안에서 출가하여 해인 강원의 강주를 맡으시고 화엄경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하던 학승이 돌연 변신을 하여, 가장 속일 수 없는 현상을 보여주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만 해도 ‘사진 예술’이란 단어조차 정착되지 않은 시절, 사진기를 다룬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로 했다고 한다. “사진기를 메고 다니는 것은 한량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니 중이 되어 오죽하겠어. 도반들의 질책이 가슴 아팠지.” 그 모두가 갈등의 극복 시기를 거쳐서 온 자리다. “강원에 남아 있었으면 대강백이라도 되었을 텐데 카메라 때문에 망쳤지. 아마 도를 이렇게 열심히 닦았으면 뭐가 되어도 됐을 텐데” 하고 웃으시지만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에 꼭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 할 뿐, 이론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순전히 실전 경험에서 터득한 독학파이다. “난 사진에 소질이 있다거나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노력으로 했습니다.” 도道란 어디에도 있다고 했다. 우리들 생황 안에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오직 ‘일도매진’하면 오근이 열려 사물의 본질을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스님은 사진 예술 속에서 그런 것을 맛보려 하는지 궁금했다. “난 예술의 극치가 따로이 나온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 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봐요. 밥을 위해 노력할 때가 가장 열심이고 또 빛난다고 보지. 그 유명한 화가들이 아마도 돈이 풍부했다면 그 그림에는 진실성이 결여됐을 거라고 봐요.” 스님은 사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주관적 관념이 스며들 틈이 없이 너무 솔직하다. 무엇인가 신비한 것에 관심을 갖는 우리의 갈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학 한 마리 찍으려고 논두렁에 종일을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어야 하는 인내. 이를 스님은 자신의 정진으로 삼았다. ‘기교도 필요없이 정직하게 사상事像을 옮겨 보았다. 있는 그대로를, 산 그대로를 보여주되 형상을 떠난 심상心像을 표현해 주어 미래의 불자는 물론 그 누구라도 억지 추정을 말고 마음에 닿는 감동을 전해 줌으로써 불법과 인연을 맺게 하고 싶다. 그것은 나대로의 고행의 한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그의 사진첩에 술회하고 있다. 사진가 관조이기 전에 부처님 제자임을 잊을 수가 없기에 공동체 집단 가운데 가장 이상적이라는 상가에 들어왔고 그들이 모여 도를 닦아 가는 집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 모습 구석구석을 찍기 시작한 관조스님. 좋은 장면을 일부러 찍으러 가는 일은 없고 가는 길에 찍을 뿐이라는 사진 찍는 일은 한동안 스님에겐 인고의 세월이라 스님이 학승이란 사실을 묻어 버렸다.
사람끼리 모여 사는 사회라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지만 요즘은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아 자꾸 문제가 일어난다며 세상 사는 얘기로 돌아간다. 삶의 얘기가 곧 스님의 얘기요. 우리 예술의 시발점인 줄 왜 모를까만. “법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게 잘못이라고 하시는 스님. 철저히 객관적인 작업을 하는 데서 얻은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맘대로 주체할 수 없는데 밖의 현상이야 당연 지사다. 아직도 상량문을 짓고 비문을 지어 주는 일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상량문이나 비문을 지어 달라고 하면 한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유달리 잘 짓기 때문도 아니고, 또 명예욕 때문도 아닙니다. 요즘 법도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지어지고 있는 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류가 범해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스님이라도 전통이라는 굴레를 낡은 퇴습이 아니라면 지켜야 하기에 사양하는 적이 없다. 가만히 하루만 옆에서 지켜보면 사진가로서가 아니라 스님으로서 관조觀照라는 법명과 만나게 된다. 사진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부처님의 사상에 경배하고, 조금이라도 승사僧事가 법도에 어긋나는 일에 분노한다. “난 암자가 큰절에 소속되지 않고 따로이 운영되는 것이 마음에 안 듭니다.” 큰절을 맡으셨던 주지 스님이 임기가 다하여 암자에 머무르며 독자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이 못마땅하다. 암자는 큰절에서 살림을 타쓰게 마련이지만 큰절 신도를 분산시키는 것은 질서의 파괴 같은 느낌이 들어 싫으신 모양이다. 절을 찾는 게 아니라 스님 따라다니는 신자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스님은 지금부터 서른두 해 전에 범어사 지효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잠시 해인사에 머문 것을 제외하면 법납의 대부분을 범어사에서 카메라와 더불어 보냈다. 산문에서 정신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의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보는 일을 수행하지만 스님은 그 모든 일을 렌즈를 통해서 한다. 그 문이 바로 스님에겐 불이문不二門인지도 모르겠다. 이 일에도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야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일까? 금정산金井山계곡은 불어난 물로 수려한 협곡을 이룬다. 조그만 길도 작은 도량이 되고 싱싱한 나무에선 등걸 썩는 냄새가 난다. ”찰깍“ 내 스크린에 잡힌 영상들, 거기선 싱싱한 풀내음보다 더한 법향法香이 더불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