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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세 생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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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땅 좋은 벗 - 안혜령 1999년 06월 208호
앞뒤로 첩첩한 산들이 고산 준령은 아니건만 한 구비 돌아들 적마다 앞산의 푸르름이 깊어지는 산중이었다. 참나무, 갈매나무, 늠름하고 희고 붉은 꽃 피운 병꽃나무가 풍성한 산길이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감자밭 보며 “감자바위” 곱씹는 중에 만난 찰랑찰랑 물 고인 다랑이 논이 뜻밖이긴 했지만.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 산과 물이 걷는 산골인 새골에 자리잡은 홀로세 생태학교. 돌투성이 산길 자동차 안전하게 모시느라 애쓴 끝에 다다르면 “HOLOCE PARK”라 쓰인 목간판 높이 이고 나무기둥 두개가 섰다. 그 대문 옆 입간판에 이곳 새골의 대표적인 자연물로서 학교캐릭터로 삼아 그려 넣은 꼬리명주나비가 인상적이다. 인사를 나눈 뒤 주인 이강운 소장이 힘주어 말한다. “사실 길이 더 험해야 돼요.”
민망하지만 옳은 밀이렷다. 포장만 되었다 하면 “길 잘 뚫렸다”며 벌고 들어올 자동차물결에 생태학교의 주위 환경이 온전히 남아나기 힘들 터. 그는 삼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새골 입구에 주차장을 만들어 차는 모두 세우고 짐은 트럭에 실어 나르되 사람은 걸어오게끔 궁리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곧잘 즐겁게 걸어 오가는 길이다.

흘로세 생태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교육장으로, 말 그대로 생태교육을 하는 일종의 주말학교다. 지난해 7월에 문을 열었으며, 주말이면 도시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 모여 자연 생태 공부를 한다. 방학이면 6박7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겨울방학에는 철새 탐사를 떠나기도 한다.
딱이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다. 놀이가 곧 공부여서 아이들은 포충망 하나씩 들고 들로 산으로 마음껏 쏘다니며 나비와 잠자리 잡고, 개울에서 가재며 민물고기와 어울려 물장난 친다. 나뭇잎과 풀잎에 붙은 온갖 벌레를 관찰하며, 여렷이 모여 관찰 일지를 쓴다. 만오천 평 생태학교와 학교를 둘러싼 새골의 산과 들이 모두 생생한 자연 학습장일 뿐더러 신나는 놀이터인 셈이다.
이강운 소장이 이 학교를 세운 것은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를 알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생태학교 안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자기 유지를 할 수 있는 소생태계를 조성하여” 아이들이 “각 생명체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생태를 정확히 알고”, 이로써 “자연 환경 보전에 관한 기초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가 새골을 점찍은 까닭이 었다. 강원도라지만 기후며 온도가 경기 북부 지방과 같고, 한반도의 중간지대로서 식물이며 곤충의 종이 굉장히 다양한 곳이라 한다. 새골이 자리한 해발 사백에서 사백오십 미터란 무슨 작물이라도 경작할 수 있는 지대라 하니, 들어오는 길에 만났던 다랑이 논이 그제사 이해가 간다.
또한 물이 맑으며, 분지로서 겨울이면 영하 23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해가 뜨면 금방 따뜻해지는 기후도 다양한 생물체들이 둥지틀기에 적합한 조건이라 하겠다.
“홀로세”란 학술용어로서, 크게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뉘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빙하기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이르는 시기인 신생대 4기를 뜻하는 말이라 한다.
학술용어 앞세워 이름지었듯, 흘로세 생태학교는 생태계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연 탐구에 중점을 두며, 시설물들 또한 전문적이며 과학적으로 설계되고 지어졌다.
흘로세 생태학교는 크게 몇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우천 이강운 소장과 식구들이 사는 살림집이 있고, 아마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을 산호랑나비 모양을 본떠 만든 집이 또 한 채 있다. 한켠에 식구들이 일구는 텃밭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농삿일을 경험하게도 한다.
생태학교 입구의 “식물나라”는 다양한 초본류와 관목들이 집중적으로 모인 곳으로, 이 이곳에는 종을 보존해야 할 식물들을 심는다는 계획에 따라 뿌리내린 야생화 150여 종과 함께 갖가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살림집 뒤로는 이강운 소장이 고심끝에 만든 원형의 UFO 나비집, 잠자리마을, 생태연구관을 포함한 작은 피라미드 케이지들, 야외 학습장과 풍뎅이 교육센터 들이 언덕을 따라 세워졌다.
집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 언덕 위로는 딱정벌레를 위한 거대한 피라미드 케이지가 세워졌으며, 뒷 산꼭대기에는 앞으로 천문대 시설을 마련하려 한다.
이런 여러 시설들에 나비며 잠자리들이 알을 낳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먹이가 될 식물을 심어 소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자연 환경을 최대한 온전히 살리기 위해 모든 시설물은 벽과 담을 쌓는 대신 망으로 덮어 씌웠으며, 나비집은 지름이 이십미터쯤 되는 둥근 도우넛 모양이 독특하다.
생태연구관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밝혀지지 않은 곤충의 종을 밝혀내려고 이강운 소장이 이용하며, 작은 피라미드 케이지 하나는 아이들의 과학연구 활동을 위해 쓰는 곳으로, 아이들 스스로 곤충들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관찰일지를 쓰며 관리하고있다.
풍댕이 모양으로 지어진 교육센터에는 오디오와 비디오 및 필요한 책들을 갖추어 놓았으며, 아이들이 채집한 나비 표본 상자 팔십 개 정도가 진열되어 있다. 또한 이 곳에서는 하늘소, 풍뎅이 같은 다양한 딱정벌레들과 대형 나비류를 관찰할 수 있으며, 환경 오염에 민감한 균류와 이끼를 따로 떼어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런 시설물뿐이랴. 홀로세 생태학교 전체가 생태의 보고인즉, 물용선이며 창포, 부들, 생이가래, 개구리밥 같은 수생식물이 즐비한 연못은 물방개, 물장구, 개아재비 같은 수서 곤충들의 집합처며, 개울에는 가재와 버들치니 갈견니, 돌고기라 하는 민물고기 들이 모여든다.
낮이면 어치와 곤줄박이, 박새가 날아들고, 개구리 소리 요란한 밤이면 반딧불이 세상이 되며, 심지어 야외 학습장의 초가지붕 조차 굼벵이의 겨울잠을 위한 안식처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사람이 차치하는 비율은 고작 일, 이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주류를 이루는 것은 곤충으로 놀랍게도 칠십 퍼센트를 넘으며 그 종류만도 구십만 종이 넘는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다른 생명체의 삶에 관여하는 바, 오늘날 생태 위기란 사람이 자연 질서안에서의 제 자리를 벗어나 다른 생명체를 지배하려 듬으로써 빚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생태학교의 교육이 현실적으로는 허약한 우리나라 기초 과학의 뿌리를 다지는 일이며, 궁극으로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외경심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여긴다. 스스로 자·연 보호니 환경 보전이니 한 번도 입 밖에 꺼낸 적은 없지만, 짝짓기로 부터 알을 낳고, 애벌레가 되었다가 온전한 나비로 자라나 죽기까지 그 일생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은 생명체들 사이의 공생과 상생의 관계를 절로 깨닫게 되며, 들꽃 한 송이, 날별레 한 마리조차 자연 질서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당당하고 귀한 존재임을 깨우친다.
역사를 전공한 그가 자연과 생태에 관한 관심과 지식을 갖추게 된 것은 직업 덕택이었다. 동아일보 문화기획부에 근무하던 그는 전국 자연 생태계 학습 탐사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팔 년 동안 탐사 단장을 맡았다. 일 년에 두 번, 분야별 전공 교수들의 지도를 받으며 중고등학교 과학 교사들을 인솔하고 생태 탐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 덕에 식물, 곤충, 지질, 조류, 민물고기를 포함한 생태계의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두루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쌓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해마다 두세 달은 생태학이나 환경 부문에서 우리보다 한층 앞선 유럽 등지로 출장을 가 전문 지식과 실천 사례들을 공부했다. 참으로 그처럼 “복 받고 운 좋은 사람이 없었다.” 그 시절에 그는 자연 보전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한편 그 중요성에 비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생태 교육의 현실에 눈떴으니, 그 때부터 생태학교는 그의 꿈이 되었다.
97년 1월에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갔다. 여섯 달 동안 동식물원이며 자연학습원 들을 두루 답사하고 전문 자료들을 모으며, 생태학교에 대한 구상을 하고는 돌아와 그 해 10월에 부인과 두 이어 이끌고 새골로 들어왔다.
전기며 전화는 커녕 네 식구 누워 잘 집조차 변변치 못한 중에도 그는 학교 시설과 서식화 작업에 골몰했다. 서식화 작업이란 생명체들이 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을 말한다. 예컨대 같은 나비라도 제비나비는 자귀를,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 덩굴을 좋아하며, 애호랑나비는 족두리풀을 주먹이로 삼듯, 저마다 입맛이 다르고 생활 조건이 틀린 다양한 곤충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갖가지 풀과 나무를 심고 있으니, 그가 이제까지 심은 나무가 삼천 주가 넘는다.
거의 십 년 넘게 머릿 속에 그려오던 일이었으니 만큼 정작 시설물을 짓는 데에는 석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주위 사립들을 놀라게 했으나, 서식화 작업은 그렇지 못했다. 삼 년을 예상했던 계획을 이즈음 접었으니, 그 일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해주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인과 두 아이의 열렬한 지지가 그에게는 가장 큰 힘일 터이다. 아이들 학교 빼먹으면서까지 조류 탐사다 갯벌 탐사다 하면서 가족 여행을 많이 했던 것이 큰 공부인 동시에 새골로 들어오는 준비 과정이었던 셈이라 하겠다. 몸 편한 도시 생활 버리고 구차한 산골 택한 것을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으며, 간호원 출신인 부인 김정옥 씨는 표본 제작과 식물 생태 교육을 맡는 한편, 생태학교를 찾는 회원들 뒷바라지를 도맡는다.
중학생인 동재와 초동학생 가명이 또한 채집에 나서는 아이들 길잡이 노릇은 물론이요, 아버지로부터 평소에 보고 배운 과학 지식들로 아이들을 돕기도 한다. 다래, 하늘, 찔레, 반디, 버들의 아름다운 이름 가진 다섯마리 개들도 생태학교 식구로서 아이들의 정다운 벗이 되어 준다.
집 주위에서 채집한 애벌레 두 마리의 정체가 궁금하여 어렵사리 구한 인기가수 콘서트표까지 버리고 올 만큼 아이들이 열성적이거니와 아이들 가르치는 이강운 소장의 정성도 지극하다. 강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곤충분류에 관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강운 소장은 자신이 배우는 바를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옮겨 주고 있어서, 아이들로서는 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전문 지식을 산 경험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린다.
요즘 훌로세 생태학교에 큰 고민이 생겼다. 이웃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생태학교로 흘러 드는 개울위쪽에 보를 만든다고 나선 것이다. 규모도 큰지라 그 시멘트 독으로 개울과 개울물 끌어쓰는 연못의 생명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할 판이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몽땅 파괴될 터이니,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설득도 해 보고 다른 대안도 제시했지만 막무가내라 그저 애만 태우고 있다.
농약 쏟아붓는 농업 행태만큼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강운 소장이 분개하는 바다. 아니, 우리의 삶 전체가 “목에 칼어 들어왔는데도 그게 칼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임에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극단적”인 환경론자는 아니어서, 단 일 퍼센트일지라도 사람도 지구 생태계의 일원인 만큼 살 권리가 있으며, 어느 정도의 개발은 불가피하다고 믿는다. 단 다를 생명체를 대함이 지금처럼 함부로 막된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무지를 벗어나는 길은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라고 믿는다.
생태 다리 만든다고 무작정 산허리를 탱강 자를 것이 아니라, 그 산의 녹색축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사람에게는 한 걸음인 삼 미터짜리 포장도로도 개미에게는 태평양 못지 않은 망망대해일 터인즉, 주변 생태계에 대한 분야별 전문가들의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개발”이 그의 생각일진대, 과연 개발과 효율 앞세우는 경제 논리를 이겨낼까 염려스러운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로서는 “미쳐서 하는 일”이다. 그의 마음이 “자연에 대한 외경심”으로 충만할진대, 꾸준히 하다 보면 바라는 대로 흘로세 생태학교가 개발과 보전이 서로 부딪치지 않는 모범적인 사례로 자리 잡으리라. 그 때쯤에는 새골 맑은 개울에 자가 발전용 물레방아가 돌고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