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허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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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문구
1998년 01월 191호
작가라는 직업이 애당초 경제성이 없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어음이나 채권이니 증권이니 당좌수표니 양도성 예금증서니 하는 돈표를 써 보기는 고사하고 만져 본 적도 없었으니, 흑자 기업이 부도를 내게끔 하는 것이 전문 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 종합 금융사라는 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더욱이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도 국제통화기금(IMF)이란 말과 함께 풍미하는 경제 파탄, 경제 신탁, 경제 보호 조약, 국가 부도 위기, 국가 법정 관리 따위와 같은 흉악한 말과 더불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종금사 곧 종합금융사였다. 그래서 나름껏 공부를 하여 근근이 알았다는 것이 고작해야 종금사는 돈장사를 하는 데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즈음의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입이 발채만하다고 하더라도 그저 입다물고 국으로 있는 것이 옳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러고 있기도 쉽지가 않다.
언론이라는 것이 내동 뒷짐지고 구경 만하고 있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갑자기 나라가 금방 문에라도 닫게 된 양으로 야단법석을 떨어대니 내전 보살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인들 마냥 모르쇠로만 일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중소기업인은 부도 내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건만’ 운운하며 전직 경제관료들에게 은근히 스스로 히직하기를 권하는 무자비함마저 예사로 드러내기까지 하지 않는가.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전현직 경제관료들이 미운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부총리가 전임 경제부총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담화문을 발표한 다음 ‘책임지겠다’고 힘차게 말했다고 한들 무엇이 또 달라질 것인가.
말로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책임이 없다고 뻗대는 쪽보다 당장 듣기에는 나을는지 모르지만, 책임을 지마고 했으면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서 지겠다는 것인가. 예를 들어 98년도에 거두기로 했던 세금에서 삼조원을 더 거두겠다는 국민의 세금을 몽땅 자기의 사재로 대납하겠다는 것도 아닐 터이고, 종금사의 자금회수로 하루에도 육십여 개씩 쓰러지는 기업의 부도를 자기의 검은돈으로 막아 주겠다는 것도 아닐 터이고, 자기가 먼저 이백여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는 98년도의 새로운 실업자 전원에게 자기가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 주거나, 취업을 할 때까지 실직 수당을 아직 세탁하지 않은 자기의 비자금으로 지급하겠다는 것도 아닐 터이고, 도대체가 무슨 수단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책임을 안지겠다는 쪽의 말이나 책임을 지겠다는 쪽의 말이나 결국은 그말이 그말인 것이다.
경제적인 사안이 동장할 때마다 으레 해결의 열쇠는 오로지 이것뿐이라는 듯이 쳐들고 나서는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식의 근검 절약 운동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안 사고,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고, 안 보고, 안 하겠다는 말도 얼핏 듣기에는 기특하거나 갸륵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공장들은 공장들대로 재고품이 넘쳐나고 가게들은 가게들대로 때를 놓친 물건들로 미어지도록 해서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제조업은 제조업 대로 내수마저 부진하여 문을 닫고, 판매업은 판매업 대로 고객의 발걸음이 없어서 쉬고, 납품업은 납품업대로 주문이 줄어들어서 놀고, 유통업은 유통업 대로 물류가 끊기고, 건설업은 건설업 대로 건축자재가 바닥나서 일손을 놓게 하여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인가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사회운동도 허구일 경우가 많았다.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할 서민이라면 관례에 따라서, 또는 전례에 비추쳐서 대개는 문화례를 줄이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 순서였던 것이다. 그러am로 허리띠 졸라매기 운동은 일쑤 책 덜 사보기 운동, 연극, 영화 덜 감상하기 운동, 문화유산이나 역사유물 덜 찾아보기 운동과 다름 없이 되어 애매한 문화부문에 못할 노릇을 하기가 십상이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이십육, 철 년 전인가 경기도의 어느 두메에 야생의 반달곰 한마리가 나타나 길을 가던 부인네를 놀라게 하여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신문마다 뒤떠든 적이 있었다. 기사를 본 관할 경찰서장은 예비군들까지 동원하여 한나절 동안 수색을 한 끝에 반달곰을 발견하자 볼 것도 없이 총질을 하여 숫제 벌집을 만든 다음, 쓰러뜨린 반달곰을 둘러싸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신문들도 일제히 주민들의 걱정 덩어리였던 반달곰을 처치한 노고와 경찰 및 예비군들의 용감무상한 무용담을 특종으로 다루었음은 물론이다. 신문마다 걸핏하면 음정 미호천의 짝 잃은 황새를 안타까워하며 천연기념물에 대한 의식 전환을 역설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요즈음은 발자국으로 보아 지리산에 야생하는 반달곰이 다섯 마리 이상일 것이라느니, 여남은 마리는 되고도 남을 것이라느니 하면서 경쟁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문화비용이 근검 절약운동의 첫 번째 표적이 되는 까닭을 짐작할만하지 않은가 최근에 새마을운동 어느 도지부 회원 구십여만 명이 새마을회관을 짓기 위해 일 년 칠 개월 동안 십원짜리 동전모으기를 한끝에 이억오천삼백팔십만원을 모아서 뜻을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또 텔레비전에서도 보았다. 물론 미담 가화로써 보도를 한 것이었다. 십원짜리 동전 이억오천만원의 무게는 필십팔톤이며, 포대에 이억오천만원씩 담으니 한 포대의 무게가 팔십팔 킬로그램인데, 그네들이 모은 동전이 무려 일천 포대에 달했다는 것이었다.
십원찌리 동전을 새로 주조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삼십 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 처의 노인정을 중심으로 책상 서랍에서 잠자는 십원짜리 동전을 활용하자는 운동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새마을회관을 짓기 위해 모은 십원짜리 동전 이천오백개들이 일천 포대가 가만히 쌓여 있었던 일 년 칠개월 동안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개당 삼십 원씩 들여가면서 일천포대를 새로 주조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경제적인 경제 이야기인 셈이었지만 그러나 뜻밖에도 그것을 바로 집어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검 절약운동이라면 무턱대고 성역화해 온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반서민 대중까지 덮어놓고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선동하고 충동하는 짓도 이제는 그만둘 때가되지 않았을까. 경제가 이렇게 된 것이 국회에서 주는 밥값보다 기업에서 주는 떡값에 눈이 어두운 국회의원들의 정경유착에 있다는 것은 서민들어 더 잘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시람들을 뽑아 국회로 보낸 사람 역시 서민들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모두가 자업자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