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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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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2년 09월 127호
우리는 귀밑에 삭도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법도를 모른 채 수선을 핀다고 어른 스님께 늘상 야단을 들으며 배고픈 강당 시절을 지냈다. 삭도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마른 총림의 울창한 숲속에서 아직 갓자란 나무와 같은 사미승, 곧 풋중이라는 뜻이다.
보릿고개의 험난한 시절을 막 보내고 우리가 출가했던 시절. 그때만 해도 입산한 행자들의 덥수룩한 머리를 이 삭도로 삭발하였다.
필자가 남해 섬으로 입산 한 날 지금 총림의 부방장 스님이 직접 기왓장에 삭도를 쓱쓱 갈아 더벅머리를 밀어 주시며, 앞 골은 잘 생겼는데 뒷골이 죽어서 어디 끝까지 중노릇 잘하겠냐며 다짐을 받던 그 노을진 바닷가의 어스름이 꿈의 물결로 밀려오는 듯하다.
그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승당 뜨락으로 나섰는데, 메밀꽃 같은 작은 별들이 왜 그렇게 내 빈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던지. 머리를 아무리 쓰다듬어 보아도 손에 들어오는 것은 떨어진 별빛이 아니고 허전한 빡빡머리...그런 감흥 어린 체험은 출가한 사문이면 누구나 했을 터이다.
지금은 대개가 도루코 면도날이나 일회용 면도기로, 그것도 혼자서 삭발하는 풍습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지난 봄에 입적하신 자운 노스님께서 처음으로 버마에 가셨다가 학인들에게 사온 선물이 전기로 쓰는 머리 깎는 기계였다. 삭도로 빡빡 밀어버리면 승가의 불지 종사를 기르는 학인들 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디서 큰스님들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을까.
삭도가 사라지듯 승가의 얼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총림의 어느 나무에 기대어 천 년의 빛을 받아 낼 수 있을까.

자료제공, 온양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