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마마, 우리 신라도 이제는 고구려나 백제와 그 격(格)을 한가지로 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미 이태 전에 중국과는 다른 독자의 연호, 개국(開國)을 선포하는 동 저 대륙국에 대해서도 자주국임을 밝히지 않았읍니까?”
“그대들의 뜻을 잘 알겠소이다. 우리 신라가 처음 나라를 연 지 수백 년이 지났소. 그러나 모든 문물이나 제도를 정비하고 부족들의 연합체로부터 비로소 ‘국가’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 선왕(先王)과 짐에 의해서요.”
“예, 마마, 그렇사옵니다. 본디 신라는 고구려, 백제의 침입으로 인하여 많은 괴로움을 당해왔읍니다. 이제는 방어에만 급급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그러기 위해서도 국내적으로 마마와 왕실의 위엄을 드높여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란 말이오?”
“예, 우선 지금의 궁성(宮城)은 너무 협소하고 마마의 위엄을 드러내기에는 못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따라서 새로이 웅장한 궁을 축조함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그리하여, 진흥왕 14년(553년) 2월, 월성(月城)의 동쪽에 신궁(新宮)을 짓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뒤 얼마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마마, 지난번 하명 (下命)하신 대로 신궁을 짓고자 역사를 벌였사온대, 거기서 누런 용이 나타났다 하옵니다. 용은 원래 영물(靈物)인지라••• 어찌함이 좋을는지요?”
“그렇다면 궁(宮)을 짓는 대신에 대찰(大刹)을 이루어 나라를 보호하는 기도 도량이 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울러 그 절의 이름을 황룡사(黃龍寺)라 하라.”
2
그렇게 하여 황룡사가 완성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바다 남쪽에 큰 배 한 척이 파도에 밀려왔으니
“마마, 하곡현(河曲縣) 사포(絲浦)에 웬 낯선 배 한 척이 떠밀려왔다 하옵니다.”
“오, 그래 ? 그런데 ?”
“그 배 속에 부처상(像) 하나와 보살상 둘의 모형이 함께 있었사오며, 누런 철 오만칠천 근(斤)과 황금 삼만푼 가량이 있었다 합니다.”
“그 참 괴이한 일이로다. 이는 필시 우리 서라벌이 부처님의 가호를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일지라.”
진흥왕은 사자를 보내어 불보살상은 절을 지어서 모시게 하고, 누런 철과 황금은 서라벌로 가져오게 했다.
“대왕마마, 사포에 떠밀려온 배 속에 글이 있었기로 가지고 왔나이다.”
“그래 무엇이라 적혀 있는고?”
“스님들이 해독해 준 바로는 다음과 같사옵니다. ‘서천축의 왕 아쇼카(Asoka, 阿育王)는 누런 쇠삼만오천 근과 황금 삼만 푼을 모아서, 장차 석가모니 부처님의 존상 셋을 부어 만들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발원한다. 부디 인연 있는 국토로 가서 장육존상(丈六尊像)을 이루어주기 바란다’라는 내용이옵니다. 마마.”
“기쁘고 기쁜 일이로다. 그 아육왕(阿育王)이라면, 천축을 비로소 통일한 위대한 군주가 아니던가? 이제 우리 서라벌도 아육왕이 천축을 통일했듯이 삼한(三韓)을 하나로 해야 하리라. 또,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증거가 바로 여기 있지 아니한가?”
“대왕마마, 경하드리옵나이다. 모름지기 제일의 장인(匠人)으로 하여금 정성스럽게 모시도록 해야 할 줄 사뢰옵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 봉안(奉安)함이 좋겠소?”
“마마, 연전에 완성된 황룡사가 있지 아니합니까? 황룡사는 통한(統韓)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발원하는 호국의 대찰로 키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는 마마의 위엄을 더하는 일도 될 것이옵니다.”
“그것이 좋겠소. 정성스럽게 모셔서 황룡사에 봉안(奉安)토록 하시오.”
후대에 일연(一然)선사는 이렇게 찬(讀)했다.
티끌세상 그 어딘들 계실 곳 아니랴만
향화(香火)의 인연은 서라벌이 으뜸일세.
이것은 아육왕이 못한 것이 아니라
서라벌을 찾으려고 그랬네.
3
“저번에 불보살상과 황금 등을 보내온 그 인도의 왕 있지 않소?”
“예, 대왕마마.”
“그 아육왕이 서천축을 통일한 위대한 왕이라고 하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바이오만, 그에 대해 좀더 소상한 것을 알고 싶구려.”
“예. 아육왕이 천축을 통일한 위대한 임금이라 하옴은 단순히 그가 무력에 의한 힘의 위세를 떨친 임금이기 때문이 아니오라, 불법에 귀의하여 법〔佛法〕에 의한 정치를 펴서 백성들로부터 ‘전륜성왕’으로 칭송되는 줄 아뢰오며 …”
“전륜성왕, 전륜성왕이라?”
“예, 석가가 처음 탄생했을 때도 상(相)을 보는 선인이 와서 보고 이르기를, ‘출가하면 부처가 될 것이며 그렇지아니하여 집에 있으면 전륜성왕이될 것‘이라 했다 하옵니다.“
“석가께선 끝내 출가하여 부처가 되셨으니...“
“부처님 멸한 뒤 백 년이 지나서, 아육왕이 바로 전륜성왕이 되었다 합니다.“
“그 전륜성왕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보시오.“
“전륜성왕은 칠보를 갖추고 있으며, 건강하여 장수하며, 형색이 단정하며, 보배가 무궁무진하며, 금륜(金輪)과 동륜(銅輪)과 철륜(鐵輪)이라는 아들이 있고 사천하에서 모두가 항복해 온다 하옵니다.“
“하면, 아육왕의 뜻이 담긴 배가 우리 서라벌에 이른 것은 짐으로 하여금 전륜성왕이 되도록 자극하는 일이 아닌가? 이는 너무도 그 인연이 적합하도다.“
“예, 마마, 정녕 그러하옵니다.”
“왕자들을 각기 동륜(銅輪)과 금륜(金輪)이라 하리라.“
이처럼, 진흥왕 스스로 전륜성왕이라는 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지 육칠십년이 지난 선덕왕 5년(636년), 자장스님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을 때였다. 그때 문수보살이 했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으니,
“너희 나라 황룡사는 바로 석가와 가섭불(迦葉佛)이 강연하던 곳으로, 연좌석(宴坐石)이 아직도 있다. 또 너희 국왕은 바로 천축의 찰리종(Ksatriya)의 왕으로, 이미 부처의 수기를 받았으니 어찌 다른 나라 오랑캐들과 같을 수 있겠는가?“
왕이 곧 전륜성왕이라는 사상을 거쳐서 왕이 곧 부처〔王卽佛〕라는 사상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4
“자네 알고 있는가? 우리 임금님 이야기 말일세“
“임금님 이야기라니?”
“글세, 임금님께서 그 아들 금륜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홍륜사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셨다네.“
“그야 소문을 들어 알고 있네만, 그게 사실인지...”
“그럼, 사실이잖고? 내가 홍륜사 앞에 살지 않는가?“
“흥, 무슨 천축의 왕을 흉내내어 전륜성왕이라고,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일세. 아들 이름이 금륜, 동륜이라 하고 늙으막에 절에 가 염불한다고 전륜성왕이 되는가 어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미 북한산까지 우리 영토가 넓어지지 않았나? 이제는 고구려, 백제 다 겁낼 것도 없어질 만큼 국력이 강성하질않나?“
“힘으로,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정복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면서 전륜성왕이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되지. 아육왕은 칼이 아닌 불법(佛法)으로 하여 천하가 감복하였다고 들었네. 그런데...“
“그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누가 들을라. 정복이 아니라 통한(統韓)의 대업이 아닌가? 무력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통한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니까 전륜성왕은 아니지 않나. 그냥 왕이지. 그냥 왕이면 왕인 줄 알아야 하네. 또 그렇게 행동해야 하고.“
“그건 귀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마지막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