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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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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 - 윤영해 1999년 06월 208호
올해도 예외 없이 미스코리아선발 대회가 연례 행사로 열렸다. 늘씬한 미녀들이 화려하고 아슬아슬한 차림 새로 몸매를 뽐내고, 그것을 바라보는 뭇 남녀들은 욕망과 좌절, 선망과 질시를 경험한다. 그 축제의 뒤켠, 커튼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의 본능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선정적인 상업주의자들이 키득거리며 이득을 챙기고 있다. 다만 예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상업주의를 간파하고 질타하는 데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스코리아와 친선미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서 뽑힌 미녀들을 차례대로 진선미라고 부른다. 진선미眞善美의 진이란 오류 또는 거짓의 반대말로서 ‘참’이라는 뜻이고, 선이란 악의 상반된 뜻으로 ‘착함’의 의미이며, 미란 추함에 대칭된 의미로 ‘아름다움 또는 멋’을 가리킨다. 진선미라는 단어를 미녀의 호칭으로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힌 사람은 한국 국적을 가진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거짓이 없고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여성, 그래서 ‘참’에 가장 가까운 여성이어야 한다. 선에 뽑힌 사람은 가장 ‘착한’ 여성이며, 미에 뽑힌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실재를 가리키자고 약속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큰 혼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미스코리아 진에 뽑힌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고, 선과 미에 뽑힌 사람은 그 다음으로 아름다운 여성이다. 다시 말해 미녀 선발의 실제 기준은 아름다움 하나뿐이다. 그런데 뽑힌 미녀들을 미스코리아 1, 2, 3등으로 부르지 않고 왜 진, 선, 미로 부르는 것 일까?

참, 착함, 아름다움
미녀 선발 문화는 본디 서구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를 가진 서양의 어느 나라도 미녀 선발의 기준을 진선미로 삼는 나라는 없으며, 또 뽑힌 미녀를 진선미로 부르지도 않는다. 한국의 주최자들은 모른다고 대답하기에 앞서 애초에 그런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상뿐이다.
진선미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자녀에게 가장 자주하는 말은 ‘공부해라’는 말이라고 한다. 공부, 곧 학문은 참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행위를 말한다. 착함을 지향하는 행위를 윤리 또는 도덕이라고 하며, 아름다움을 성취하려는 행위를 예술이라고 한다. 가치 판단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므로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진선미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 가장 가치가 높다고 여기는 것을 순서대로 말한 것일 터이다. 그렇다면 미스코리아의 진선미는 1,2,3등의 은유일 뿐이다.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
인간의 학문적인 행위가 추구하는 가치는 참이고, 도덕적인 행위가 지향하는 바는 착함이며, 예술 행위의 목적은 아름다움이라면, 과연 인간의 종교적인 행위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구체적 종교 전통에 따라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이슬람교는 복종과 평등을 성취하고자 하·며, 유교는 어짊과 예절을, 기독교는 믿음과 사랑을,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이루고자 한다.
비교종교학은 여러 종교를 동시에 고찰하여 보편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불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교 등을 통칭하여 종교라고 한다면-가 영향력 있는 종교학자 중의 사람인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이러한 관습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하지만-종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종교학자들은 다양한 종교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성聖, 곧 거룩함 또는 성스러움이라고 한다. 인간의 종교행위가 추구하는 바의 가치는 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4대 종교의 창시자들을 그런 종교 가치를 가장 훌륭하게 성취한 이들이라 여겨 성인 聖人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분들보다 더 큰 찬양을 받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는 학문의 가치인 진을 성취한 사람, 도덕의 가치인 선을 성취한 사람, 예술의 가치인 미를 성취한 사람들보다도, 종교의 가치인 성을 성취한 사람을 더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세속화 시대
앞서 말한 나의 어줍잖은 상상대로라면,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는 순서는 성聖, 진眞, 선善, 미美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나의 상상에 불과하거나 또는 망상임에 틀림없다.
하여튼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는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들을 소리높이 외치고 있지만 종교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오늘의 우리가 그래도 학문과 윤리와 예술의 가치인 진선미를 운위하지만, 거룩함은 이제 논의의 대상에도 끼이지 못한다. 사실 진선미를 외치는 경우에도 진선미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드물다. 이제는 그들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목적은 따로 있다. 모든 것이 세속의 가치를 위해 동원된 수단일 뿐이다. 어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뿐인가? 오늘의 우리 세상은 온통 세속화 시대다. 세속화 시대란 종교적인 믿음과 가치를 상실한 시대를 뜻한다. 오늘의 우리는 모두 종교를 버리고 세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내팽개쳐 버린 거룩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또 오늘의 우리가 열렬히 추구하는 세속화시대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세속화시대의 가치는 편리와 쾌락이다. 편리와 쾌락은 그 속성상 본질적으로 이기심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기심은 반드시 경쟁을 본질로 삼는다.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한 경쟁의 기치를 치켜들고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은 결코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인 행복에 기여하지 못한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 남는 사람은 한 명뿐이며 그의 행복감도 오래가지 못한다. 경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의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는 피로하고 지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파괴하는 범죄를 통해서 경쟁을 끝내려 하거나, 술과 마약과 섹스 또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으로 도피하거나, 결국은 자살로 달려간다. 세속화 시대에 궁극의 행복은 없다. 무한 경쟁의 스트레스와 좌절뿐이다.

성聖, 거룩함 또는 성스러움
반면에 거룩함 또는 성스러움의 구체적인 속성은 이타심利他心이다. 헌신, 희생, 봉사, 겸양, 사랑, 자비-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두려 움(tremendum)과 매혹(fascinans) 등은 너무 유신적有神的 종교 전통에만 치우쳐 있다-등, 이런 이타적인 가치들이 거룩함의 속성들이다.
세속사회는 이기적인 편의와 쾌락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종교는 이타적인 거룩함의 성취로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 성인聖人들은 우리가 그토록 확신하는 세속 시대의 가치를 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외면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는 그 분들을 더없이 위대하다고 찬양하면서도 다론 한편으로 그 분들을 등지고 열렬히 세속으로 달려간다.
세속화 시대의 대표 문화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상업주의의 위선으로나마 진선미를 외쳐 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거룩함을 외치기에는 면목없어 성聖만은 슬쩍 빼어 놓는 염치를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성聖, 거룩함의 성취와 실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길임을 설득하는 작업은 비단 종교인만의 몫은 아니다. 모든 종교가 거룩함의 성취와 실천을 통해서 행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할 의무는 비교종교학에도 있다는 것이 오늘날 종교학도 들의 새로운 합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