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
점득이는 점례를 불렀다.
“점득아, 물, 물 좀 줘.”
점례는 가쁘게 숨을 쉬며 물을 찾았다. 점득이는 더듬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여보세요, 여기 물 좀 주세요.”
“왜 그러느냐?”
주인 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누나가 몹시 아픕니다. 물이 먹고 싶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물을 떠와서 점례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건 몸살이 난 모양이다. 어디 돈이 있니? 약을 사와야겠구나.“
점득이는 더듬어 보퉁이를 끌렀다.
“누나, 돈 찾아봐.“
점례는 괴로와하면서 보퉁이 귀퉁이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돈을 찾아 주인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아주머니가 약을 사와서 먹었지만 점례는 쉬 낫지 않았다.
이튿날까지 열이 내리지 않고 사흘이 지났다.
주인 아주머니가 짜증스럽게 따졌다.
“너희들 숙박비는 가지고 있니?”
“......”
점례는 기운없어 대답을 못했다. 말할 기운이 없는 것이아니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벌써 눈치 채고 있었다.
“이젠 몸도 그만하니 나가 줬으면 좋겠구나. 손님들이 와도 너희들이 방을 차지하고 있어 받을 수가 없단다.“
점례는 겨우 버티며 일어났다.
“점득아, 누나 손 붙잡아줘. 어서 나가자.“
둘은 손을 불잡고 서로 의지하며 거리로 나왔다.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거리엔 모두가 그렇고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오고 갔다. 각자가 살기 위해 옆사람을 돌봐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누나?”
“정거장으로 가자. 기차 타고 판순이한테 가자.”
“아니야 누나.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좀더 기다려 봐. 통일이 되면 외갓집 갈 수 있을 테니까.“
점득이는 휴선이 그렇게 오래 막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판순이한테 간다고 해도 결국 집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은 발걸음이 절로 정거장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 말고는 다른 어느 곳에도 갈 곳이 없었다. 점례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점득이한테 기대듯이 걸었다. 몇 걸음 가다가는 멈추어 서고 몇 걸음 가다가는 멈추어 서고는 했다. 정거장 대합실에 와서 점례는 쓰러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점득이가 부축했지만 어느 쪽으로 끌고 가야 할지몰랐다. 눈먼 동생과 몸이 아픈 누나는 결국 이렇게 차거운 거리에 버려지게 되었다.
점례는 점득이 팔을 대합실 구석쪽으로 가리켰다. 점득이는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점례는 끌려서 따라갔다. 대합실에 가득한 사람들은 아무도 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정도의 불짱한 아이들은 너무도 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누나, 물 먹고 싶지 않어?”
“괜찮다. 넌 누나 곁에 꼭붙어 있어야 한다.”
점례는 자칫하면 점득이를 놓칠까봐 걱정이 되었다. 잘못해서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피난길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가족과 헤어져 서로 찾아헤매고 있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그 아이들은 모두가 지금도 점득이네처럼 고통스럽게 거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점례가 점득이 손을 불잡고 말했다.
“점득아,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나도 알아. 꼭 살아서 외갓집에 가야 해. 외숙부님 만나 승기 형하고 같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외숙모님과 승호 형을 죽게 한 원한을 갚아야 해.”
둘은 손을 붙잡고 마음 속으로 굳게 굳게 약속하는 것이었다.
대합실은 더욱 붐볐고 떠들고 외치는 소리에 어지러웠다.
한낮이 지나가고 있었다.
“점득아, 배고프지 않니?”
“나보다 누나가 뭘 먹어야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점득이는 막막했다. 그러나 갑자기 점득이는 점례 누나를 구석자리에 그냥 앉혀 놓고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는 거야?”
“아냐, 좀 기다려 봐.”
점득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소란 스러웠지만 망설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저 산너머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만은
천리 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생각 그리워 눈물집니다…”
떠들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귀를 기울였다. 노래는 계속되었다. 참으로 점득이의 목소리는 아름다왔다.
“버들수 숲속에 모여 앉아서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그 어디서 무엇을 하나
생각사록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
사람들이 둘레에 모여들어 어느새 둥그렇게 진을 쳤다. 노래가 끝나자 손뼉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야, 한 번 더 불러라. 방금 부른 노래 다시 불러라.”
“그래, 다시 불러라.”
이북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점득이는 숨을 크게 쉬고 나서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한마디 한마디 부르면서 첨득이는 만주에서 살던 집 생각을 떠올렸다. 아버지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모과나무골 뒷산 소나무가 보였다. 승호 형이 보이고 어머니와 외숙부님과 승숙이 누나와 승기도 보였다.
둘레는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생각사록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
이번에는 손뼉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점득이처럼 고향을 생각하며 보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머리칼이 푸석푸석하고 허름한 남자 작업복을 걸친 아주머니가 십환짜리 한장을 접어 점득이 잠바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이어서 할아버지 한 분이 또 그렇게 종이돈 한 장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점득이는 고개를 숙였다.
“너희 고향은 어디니?”
“휴전선 때문에 이북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그러냐, 쯧, 힘들지만 노래 한 번 더 불러주겠니?”
“예.”
점득이는 열 번쯤 노래를 더 불렀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불렀다. 처음엔 점례 누나의 약값을 얻기 위한 것이, 나중에는 저도 모르게 노래에 빨려들어가 모든 걸 잊어버렸다. 힘이 빠지고 지치고 나서 점득이는 주저앉았다. 사람들도 그쯤 하고는 흩어져 갔고 정거장 대합실은 다시 웅성거렸다.
“누나, 호주머니 돈 한 번 세어 봐.”
점례는 한장 한장 구겨진 돈을 세었다.
“모두 백팔십 환이야.”
“누나, 이거면 됐지? 이렇게 우리는 살 수 있어.”
점례는 점득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을 점득이는 더 따뜻하게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