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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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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12월 82호
1953년 칠월, 휴전협정이 이루어져 피난민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휴전선이라는 새로운 분계선이 남북을 갈라놓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열일곱살의 예쁜 처녀가 된 점례는 고향에가게 된 기쁨에 가슴이 설레었다. 점례는 그 때 그 나이쯤의 처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두 가닥으로 나누어 땋아내렸다. 한 뼘이나 되는 머리가닥이 양쪽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드리워졌다. 고생에 찌들었지만 동동크림을 바른 얼굴이 뽀얗게 예뻤다.
점례는 점득이 손을 잡고 판순이가 식모로 들어간 국밥집으로 갔다. 판순이는 지난 겨울 석탄장수 아주머니들의 주선으로 국밥집 부엌데기가 된 것이다.
“시집갈 때까지 일하면 혼수감도 풍족히 해줄께.“
주인집에서는 말라깽이에다 키가 껑충 큰 판순이가 부지런하게 허드렛일을 잘 한다고 쉽게 받아주었다. 판순이는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일했다.
“판순인 고향에 안 갈 테니?“
“안 가.“
역시 아무도 없는 고향에 판순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점례는 점득이만 데리고 가기로 했던것이다. 기만이는 박씨 아저씨가 데리고 있기로 했고, 그래서 또 한번 모두가 혜어지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판순이는 점례한테 커다란 주먹밥을 김에다 싸서 주었다.
“외숙부님 만나거든 함께 잘 살어.“
“너도 한번 놀러 오너라.”
기차정거장까지 박씨 아저씨와 기만이와 판순이가 따라갔다.
“점득아, 잘 가.”
기만이가 씩씩하게 인사했다.
“아저씨, 그동안 참 고마왔읍니다.“
점득이는 시장에서 산 조금 큰 잠바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너희들 부디 건강하게 살아가거라. 두 남매가 사이좋게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
아저씨는 점득이 어깨를 자꾸 다독거렸다. 판순이는 점례 손을 불잡고 꺽꺽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자 판순이는 결국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기차 안은 말 그대로 거지나 다름없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앉은 점례와 점득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창밖 승강장에서의 점례 울음소리가 앞 못보는 점득이의 귀에 더욱 크게 올리는 듯했다. 기차가 움직이자 그 울음소리는 기차 소리에 묻혀버렸고, 기차는 외롭게 떨어진 돌멩이처럼 판순이를 남겨놓고 매정하게 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억지로라도 끌고 갈 걸…)
점례는 가슴이 아프도록 후회스러웠다.
석탄기차는 느리게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달려갔다. 경상북도에서부터는 전쟁으로 부서진 도시와 마을들이 나타났고 그것은 북쪽으로 갈수록 더 심했다. 한낮이 넘어서 점례는 판순이가 싸준 주먹밥을 점득이와 나눠먹었다.
“누나, 아직 서울까지 멀었니?“
점득이는 지루하고 피곤했다.
“밤 늦게라야 닿는단다. 나한테 기대고 한숨 자거라.“
점례는 점득이 머리를 제 어깨에 끌어다 기대게 했다. 점득이는 잠이 들었다.
점례는 외갓집 생각을 했다. 외숙부님과 승숙이와 승기오빠가 돌아와 있을지 불안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으면 가서 기다리면 된다. 희망을 버리면 사람은 한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그 희망을 싣고 가듯이 달렸다.
서울에 닿은 것은 밤 열시가 넘어서였다. 그리워하던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은 갑자기 들뜬 마음으로 밀고 밀리며 기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점례한테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새로 생긴 휴전선은 전에 있던 삼팔선과는 다르게 되어 모과나무골이 북쪽으로 들어가버렸다는 것이다. 역전 파출소에서 소장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점례는 한동안 꼼짝않고 넋을 잃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
소장님이 조용히 타일렀다.
“내일이라도 다시 있던 곳으로 내려가거라. 휴전이 다시 통일로 이어지면 고향에 가게 될 테니 실망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해라.“
소장님은 근처 조그만 여인숙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작고 어두운 여인숙 방이었지만 다리 밑 움막에 비하면 대궐 같은 방이다.
점례는 점득이와 나란히 누웠다. 둘은 서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점득이가 소리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 점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점례 역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가닥 걸었던 희망이 끊긴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고 땅을 가르고 죽이고 두들기고 부시는 걸까?
한참 뒤 점례가 점득이 어깨를 가만히 넘겨다보니 잠이 들어 있었다. 점례도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점득이가 잠을 깨보니 누나가 앓고 있었다. 머리를 더듬어 짚어보니 열이 뜨겁게 올라 있었다.

“누나, 누나!”
점득이는 점례를 불렀다.
“점득아, 물, 물 좀 줘.”
점례는 가쁘게 숨을 쉬며 물을 찾았다. 점득이는 더듬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여보세요, 여기 물 좀 주세요.”
“왜 그러느냐?”
주인 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누나가 몹시 아픕니다. 물이 먹고 싶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물을 떠와서 점례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건 몸살이 난 모양이다. 어디 돈이 있니? 약을 사와야겠구나.“
점득이는 더듬어 보퉁이를 끌렀다.
“누나, 돈 찾아봐.“
점례는 괴로와하면서 보퉁이 귀퉁이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돈을 찾아 주인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아주머니가 약을 사와서 먹었지만 점례는 쉬 낫지 않았다.
이튿날까지 열이 내리지 않고 사흘이 지났다.
주인 아주머니가 짜증스럽게 따졌다.
“너희들 숙박비는 가지고 있니?”
“......”
점례는 기운없어 대답을 못했다. 말할 기운이 없는 것이아니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벌써 눈치 채고 있었다.
“이젠 몸도 그만하니 나가 줬으면 좋겠구나. 손님들이 와도 너희들이 방을 차지하고 있어 받을 수가 없단다.“
점례는 겨우 버티며 일어났다.
“점득아, 누나 손 붙잡아줘. 어서 나가자.“
둘은 손을 불잡고 서로 의지하며 거리로 나왔다.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거리엔 모두가 그렇고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오고 갔다. 각자가 살기 위해 옆사람을 돌봐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누나?”
“정거장으로 가자. 기차 타고 판순이한테 가자.”
“아니야 누나.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좀더 기다려 봐. 통일이 되면 외갓집 갈 수 있을 테니까.“
점득이는 휴선이 그렇게 오래 막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판순이한테 간다고 해도 결국 집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은 발걸음이 절로 정거장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 말고는 다른 어느 곳에도 갈 곳이 없었다. 점례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점득이한테 기대듯이 걸었다. 몇 걸음 가다가는 멈추어 서고 몇 걸음 가다가는 멈추어 서고는 했다. 정거장 대합실에 와서 점례는 쓰러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점득이가 부축했지만 어느 쪽으로 끌고 가야 할지몰랐다. 눈먼 동생과 몸이 아픈 누나는 결국 이렇게 차거운 거리에 버려지게 되었다.
점례는 점득이 팔을 대합실 구석쪽으로 가리켰다. 점득이는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점례는 끌려서 따라갔다. 대합실에 가득한 사람들은 아무도 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정도의 불짱한 아이들은 너무도 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누나, 물 먹고 싶지 않어?”
“괜찮다. 넌 누나 곁에 꼭붙어 있어야 한다.”
점례는 자칫하면 점득이를 놓칠까봐 걱정이 되었다. 잘못해서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피난길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가족과 헤어져 서로 찾아헤매고 있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그 아이들은 모두가 지금도 점득이네처럼 고통스럽게 거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점례가 점득이 손을 불잡고 말했다.
“점득아,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나도 알아. 꼭 살아서 외갓집에 가야 해. 외숙부님 만나 승기 형하고 같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외숙모님과 승호 형을 죽게 한 원한을 갚아야 해.”
둘은 손을 붙잡고 마음 속으로 굳게 굳게 약속하는 것이었다.
대합실은 더욱 붐볐고 떠들고 외치는 소리에 어지러웠다.
한낮이 지나가고 있었다.
“점득아, 배고프지 않니?”
“나보다 누나가 뭘 먹어야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점득이는 막막했다. 그러나 갑자기 점득이는 점례 누나를 구석자리에 그냥 앉혀 놓고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는 거야?”
“아냐, 좀 기다려 봐.”
점득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소란 스러웠지만 망설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저 산너머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만은
천리 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생각 그리워 눈물집니다…”

떠들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귀를 기울였다. 노래는 계속되었다. 참으로 점득이의 목소리는 아름다왔다.

“버들수 숲속에 모여 앉아서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그 어디서 무엇을 하나
생각사록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

사람들이 둘레에 모여들어 어느새 둥그렇게 진을 쳤다. 노래가 끝나자 손뼉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야, 한 번 더 불러라. 방금 부른 노래 다시 불러라.”
“그래, 다시 불러라.”
이북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점득이는 숨을 크게 쉬고 나서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한마디 한마디 부르면서 첨득이는 만주에서 살던 집 생각을 떠올렸다. 아버지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모과나무골 뒷산 소나무가 보였다. 승호 형이 보이고 어머니와 외숙부님과 승숙이 누나와 승기도 보였다.
둘레는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생각사록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
이번에는 손뼉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점득이처럼 고향을 생각하며 보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머리칼이 푸석푸석하고 허름한 남자 작업복을 걸친 아주머니가 십환짜리 한장을 접어 점득이 잠바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이어서 할아버지 한 분이 또 그렇게 종이돈 한 장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점득이는 고개를 숙였다.
“너희 고향은 어디니?”
“휴전선 때문에 이북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그러냐, 쯧, 힘들지만 노래 한 번 더 불러주겠니?”
“예.”
점득이는 열 번쯤 노래를 더 불렀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불렀다. 처음엔 점례 누나의 약값을 얻기 위한 것이, 나중에는 저도 모르게 노래에 빨려들어가 모든 걸 잊어버렸다. 힘이 빠지고 지치고 나서 점득이는 주저앉았다. 사람들도 그쯤 하고는 흩어져 갔고 정거장 대합실은 다시 웅성거렸다.
“누나, 호주머니 돈 한 번 세어 봐.”
점례는 한장 한장 구겨진 돈을 세었다.
“모두 백팔십 환이야.”
“누나, 이거면 됐지? 이렇게 우리는 살 수 있어.”
점례는 점득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을 점득이는 더 따뜻하게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