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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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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윤수 1988년 12월 82호
‘한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교도소를 보라’는 말이 있다. 사회의 모순이 집적된 후미진 곳, 구조적 모순이 잉태한 수많은 범법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 교도소인 까닭이다. 이러한 이치로 본다면 삼중(三中 )스님이야말로 이 나라의 사정을 제일로 잘 아는 이라 하겠다. 부장 여교도관의 아들로 서대문 구치소 주변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구치소 담벼락에 낙서도 하고, 그 곁에서 구슬치기에 말타기를 하며 자라 한때는 변호사의 부푼 꿈을 키우며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허망한 인간사를 극복하기 위해 해인사로 입산한 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삼천리 교도소를 내집보다 가까이 드나들며 재소자의 ‘어버이’가 되어버린 스님. 속가의 여동생은 교도관이, 남동생은 검사가 되었다니 인연치고는 참으로 큰 인연이리라.
법랍 31년째인 스님은 한 십여 년 동안은 금강경 공부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중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새기던 중 대구교도소를 찾아 설법을 하였고, 그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는 신앙의 행렬에 스님은 ‘나를 버릴 곳이 바로 여기임’을 기쁘게 확인하였다.

‘십이인의 탈주극’은 비참하게 막이 내렸다. 무려 이십여 일을 끌다가 마침내 일요일 새벽부터 시작된 인질극에 나라 안이 들썩했다. 겹겹이 에워싼 경찰들 틈에서 창문을 통해 총구멍을 들이대고 있는 범인앞에 범인의 어머니와 애인들이 절규하고 있었고, 잿빛 승복의 스님이 이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잠깐 화면에 비치기도 하였다. 숨막히는 과정에서 누구든 스님의 뒷모습만으로도, 아니 장삼 자락만을 보고도 ‘아하, 삼중스님이로군’ 하였을 게다. 그것은 스님이 범법자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오직 한 분뿐인 스님이어서도 그렇고, 또 그 때문에 교계 안팎으로 유명인이어서다. 교도소는 숱한 사연들이 묻어나오는 곳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눈물들이 범벅이 되어 매스컴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하는 삼중스님이 유명해졌다. 그날 인질극 이후로 삼중스님은 재소자 교화의 방향성을 새롭게 변화시키려 한다. 그네들이 스님에게 퍼붓던 ‘이 세상 종교인은 모두가 도둑놈, 사기꾼이다’라는 폭언에 몹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비극적인 순간에 종교는 무엇을 했나 하는 아픔을 홀로 되새겨야 했어. 그들이 장삼자락만 보고도 들고 있던 총을 내던지고 귀의했어야 하는 건데 … 그간 해온 재소자 교화가 허무하고, 나 스스로의 무력감이 심하게 들더군.” 그래서 이제는 그들의 심성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방법을 세우겠다고 다짐하였다. 많은 이들이 탈주범을 동정하고 그들이던진 말 ‘무전유죄’에 공감하는 데에 관해 “그들이 말하기 이전부터 교도소의 벽에 새겨져 있던 문구가 바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네. 그러나 그들은 의적이나 독립투사가 아니라 전과 십수범으로 얼룩진 이들임을 분명히 알아야 해. 다만 그들의 목소리 가운데 사회병리적인 문제만큼은 우리 쪽이 책임져야지.” 후덕한 인상과 재소자들에게 내리쏟는 뜨거운 사랑에 견주어 의외로 스님은 냉정함을 지니고 계셨다. 불필요한 감정을 철저히 절제하는 냉정함을 지니고 계셨다.
시류에 따라 시국사범의 수가 늘었다줄었다 한다. 그때마다 스님은 정국의 흐름을 읽는다. 시국사범이 늘어나는 것이 영 못마땅한 스님은 어떤 측면에서는 수감된 그들이 오히려 ‘애국자’임을 안다. 무조건 용공, 좌경으로 매도하고 탄압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정치임을 그들과 만나면서 느끼게 되었다. 삼중스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바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참회하며 내세를 준비하는 사형수, 한평생을 쇠창살에 갇혀 살아야 하는 무기수들이다. ‘굵고 짧게 살자’가 큰일 한번 벌이고 ‘싸나이’ 답게 죽는 것인 줄로 알던 이들이, 이젠 자신이 이 작은 공간에서 해내야 할 보리행임을 느끼고 실천하고 있음에 스님은 감동하며 옷깃을 여민다.

스님은 무고한 이에게 언도된 형을 곧잘 뒤집어놓았다. 사형수 최 재만이 그렇고 서진룸싸롱 사건의 고 금석이 그렇다. 며칠 전 또 한 무기수가 인편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스님은 무거운 형량을 부여받은 이는 체념하고 반성할 따름이지 쓸데없이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음을 익히 알기에 내일은 또 공주교도소를 다녀올 참이다. 삼중스님을 판사나 검사가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고, 검사가 수사하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으로 판사가 선고한 형량을 감하려 스님이 다니면서 범인을 부추기고 있으니 ‘이나라 법 질서를 교란시키는 스님‘ 쯤으로 생각한다.

소천 큰스님을 만나 금강경을 매만져 온스님은 설법 때에도 금강경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러나 경전을 말씀을 인용한다. 그러나 경전을 인용한 설법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로 다가가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수만 가지의 질병속에 허덕이는 중생들에게 스님의 설법한 마디가 어찌 만병통치가 될 수 있으랴. 그래서 그들의 고통스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어깨를 끌어안고 함께 울다가 돌아온다. 하기사 ‘법사보다 외려 인생을 더 잘 아는’ 재소자들에게는 병환중인 노모, 굶고 있는 딸의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돕는 작업 또한 바로 더불어사는 삶을 추구하는 스님의 ‘일’인 것이다.

삼중스님은 더욱 피를 지닌 보살 닮은 재소자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실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더욱 허다하다. 스님의 법문을 잘 들었던 사람이라며 저마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부처님께 귀의코자합니다. 스님이 새사람 되라 하셨지만 이 사회가 냉대합니다.‘ 이토록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출감한 이들이 스님 곁에 모여들고는 제각기 필요한 것들을 챙겨사라진다.
스님이 당한 협박은 접어두고라도 법회 때 소매치기 당한 신도가 부지기수인 데에다더러는 신도 집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거나 사기를 치는 통에, 지금 스님이 계시는 자비원에는 신도가 몇 안 된다. ‘천불이 출현해도 구제 못할’ 그런 이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그 피해가 막심하다손 치더라도 삼중스님은 ‘죽을 때까지‘이 일을 하며 살 사람이다. 스님은 5년 전에 공사찰을 떠났다. 그러고는 이곳 방배동 가야병원 옆골목의 허름한 건물 이층에 자비원 간판을 달았다. 조계종 승적이 없어서나 주지직을 잃어서가 결코 아니다. 무슨 주지가 허구헌날 교도소에 가서 사느냐는 끓어오르는 여론에 밀려 ‘홀가분하게 하고픈 일 하기 위해‘ 절을 떠났다. 그래서 스님은 하루 바삐 ‘스님,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도 떡 싸들고 스님 따라 가겠읍니다‘며 박수치는 신도들이 무리를 이루었으면 한다. “현재의 불교는 절에 가서 복이나 빌고 불사나 하는 것을 본업으로 치고 있어. 모두 제 편하자고 믿는 종교일 뿐 중생구제는 귀찮다는 거 아닌가?“ 불교의 원융무애한 사상, 공동체의 삶, 동체대비심, 이 모두가 암울한 이 시대에 꽃피워야 할 근본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을 올바로 펴지 못해 부끄럽다고 이르신다.

백삼십만원의 월세가 부담스러울뿐더러 출소자들에게 편한 잠자리라도 제공해주고 싶어서 스님은 작은 땅 몇 평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스님의 소원은 ‘그늘진 곳 없고 모순이 사라져‘ 설법할 대상이 없고, 스님이 아침 수저를 놓자마자 가야 할 교도소가 사라지는 ‘정토의 구현’이다. 이 엄청난 꿈의 실현을 위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사신 부처님을 따라 길을 나선다. 스님의 발길은 교도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군부대, 고아원, 양로원, 소록도 나환자촌의 방문도 스님의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문드러지고 썩어가는 육신을 지닌 이들이 갖고 있는 ‘영롱한 정신’앞에선 도리어 내가 감화를 입고 오는 셈이지.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스님입네 하며 진리의 말씀 전하겠는가. 그네들의 성실한 삶이 내겐 경전이며 용기라네.“ 그래서 스님은 교도소엘 가고 나환자촌엘 간다. 출근하는 이처럼 아침나절 나서서 사형수 대여섯 명과 개별 면담을 하고 재소자를 모아 대중법회를 연다. 그리고 문제수들과 상담을 마치면 하루가 다 간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은 인접한 곳을 엮어서 돌아온다. 때때로 각종 법회의 초정법사로 가서 ‘재소자들의 신심’을 들려주며 일반 신도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그래서 스님은 내내 자비원을 비울수밖에 없고, 오직 수요일 오후 1시의 정기법회 시간에 맞춰서만 법당에 계신다.

스님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스님과 전혀 무관한 ‘서민대중’들이다. 무슨 뜻인고 하니,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책갈피에 돈을 넣어주며 사형수 구명운동에 보태달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회사택시를 모는 운전기사가 차비를 돌려주곤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생면부지의 대중들이 스님에게 보내는 보이지 않는 뜨거운 함성이 거리에서 이렇듯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변변하게 차려입고 사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스님은 좋다. “비록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웃들이 보내주는 따뜻한 마음이 내게는 희망이며 꿈이지.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이 실로 두려운 일임을 새삼 느끼곤 해.” 머잖아, 찬바람 속에 구세군의 자선남비가거리로 나앉고 도시는 온통 북새통이 되어 요란스러운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다.
‘이 해도 어느새 다 갔다’ 싶어 마지막 남은 달력 한장에 다소 쓸쓸함과 미련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삼중스님에게 “스님, 저도 함께 갈랍니다”며 전화를 걸자.
그들을 만나는 시간이 짧음에 비해 서로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어 갖는, ‘지는 해의 풍요로운 자리’ 가 될 터이니 말이다.

글/이 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