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력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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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2년 08월 126호
여름 안거 때에는 귀신 이야기 하나쯤은 꼭 듣게 된다. 대개 지대방 한담으로 흘러나오는 이런 이야기는 한여름의 더위를 싹 가시게 할 만큼 으시시한 것도 있다. 처음에는 무심코 듣다가 차츰 빠져드는 게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흡인력이다. 더군다나 이번 이야기는 생생한 수행담인데다가 칠 푼의 사실에 세 푼의 거짓말도 적당히 섞였기 때문인지 듣는 재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듣고 있자니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그 해 조실스님을 모시고 여름 안거에 들어간 스님네는 외호대중外護大衆을 포함해 스무 명 남짓 되었다. 대부분 초참初參을 넘긴 수좌들이었다. 선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곱게 피어나는 물안개를 보려고 아침 공양을 끝내고 그곳까지 포행삼아 다녀올 만한 거리였다. 어떤 때는 정진하던 죽비를 놓고 저수지에서 더위를 식힐 수도 있어서 무엇보다 여름 안거를 나기에는 좋은 수행처였던 셈이다. 그렇게 그럭저럭 반살림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저수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주검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해제를 한 달 반 남겨 둔 바로 그날 밤이었다. 경찰들도 현장만 확인한 채 그날 밤 모두 산을 내려가고 말았다. 시체를 치우기에는 밤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조실스님은 수좌들을 모았다. 이미 삼경이 지난 때였다. 노스님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중을 향해 말하였다.
“그 여자의 구두를 가지고 올 수좌가 있으면 일어서시오.”
뜻밖에 말에 대중들은 놀랐으나 농담이 아님을 조실스님의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선뜻 나서는 스님이 없었다. 그도 그럴 듯이 죽은 사람에게서 구두를 벗기는 일도 힘든 노릇인데, 보통 담력으로는 칠흑 같은 밤중에 그곳까지 가겠다고 쉬 나설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때는 손전등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그 때 한 수좌가 일어났다.
“구두를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까?”
“그렇다. 그걸 가져오면 행각을 떠날 때 여비를 넉넉히 주겠다.”
조실스님은 안거 마지막 날 나누어 주는 해젯돈을 상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 수좌스님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담력을 시험해 보고픈 호기가 은근히 일었다. 사실 선방의 장판때가 묻은 수좌라면 한 번쯤 덤벼볼 만한 일이었다. 평소에 겁내는 일이 없었던 터라 내심 호승심好勝心도 작용했음이다. 그믐날 밤엔 부엉이도 울지 않는다던가. 어둠의 깊이가 처음 나서던 수좌스님의 당당함을 조금씩 위축시켰다.
‘하필 물에 빠진 처녀의 신발일까.’
이런 생각을 한 수좌스님은 스스로 정신이 많이 약해져 있음을 느꼈는지 어느새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손바닥에선 땀이 끈적끈적 묻어나고 있었다. 저수지의 물빛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수좌스님은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무 관세음 보살”
가마니로 덮어 놓은 시신은 반듯이 누워 있었고, 가마니 아래로 드러난 두 발은 기분을 섬뜩하게 했다. 두 눈을 딱 감고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수좌 스님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한 것은 구두가 한 번에 벗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물에 불어 신발이 꽉 차 버린 사실을 몰랐던 게다. 그때부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하면서 등골이 아득해지는 기분 때문에 손끝이 저절로 떨려 왔다. 무엇보다 시체가 벌떡 일어나 뒷덜미를 쥐며 “내 신발 내놔!” 하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러니 살갗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좌스님은 시체 곁에 살짝 누웠다. 차라리 얼굴을 쳐다보는 게 덜 무서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발끝으로 신발을 밀어 내는 동작을 하였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지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려고 했다. 그렇게 신발 한 짝을 벗기자마자 그냥 내달린 스님은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땐 스니의 몸은 땀으로 목욕한 듯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 수좌스님의 손에 빨간 구두 한 켤레가 꼭 쥐어져 있었던 게다. 조실스님은 그 자리에서 눈빛 하나 바꾸지 않으시고 대중에게 다시 일렀다.
“이 신발을 다시 신기고 올 수좌는 없는가.”
이번에는 갔다 왔던 수좌스님조차도 고개를 내저었다. 천하를 다 준다 한들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나서는 이가 없음은 당연한 일. 조실스님은 대중을 향해 꾸짖듯 한 마디 하셨다.
“일체가 다 헛된 일임이 분명한데 송장 하나에 마음이 걸리고 마는군. 공부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좌가 한 명도 없음이야.”
조실스님의 말에 대중스님네는 부끄러워 고개를 드는 이가 없었다. 아무튼 대중스님들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신발을 다시 신겨 놓아야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신발이 그대로 신겨져 있는 것을 확인한 수좌스님들은 말문을 닫았다. 간밤에 조실스님이 신겨 놓은 까닭이다.
동화사 금당에서 효봉 노스님이 조실로 지낼 때의 일화이다.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수좌들에게 담력과 공부를 시험한 노스님의 깨우침은 어떤 법문보다 값진 것이다. 그때 그 수좌스님은 지금도 대중 처소에서 선덕禪德으로 수행하고 계시다는 후문이다. 공부하는 우리 수행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일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