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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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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임신행 1992년 08월 126호
“그때, 네가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드라면 난....”
도깨비는 엿가락처럼 유별나게 긴 속가락의 손톱을 물어 뜯으며 형태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커.”
빠끔 뚫린 비행기 창 밖을 내다보던 형태는 질끔 놀라며 도깨비 입을 막았다.
창 밖은 햇살보다 더 부드럽고 새하얀 솜털 구름밭이 뭉게 뭉게 가없이 펼쳐 있었다.
비행기는 새하얀 뭉게 구름밭 위를 날고 있었다.
“미안해.”
도깨비 는 계면쩍은지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도깨비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면 손님들이 놀라 난리 뻐꾸기가 될 거야. 그치?”
뭉게 구름밭을 내다보다가 잠이 든 파랑(젊다는 뜻으로 형태는 국민학교 평교사로 사십오 년을 일하다 정년 퇴임한 할아버지를 파랑 할아버지로 불렀다) 할아버지를 힐끔 돌아보며 형태가 귀엣말을 했다.
“날 볼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손님들이 알면 앗, 아니면 윽, 이겠지.”
도깨비는 죽는 시늉을 장난스럽게 해 보였다.
“꼬마야, 알사탕을 먹으련? 아니면 쥬스를 먹으련?”
목련꽃보다 더 훤한 승무원 누나가 사각 유모차에 쥬스랑 물, 커피, 종이컵, 알사탕을 잔뜩 싣고 와서 물었다.
“꼬마야, 꼬마야, 하지 마세요. 듣는 사람 기분 나빠요.”
형태는 눈을 하얗게 치뜨며 앵토라졌다.
“미안! 미안!”
승무원 누나는 상냥한 웃음을 띄우며 사과했다.
“전요, 고형태에요. 유치원 재수생이고요.”
또랑 또랑한 음성으로 형태는 대답했다.
“고형태, 두견새 우는 사연은 좀 있다가 묻기로 하고 뭘 먹을 테야?”
승무원 누나는 조금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
“커피 둘.”
현태는 왼손 집게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펴 보였다.
“커피는 어린 몸에 해로울 껄.”
“전요, 얼마 전까지 아버지가 미국에 파견 근무하셔서 미국에서 유치원 다녔걸랑요. 그래서 커필 아주 잘 먹어요.”
형태는 코를 쿠울쿨 골며 자는 파랑 할아버지를 힐끔 보고 입을 열었다.
“몇 살인데?”
“다섯 살요.”
승무원 누나는 의자에서 받침대를 꺼내 커피 두 잔을 정성스레 놓아 주었다.
“맛있게 드세요.”
승무원 누나는 상냥하게 인사하고 뒷자리로 갔다.
“자, 먹어.”
좌우로 손님들 눈치를 살펴본 형태는 일회용 종이 손수건에 싼 종이컵의 커피를 도깨비에게 주었다.
“......”
형태가 내미는 커피를 도깨비는 선뜻 받지 않고 망설였다.
“먹어. 한 잔 비우고 나면 부산이야.”
형태는 종이 잔의 따끈한 커피를 억지로 도깨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우리 주인이 알면...”
도깨비는 썩 뒷자리에 물러나 창 밖에 신비하리만치 뭉게뭉게 아름답게 인 구름밭을 내다보고 있는 꺼벙한 사내 쪽을 돌아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아저씨가 정말 황금도깨비 대상을 받은 사람이냐?”
형태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 대합실에서 탑승 화물 관계로 한바탕 소란을 피웠던 일을 머리에 떠올렸다.
“으-응-”
도깨비는 어부숭한 머리를 주억거렸다. 형태는 도깨비의 말에 유별나게 코 맹맹이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아니?”
“황금도깨비상 수상 작품이라고 신문 광고에 난 걸 우리 할아버지랑 봤어.”
“엄만?”
“프랑스로 유학가 계셔. 그림 공부 하시러.”
“외롭겠구나?”
“아니.”
형태는 도리질을 했다. 눈길을 아저씨한테 주었다. 아저씨의 어수룩한 차림이며 몸집이 고등어 가운데 토막처럼 펑퍼짐한 것이 도저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시골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푸줏간 아저씨나, 시골장을 떠도는 싸구려 옷을 파는 ‘골라, 골라’ 아저씨였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파랑 할아버지와 비행기를 타려고 검사대를 마악 지나려는데 앞에서 공항 직원 아저씨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이게 당신한테는 소중할 줄 모르나 우리 눈에는 쇳덩이요, 쇳덩이. 기내에는 이런 걸 못 실어요. 탁송하세요. 탁송.”
“이런 거라니. 당신들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내가 안고 타면 되지 않소?”
공항 직원이 냉랭한 표정으로 사알살 약을 올리는 말투에 후끈 화가 난 아저씨는 금방 얼굴이 붉어졌다.
“참, 손님도. 말귀를 왜 못 알아 듣습니까? 우리가 어디 실어 주지 않으려고 합니까? 이 물건은 비행장에 내리면 찾을 수있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합니까?”
“으허 참. 탁송은 파손될 우려가 있어 안 되니까 내가 안고 가겠다는 것 아니요.”
“취급주의 표실 하면 암 일 없습니다.”
“안 됩니다. 같은 쇠붙이라도 골프채는 기내에 허용이 되고, 이 귀하고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예술품은 못 싣고 간다는 말은 난 이해가 안 됩니다.”
“난, 되풀이는 안 하는 사람인데 한 번만 더 합니다. 난 예술품으로 보이지 않아요. 어디다가 예술품이라고 적어뒀소. 피곤해요.”
“이쪽 작가님의 이름과 작품 제목을 보시오.”
아저씨는 종이 상자를 풀었다. 하얀 휴지를 풀어서 뭉친 것들이 수없이 나오고 청동 조각품이 나왔다.
“이 손님이, 누가 보자고 했어요? 손님이 내놓지 않아도 엑스레이로 나타나요. 보세요.”
공항직원은 회전의자를 돌려 앉으며 다른 손님의 휴대품 가방을 가리켰다.
“엑스레이가 다 안다지만 예술품인지 아닌지는 알 리가 없지요?”
아저씨는 조각품을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됐어요.”
“아!”
형태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분명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큰 새 한 마리가 지구 위를 날고 그 새 몸을 왼손으로 가볍게 잡고 도깨비가 날고 있었다.
청동이었다.
공항 직원은 보기 싫다고 손을 내저었다.
“가도 돼죠?”
아저씨는 종이 상자에다 다시 넣었다. 종이 상자 뚜껑에 삐죽이 오른손과 두 발이 나왔다.
“야!”
형태는 쏘옥 불가져 나온 청동 도깨비의 손을 잡았다.
“어쩌면!”
분명 하늘을 향해 치솟은 듯 내민 손을 잡는 순간 따뜻한 온기가 형태의 손에 전해 오는 것이 아닌가!
손에 물기가 젖었다. 땀이었다.
“아니!”
형태가 손바닥에 젖은 물기를 들여다보는 순간 아저씨는 조각 작품이 들어있는 종이 상자를 안고 냅다 비행기 탑승 문 쪽을 향해 뛰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공항 검사대 직원이 부르는 소리에도 아저씨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저씨는 표를 받은 직원에게 무어라고 말을 건네었다. 뒤 따라 공항 직원 한 사람이 와 아저씨의 종이 상자를 받아 비행기 기내까지 실어 주었다.
“널, 또 만나고 보니 내 마음이 이상해.”
형태는 약을 먹듯 조금씩 조금씩 커피를 마시며 얼굴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할 것 없어.”
“왜?”
도깨비의 말에 형태는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어려울 때 손을 잡아 줘서 고마워. 내가 다 자리도 양해를 얻어 바꿔 놓은거야. 널 만나 보고 싶어서.”
“넌 뭐든지 할 수 있구나?”
“그럼. 뭐든지.”
“이 세상 모-든-것-다-아-.”
형태는 두 손을 쥔 부채를 펴듯 좌악 벌렸다.
“종이컵에 남은 커피를 쏟겠다.”
“흐응.”
도깨비가 털부숭이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
“그럼, 정말이고 말고.”
“저-엉-말-.”
“그렇다니까. 하지만 난 살아 있는 것을 만들어 내지는 못 해. 둔갑은 시킬 수 있다 이거야. 무엇이든지.”
도깨비는 조금 풀이 꺾이어 대꾸했다.
“이 비행기처럼 날 수도 있어?”
“날 수 있지.”
“어떻게?”
“아까 봤지. 난 내가 마음놓고 부릴 수 있는 새를 갖고 있다고. 난 다른 도깨비와 달라.”
금새 도깨비는 양양해가지고 거들먹거렸다.
“넌 좋겠다.”
“난 형태 네가 부러워.”
도깨비는 백설기처럼 뽀얀 손등을 어루만졌다.
“난 네가 좋아.”
형태의 맑은 눈에 이상한 빛이 일었다.
“그래, 우리 둘이서 지금부터 서로 손잡고 재미있는 일 좀 해 보자.”
도깨비는 낮고 그윽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형태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벌떡 일어나며 형태는 소리를 질렀다.
“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형태 쪽으로 일제히 바라 봤다.
“어디 아퍼?”
코를 골고 잠을 자던 파랑 할아버지가 놀라 물었다.
“......!”
도깨비는 잽싸게 종이 상자 속으로 들어가 제 자리에 섰다.
‘승객 여러분! 잠시 후 비행기는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할 것입니다. 안전 벨트를 다시 매 주시고.....’
형태는 안전벨트를 확인하고는 도깨비가 내민 청동 손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