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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에 놓여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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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 - 혜묵 1992년 08월 126호
나는 사실 오래 전부터 불교나 선종이 변태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불교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쉽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때에 따라서는 심각한 오해나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물론 내 생각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중국의 젊은 학자가 쓴 글에서 ‘선종은 변태’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친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우리 불교의 전통에는 확실히 비정상적이거나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을 단박에 ‘변태’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변태라는 말에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통용되는 어떤 가치 판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석이야 여러 가지로 해 볼 수 있겠지만, 변태라는 말은 변화나 변질, 변성 따위의 말처럼 ‘변한 모습’ 정도의 뜻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변태라는 말을 쓰거나 듣는 경우에는 대개 성적인 성도착증같은 것을 연상하게 된다. 게다가 그 말은 기존의 정상적인, 그래서 선하고 옳은 행위에 반대되고 비정상적이고 옳지도 않고 응당 부끄러워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가치 판단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변태라는 말을 사용하면, 좋든 싫든 그와 같은 가치 판단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런 판단이 형성된 기존의 질서들을 승인하는 것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육체와 심리의 이상 상태, 병적이며 좋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만큼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말들을 섣부르게 쓰는 일은 옳지 않다. 어쨌든 가치 판단이 공공연하게 묵인되는 상황에서 불교를, 또는 선종을 변태적이라고 한다면, 신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교에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분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배우고 따라야 할, 고상하고 심오한 어떤 것이 아니라 버리고 싶어 할 음란하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변태라는 말을 하는 나 자신의 신앙심은 분명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얼마 전엔가 ‘중팔불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상한 것을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행위는 웃음을 자아낸다. “놀고 먹으면서 큰집에 산다” 따위의 이야기 였던 것 같은데, 풍자하는 바가 있다 싶어 단순하게 웃어 넘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놀고 먹어야 할 이유도 많겠지만, 하여간 상식적으로 정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우스갯소리도 나왔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의 스님들이나 불교인들은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비난 때문에 숱한 수모를 당해 왔고 지금의 처지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잠시 머문 중국에서 몇 차례 이런 입장을 변호해야 할 처지에 놓였는데, 사실 별로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우스갯소리가 한낱 우스개로 지나가 버리는 이유는, 그래도 우습지 않은 부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선종사를 꽉 채우고 있는 일승逸僧, 괴승怪僧, 요승妖僧 따위는 제쳐 놓고 근세 큰스님들의 일대기만을 보더라도 상식으로는 쉽게 넘기기 어려운 괴상하고 기묘한 행각들로 채워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너무도 긴밀해 보여서 도무지 괴상하지 않으면 큰스님일 수 없다는 조건 반사적인 연상 기제를 일반에게 남겨 놓은 듯도 싶다. 더 이상한 것은 그렇듯 괴상한 짓거리들을 버젓이 스승의 행장에 올려 놓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우스개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그만큼 어려운 ‘괴상한 짓’을 범상하게 하는 스님을 상상할 수도 없는 지혜나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 ‘괴상한 짓’이 일반 사람들에게 우스개 이상의 어떤 심오함을 느끼 게 해 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러저러한 것들을 선기禪機라고 하는데-이 말에는 제법 긍정적인 가치 판단이 담겨 있다-이 선기를 지나 광선狂禪이 되고, 다시 변태나 병태病態로 간주되는 세상이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정상적으로 표현하지도 표현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정쩡한 방식으로 삶을 꾸려 간다면, 진실한지 여부를 떠나서 외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부정적인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지난해 달마면벽과 중국 선종의 발상지로 유명한 숭산 소림사를 방문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소림사는 홍콩의 무술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분명히 그 절은 그곳에서 배출한 이연걸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연상시켜 주는 중국의 무림-그런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라도-을 명실 상부하게 선도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설정문하 이십구대 의발전인雪整門下 二十九代 依鉢傳人이라는 스님은 내내 중국의 무공과 무협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 무술의 본산인 소림사를 통해 중국의 경제 부흥에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 놓았다. 물론 그 무술의 창시자요, 그 본산의 개산조가 되는 달마대사께서 구년 면벽을 하셨다는 달마동, 한 평이 될까 말까 한 비좁은 석회동에는 정체 불명의 플라스틱 조상-내가 아는 바로는 불상같지도 않은-과 담배꽁초, 더러운 이불 따위가 엉클어져 있었다. 그 모습들이 절 밑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들, 그 연병장을 꽉 채우고 무술 연마에 열심인 무술학교 학생들-열 살 위 아래의 남녀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중국 선종의 발상지는 내 선입견 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 불교를 죽은 사람들의 불교, 사후를 담당하는 장례 불교라고 단언한다. 그런 판단에는 얕잡아보고, 정통성 따위를 문제삼는 어감이 들어있다. 그러나 한국의 수행승들이 일본 절에 가서 절 같지 않다고 아무리 투덜거려 보아도, 세계인들은 일본의 절과 그들의 불교학의 수준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며, 오히려 한국의 기벽을 지닌 수행승들을 맹랑하고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의 수행승들도 그들의 영향력 아래서 별 수 없이 변화하고 있는 한국 선종의 현실을 인정할 뿐이다. 어쨌거나 일본의 불교가 불교의 모습들을 장례 의식과 유골 관리로 만들어 가고 있다면, 소림사가 저렇게 무술과 기공氣功으로 다시 살아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무공을 이야기하는 중국 중에게 아무리 선을 따져 보아야, 찬란한 선종을 설교해 보아야 소용이 없듯이, 통하지도 않는 말로 좁은 한국 땅에서 선기를 선양해 보아야 세계 사람들은 그 실속도 없는 선기를 우스꽝스럽게 쳐다보게 될 것 같다. 아무튼 관광과 무공으로 되살아나는 소림사를 보면서, 죽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변한 일본의 절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그들의 눈에는 우리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된 오늘날, 우리 절들은 무공이나 유골단 같은 것이라도 갖고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기대하던 소림사는 더 이상 없고, 어록에 가득 찬 조사들의 영웅적인 방할도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투덜거려야 할 일은 없다. 어린 아이들은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그날 배운 무술을 흙먼지 속에서 반복해서 훈련하고 있었다. 무공을 설파하는 스님이나 절을 지키는 스님들의 모습도 범상치 않게 진지한 모습이었다. 팔뚝을 잘라 스승에게 바쳐야만 진지하다고 할 것인가. 사발로 피를 뽑아서 경전을 복사해야만 신심이 있다고 하겠는가. 한국에 남아있는 중국 선종의 잔재는 이제 이곳에는 먼지 앉은 낡은 역사책 속에서 환상으로나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완전히 실패한 병적이고 변태적인 이야기거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가 책 속에서나 보고 짐작해오던 선승들 사이의 동질감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변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연상하는 동성 연애자들은 스스로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가치 기준의 부당한 압박에 저항한다. 미국 텔레비전에 심심치 않게 비쳐지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혁명가들처럼 당당하다. 미국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실제로 인종해방, 민족해방 따위의 진지한 표현들과 성해방을 같은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들었다. 억압받고 있는 소수들의 연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문제이며, 그런 만큼 현실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천적이고 조직화하는 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미국이라는 특정 공간 아래서 동성 연애는 더 이상 변태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들의 집에 당당하게 깃발을 내걸듯이, 억압받고 있는 성의 해방을 위해 튼튼한 연대 아래서 싸워 나간다면 일부 일처의 고전적인 성 개념이나 가족 개념조차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평범한 다수가 변태를 비웃고 우스워하는 사이에 그들이 영웅적인 혁명가나 역사의 선도자로 기록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동성 연애는 아직 변태로 통한다. 그들의 노력이 기존 질서와 고정 관념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고, 보통사람의 삶과 상식에 너무나 이상하게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처지라든지 행위의 옳고 그름은 따질 필요도 없이 그들은 ‘정말로 이상한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변태적인 처지는 현대중국의 변태적인 선기禪機보다는 조건이 좋은 것 같다. 중국의 선종이 이미 지나가 버린, 지금은 크게 문제 삼을 필요도 없는 과거완료의 변태인 반면, 그들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미래도 있을 수 있는 변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 전개가 정당한 것인지, 또 사실과 부합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나 선종이 때에 따라서 변태로, ‘정말 이상한 소수’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음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달마조사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선종이라는 유별난 삶의 양식을 중국에 뿌리내리려고 조사들이 바친 노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종이 중국에서 과거의 변태로 단정받게 된 까닭은 알 수 없다. 선종을 표방하는 한국 불교 안에도, 달마조사가 중국에 와서 외국인으로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며 스스로 삶의 형태를 심어 간 것과 같은 선적인 삶에 대한 신념과 포부가 살아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선종이 변태인지, 또 현재 진행형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