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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싯다르타의 고뇌와 청소년 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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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원주 1992년 08월 126호
이 글에서는 청소년에게 불교를 새롭게 전달하고 가르치면서 늘 느꼈던 아쉬움 같은 것들과, 사찰 수련회 등에서 체험한 심성 개발 문제에 대한 것, 그리고 그 밖에 교리 전달에서 계획과 기술적인 면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살피고 나서, 청소년 불교 교육 문제에 대한 소견을 제시하려고 한다.

싯다르타의 고뇌
먼저 싯다르타의 청소년기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싯다르타가 태어나 맨처음 이 세상 일에 대면한 것은 자기를 낳은 지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마야 부인의 죽음일 것이다. 왕궁의 호사 속에서도 친모가 아닌 이모의 품에서 자랐던 싯다르타의 정신 세계는 보통 아동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을 것이다. 사춘기와 더불어 접어든 청소년기의 싯다르타는 그를 낳고 나서 칠 일만에 세상을 뜬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고뇌하였다. 생로병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감수성이 많은 싯다르타는 동노인 남병자 서죽음 북사문을 관찰하고는 더욱 고뇌와 갈등을 겪었다. 겉으로는 한 나라의 왕위 계승자요 부귀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이런 태자의 심리적 갈등과 정서적 불안정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면 소년 싯다르타는 문제 청소년이었는가? 현대 상담심리학에서는 그렇게 가정할 수도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문제 청소년이며 문제 어른이기도 하다. 더욱이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직접 어머니의 죽음에서, 사문 유관에서, 농경제 축제에서 경험하고서, 이런 문제를 꼭 자신이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태자는 분명히 문제 청소년이었다. 그가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는 죽음에 대한 문제, 곧 불생불멸의 길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현대 철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극한 상황 또는 한계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싯다르타는 바로 이 극한 상황에 맞닿아 있는 문제 청소년이었다고 하겠다.

문제 해결의 종교
싯다르타는 고뇌하는 문제 소년이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꿰뚫어 보기 위해 출가를 해서 마침내 자기를 침통하게 하던 죽음의 문제를 사유를 통하여 해결하였다. 청소년기에 문제된 죽음에 대한 의문은 깨달음으로 승화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문제 청소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여 크고도 넉넉한 깨달음에 도달한 장년기의 석가모니 붇다를 위대한 붇다라고 추앙하였다. 다시 말하면 자기 개발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 확립이 이루어진 것이다. 죽음의 문제에 빠져 고뇌하는 그런 나약함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자아는 일체를 해결할 수 있는 우주 자아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우주에 가득찬 이런 자아만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가득 찬 우주아 이것을 생명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자리를 달리하여 나타나는 생명의 원리! 우주생명! 큼직한 (하나인) 생명력에 의지하라. 신, 권위, 브라만, 인드라 잘못된 사회 제도(카스트) 등에 의지하지 말고 우주아에 의지 하라. (자등명, 법등명) 석가는 부분(쾌락주의, 선정주의)에 탐착치 말고, 전체를 보고, 생각하고, 사유하라 이것이 올바른 길이니라.(중도, 8정도)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 이것이 깨달은 진리(중도)이다.
이렇듯 청소년기의 죽음에 대한 고뇌를 우주적 깨달음으로 해방한 붇다는 팔상성도의 전형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불완전한 한 인간이 완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전인적 과정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교화 과정 정립
인간은 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유아기나 아동기에 해당하는 교육 과정이 있고 청소년기의 신체와 정신의 발달 단계에 알맞은 교육 과정이 있다. 불교는 그런 발달 단계에 따라서 교리 과정을 조절해야 한다. 정규 교과 과정을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청소년층에는 어떤 설법을 할 것인가를 연구하여 전국 차원에서 통일된 법회자료집 정도는 마련해야 하겠다. 우리 교계는 중등학교 학생과 장년, 노년을 가리지 않고 인과법문이나 사성제 법문만 줄곧 하는 실정이다. 물론 개별 차원에서 좀더 잘 운영되는 법회도 있기는 하다.
교육은 본디 유아 교육, 청소년 교육, 성인 교육 할 것 없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업)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목적이 있다. 행동을 희망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따라서 불교 교육의 목적은 쌓인 업장을 소멸시킬 뿐만 아니라 업장을 변화시키고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다. 본디 업이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의지를 개발하거나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래서 불교는 대자유인이 될 수 있는 인격자(붇다)가 되도록 이끌어 가야 할 사명을 갖는다. 그리고 이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이 성직자 또는 포교사다. 이들은 설법할 때 청법 대중은 결코 어리석지 않으며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감동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종교에서는 감동 자체가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는데,특히 나이가 적을수록 감동은 오래 간직되므로 청소년의 발달 단계에 따라서 교화 과정을 정하고 교리를 체계 있게 수립해서 교리를 펼쳐야 한다.

불교보다 쉬운 게 어디 있는가?
설법 장소나 법회장에서는 생활이 곧 불교이므로 불교보다 쉬운 게 어디 있냐는 말을 곧잘 하지만, 무엇보다도 경전 수가 많고 내용이 방대하며 용어가 무척 난해하므로, 불교는 어려운 종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청소년에게 인과법이나 연기설을 쉽게 설명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우선 알아 듣기 쉬워야만 관심이 생기고 또 초발심이 일어나므로 경전이나 용어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쉬운 말로 번역해야 한다. 미당 선생의 시구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천둥을 먹구름 속에서...” 는 연기설과 연기 법칙을 우리 감정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인쇄 매체를 많이 개발하고 보급해서 입시에 묶여서 사찰과 격리되어 있는 청소년이나 아동들에게 부처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자주 들려줘야 한다. 그리고 종단적 차원에서 전국 각 중고등학교와 국민학교, 그리고 유치원 교사까지도 교법사화할 수있도록 계획을 수립하면 좋겠다. 교화는 사람이 한다. 아무리 좋은 진리라도 인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종단 차원에서 불자 교사에게 일정한 소양 교육을 받게 해서 준법사 자격을 준다면 사명 의식뿐만 아니라 보상 심리도 생길 것이다. 많은 학교 수업에서 불교 교리를 전공한 교사가 자신의 전공 과목을 수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를 곁들여 가르친다면 불교에 대한 접근도 쉬워질 것이고 딱딱한 지식 위주의 수업이 훨씬 부드럽게 될 것이다.
끝으로 사찰은 수행하는 도량만은 아니므로 어린이가 뛰어놀고 노래하고 율동할 수 있도록 법당을 개방할 것을 제안한다. 어린이는 다음날 어른 신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사찰은 산새 소리나 음미하는 곳이 아닌 전체 사회 공동체의 한울타리라고 여기는 친근감과 소속감을 갖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