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하는 아이와 버려진 아이
하얀 백지장에 붉은 잉크를 떨어뜨리면 붉은 종이가 되고 생선을 싸면 비린 종이가 되듯 청소년의 가치관도 기성세대가 지닌 온갖 형태의 행동 양식을 그대로 본받아 형성되는 것이기에, 이들 문제는 곧 기성 세대의 문제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대개 열 대여섯 살에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나 어머니로 기존 사회에 소속되었던 청소년들이 오늘날에는 경제 구조의 변화, 교육 기간의 연장, 법률 및 제도에 의해 성인으로서 역할과 책임이 유보되는 시기가 길어졌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더 이상 아동도 성인도 아닌 주변인으로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고, 자아 형성에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정상을 벗어난 행동을 취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러한 벗어난 행동 양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최근에 각종 통계에 나타난 청소년 범죄의 양상을 보면 점차 조직화, 흉포화, 연소화하고 있고 범죄 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범죄는 생활난에 쫓긴 기성 세대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의 강력 사건은 절반 이상이 청소년이 저지른 것이고, 특히 학생 범죄의 증가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범죄 동기도 일시적인 욕구 충족이라는 단순화 경향이 강하고, 종전과는 달리 결손 가정이 아닌 정상 가정과 중류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의 범죄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본드 같은 환각제나 마약류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아이들을 여러 곳에서 목격하게 되고, 중고생의 칠십 퍼센트쯤이 흡연을 하고 있다는 놀라운 통계도 보게 된다.
청소년의 이러한 일탈 현상은 소수 특정 청소년에 의해서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지만, 현대를 사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그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소년이 경험하는 발달 과정상의 특수성,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청소년 인구의 비중,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당연한 이유 등을 고려할 때 청소년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청소년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화의 주체성을 상실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수용한 서구 문명의 잔재인 물질주의, 편법주의, 배금사상이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고 쾌락 지향적인 대중문화의 범람이 청소년을 좀먹고 있다. 더욱이 가치 체계의 혼란으로 문화 단절 현상이 나타나 가정, 학교, 대중매체, 친우, 집단 들이 가지는 역할 모형이 서로 상치되어 청소년의 의식 구조를 바로 정립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청소년의 가장 큰 터전인 학교 교육은 치열한 입시 경쟁에 매달려 청소년을 미래 지향적 전인격으로 키우지 못하고 무조건 경쟁에서 이기는 출세 지향적 인간으로 교육하는 것도 중대한 문제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대부분 획일적이고 지식 편중적인 교육에 순응하여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되느냐 아니면 낙오되어 방향 감각 없이 사회의 여러 풍조에 휘말려 반항의 길을 가느냐 하는 기로에 있다.
이렇듯 입시 경쟁에 매달리는 학교 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교육 체제에서 흡수해야 하는데, 가정은 산업 사회의 현상인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그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고, 사회 각 부문에서 청소년 문화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데도 그런 시설이나 공간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사회 병리 현상을 치유한다는 점에서나 불교 교화의 측면에서도 사찰 교육의 중대성은 지나칠 수 없다.
선재동자와 신라의 화랑
불교 문헌 가운데에는 청소년에 관련된 체계적인 사상이나 이론 전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청소년을 주제로 하는 경전적 설화나 전설을 다시 해석하여 그 의미를 창출해 내는 도리밖에 없다. 흔히 설화나 전설은 허황된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설화나 전설을 창조하는 경전적, 역사적 의미가 긴밀히 투영되어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대승보살의 화현으로 아동이 자주 등장한다. 곧 대승불교의 정수인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동자나 대보적경에 나오는 묘혜동녀와 정신동녀가 그 좋은 보기이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진리의 길을 찾아 53선지식을 두루 참예하고 길고 험한 여로를 지칠 줄 모르는 구도의 열정으로 행각하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왜 하필이면 구도자의 전형으로 동자를 등장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은, 아동으로 화현한 보살들의 설화를 통해서 청소년은 어른만 못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성인들에게 무지를 깨우치고 올바른 삶의 방향을 향도하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성현일수도 있다는 불교의 주체적 인간관을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한국 불교의 전설에는 보살의 화현으로서 동자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조선조 세조 대왕이 동자로 화현한 문수보살에게서 악성 피부병을 고쳤다는 전설이나 거대한 석조 불상을 세울 때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하여 모래 장난을 통해 불상 건립의 방법을 깨우친 관촉사 은진미륵의 연기설화 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현세 역사에서 신라 시대의 화랑은 미륵보살의 화현으로 보게 되는데, 그것은 이런 젊음을 통하여 미래의 희망과 이상을 실현시킬 주체로서 젊은 화랑을 미륵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무한한 창의력과 신흥의 기운을 왕성히 발휘하던 당시의 신라는 흥국이민興國利民의 방편으로 ‘신라의 아기 미륵부처’를 내세워 희망찬 국가의 이상을 실현시킬 젊은 일꾼, 미래 완성을 지향하는 고운 사내, 곧 열매 맺을 꽃다운 남아라 하여 화랑花郞을 청소년의 전형으로 애칭했던 것이다. 이것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고 찬연한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는 원천이 된 것은 익히 알고있다.
불교에서 청소년의 모습은 본디 누구나 불성의 소유자라는 평등한 인간관에 기초한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 형성이 경험이나 성장의 축적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독특한 인식 형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불교 경전이나 설화에서는 그런 인간관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데, 이런 불교적 관점은 청소년의 완전한 인격적 독자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사찰 교육의 반성을 위하여
불교계의 청소년 모임은 각기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중고등학교의 학생회가 대부분이다. 물론 종립학교나 열성적 교사들에 의해 학교별 학생회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학교별 모임은 많지 않다. 또 청소년 복지 시설이나 문화 공간을 통하여 불교와 청소년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노력은 전망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가장 초보적이고 또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찰 중심의 학생회도 대부분 모이는 학생의 수도 적고 활동도 다양하게 벌이지 못하여 정기법회 이외의 활동은 매우 미약하다.
청소년 교화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불교 학생회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성 세대에 대한 포교 활동은 투자하는 만큼 사찰 운영이나 교세 확장에 도움을 주지만, 청소년 교화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일 수밖에 없어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없으므로 대부분 사찰에서 학생회 활동을 귀찮게 취급하거나 무관심하게 여기는 데서 비롯한다. 또 이런 모임도 지역별이나 사암별로 고립화되어 있어 공동체적 연대 활동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이다.
청소년 교화를 담당해야할 교역자는 그 수도 부족하고 현실에 맞는 교육을 수행할 전문 지식도 갖추지 못한 형편이다. 청소년의 특성상 사찰법회 위주의 교화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에 현대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 기자재의 도입과 조작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청소년들이 모여서 종합적으로 교육받을 청소년 수련원조차 한 군데도 없다. 근대적 시설과 기자재를 동원한 교육이 효과를 거두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구비된 곳이 거의 없다. 최근에 청소년교화연합회 등이 발족되어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앞으로는 더욱 나은 청소년 교화 체계가 세워지리라는 기대도 있다. 또한 목동 청소년회관과 수원 신흥사의 종합청소년수련원이 개장되어서 앞으로 많은 사찰의 학생회와 일반 청소년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불교와 건전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특히 불교에서 청소년은 희망의 꽃이다. 한 나라 장래가 청소년에 달려 있다면 불교의 미래도 청소년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일생 동안 이어질 인생관 확립의 시기에 이들에게 불교적 삶을 영위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제 청소년 교화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미래의 불국정토가 약속되기 때문이다.